가을이라고 모든 나무들이 붉은빛 일색으로 물드는 것은 아니다. 가을의 색깔이 그것 하나라면 얼마나 단조롭고 무미건조할까. 요즘 강원도 인제는 자작나무숲의 노란 단풍 물결로 황홀하다. “자작나무 단풍 그것 뭐 별 볼 일 있느냐?”는 사람 있을 터. 모르시는 말씀이다. 한 번 가서들 보시라.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하다.
인제는 설악산을 품고 있는 고장이다. 인제군에 속한 내설악에는 백담, 수렴동, 구곡담, 가야동, 십이선녀탕 등 빼어난 계곡들과 귀때기골, 용아장성 등 기막힌 산세의 능선들이 많다. 가을철 인제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곳들에서 붉게 물든 단풍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 화려한 설악의 단풍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인제에는 또 다른 단풍명소인 자작나무숲이 두 군데 있다. 응봉산 자작나무숲과 원대리 자작나무숲이 그곳이다.
자작나무는 하얀색 수피로 잘 알려진 활엽교목이다. 추위에 강해 강원도 산간 지역에 특히 많이 분포한다. 줄기는 두껍지 않으나 높이 자란다. 크게는 20m 넘는 높이까지 자라는 것들도 있다. 햇빛만 잘 드는 곳이면 이 나무는 번식을 잘해 군락을 형성한다. 목재로서 별 효용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 나무는 강도가 좋고, 잘 썩지 않아서 쓰임새가 다양하다. 건축재로서도 좋고, 나무조각을 하기에도 더 할 나위 없다. 그 유명한 팔만대장경도 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자작나무라는 이름은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한자로는 수피 색깔 때문에 백화수(白樺樹)라고 한다. 자작나무는 가을이면 노랗게 잎이 변색된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응봉산 자작나무숲은 인제군 남면 수산리에 있다. 신남리에서 인제읍 방면 46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왼쪽으로 꺾인 저수지길이 나온다. 수산리로 향하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약 4~5㎞ 정도 들어가면 인제자연학교캠핑장이 나오고, 그 너머로 작은 산골마을인 수산리가 있다. 자작나무숲은 수산리가 업고 있는 응봉산 일대에 넓게 분포돼 있다. 동해펄프에서 종이를 만들기 위해 1984년 강원도 소유였던 임야 600ha를 매입해 조림한 숲이다. 그 넓이가 무려 여의도의 두 배에 달한다.
응봉산은 해발 800m 높이에 지나지 않는다. 산세도 평범하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이 산은 자작나무로 인해 그 어디보다 가을이 아름다운 곳으로 바뀌었다. 수산리에서 자작나무숲으로 드는 길은 두 가지다. 수산리 별장에서 오른쪽 길을 택하는 것과 왼쪽 길을 택하는 것. 걷기에는 오른쪽 길이 다소 편하다. 전체 코스가 약 9.5㎞인데, 초반만 오르막이다. 사실 길은 숲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996년 낸 임도다. 자동차로도 갈 수 있다. 비포장이긴 하지만 SUV가 아니더라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길이 잘 닦여 있다. 그러나 자작나무숲의 가을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걷기를 권한다. 3~4시간만 투자하면 충분하다.
▲ 자작나무숲을 둘러보며 걷고 있는 여행객들. |
약 1㎞쯤 경사로를 오르면 그 다음부터는 평지나 다름없다. 길은 산의 허리를 따라서 구절양장처럼 구불구불 휘고 돈다. 만약 아침 일찍 이 길에 든다면 더욱 운치가 있다. 안개가 춤을 추며 별 것 아닌 풍경까지도 특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안개는 오전 10시가 넘어서면서 슬슬 걷히기 시작한다.
두 시간쯤 계속 걸어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해발 580m 임도 정상에 설치된 전망대에 서면 정면으로 꼭 한반도처럼 생긴 자작나무 조림지가 있다. 주변은 일반 활엽수들이다. 붉게 물든 숲 한가운데서 자작나무숲은 노란색으로 눈부시다. 전망대 이후로는 가파른 내리막이 약 2.5㎞ 가량 이어진다. 아래로 가을걷이가 한창인 밭이 보인다.
또 하나의 자작나무숲은 인제읍 원대리에 있다. 인제국유림관리소에서 지난 3월 개장한 숲유치원이다. 원대리 산67번지 일대 60ha에 조림된 숲이다. 3000 본의 자작나무가 심어져 있다.
수산리에서 나와 44번국도를 타고 인제읍 방면으로 더 달리다보면 우측으로 인제군종합장묘원 갈림길이 나온다. 이 길로 든 후 약 10㎞를 달리면 원대리다. 여기에서 조금 내려가면 우측으로 자작나무숲으로 이어진 임도가 있다.
1993년 조림된 이 숲은 바깥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그 안에 들어가 산책하고 뛰어노는 숲이다.
오솔길이 숲 사이로 나 있고, 통나무로 만든 정글과 그네 따위의 놀이기구가 설치돼 있다. 아이들이 자연을 벗 삼아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숲 유치원은 1950년대 덴마크의 작은 산촌마을에서 시작해 1990년대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을 모델로 삼았다. 현재 독일에는 700여 개의 국가 공인 숲 유치원이 운영되고 있으며, 유럽 전역과 미국 등지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 인제 응봉산 자작나무숲을 대표하는 한반도 모양의 조림지(점선). |
한편, 이곳 원대리 자작나무숲 임도는 산악자전거를 타기에도 좋다. 무려 42㎞에 달하는 코스가 여러 갈래로 나 있다. 산악자전거 마니아라면 염두에 둘 정보다.
김동옥 여행전문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서울춘천간고속국도 동홍천IC→44번국도→신남시외버스터미널→46번국도→수산리 방면 좌측길→인제자연학교캠핑장→응봉산 임도.
▲먹거리: 신남리에 아구찜을 잘 하는 대복아구찜(033-461-6081), 한우국밥이 일품인 고려관(033-461-0704) 등의 음식점이 있다.
▲잠자리: 응봉산 바로 아래 인제자연학교캠핑장(010-3742-9533)이 있다. 캠핑만 하는 곳이 아니다. 폐교를 활용한 숙소에서 묵을 수도 있다.
▲문의: 인제군청 문화관광과 033-460-2081. 인제군관광정보센터 033-463-48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