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아이돌그룹 2NE1. 사진제공=SBS |
애초 유럽 내 한류의 시발점은 프랑스 파리였다.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케이팝 스타들의 공연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고, 이에 부응해 SM엔터테인먼트(SM)가 현지 공연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난 7월에는 비로소 영국 런던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300여 명의 한류 팬들이 런던 중심가에 위치한 트라팔가 광장에 모여 플래시몹(flashmob, 불특정 다수인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 시위를 벌인 것.
그렇지만 영국 런던에서 불어온 한류 광풍에 대해 한국 가요관계자들은 다소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런던에서의 플래시몹 시위가 유독 YG 소속 가수들의 런던 공연만 요구했다는 점, YG 측이 한국 기자들까지 동행해 현지를 방문해 확대 과장 홍보에 나선 점 등으로 인해 ‘자발적이고 순수한 시위’가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실제 영국 분위기는 어떨까. 영국 석간신문 <런던이브닝스탠다드>는 지난 10월 3일자 신문 1면에 소녀시대 티파니와 태연의 사진을 게재하며 ‘케이팝 광풍(K-POP crazy), 한국의 가장 뜨거운 수출품이 런던에 왔다’라는 제목을 올려놓았다. 두 면에 걸친 특집 기사에서 “런던이 케이팝에 미쳐가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렇지만 런던 현지에서의 케이팝 체감지수는 그리 높지 않았다. 런던 중심가 피카디리 서커스 주변의 인기 클럽 몇 군데를 방문했지만 아쉽게도 케이팝이 흘러나오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영국 젊은이들에게 케이팝에 대해 물었지만 별다른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질문을 바꿔 2NE1이나 빅뱅 등 인기 케이팝 그룹에 대해 묻자 이들 그룹을 들어봤다는 젊은이들은 몇몇 만날 수 있었지만 그들이 한국 그룹이며 케이팝 열풍이 뜨겁다는 등의 적극적인 답변은 접할 수 없었다. 심지어 2NE1을 중화권 가수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잭 데이비스라는 현지 대학생을 통해 “동생이 2NE1 팬인데 10대들 사이에선 케이팝이 인기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얘길 들은 것이 가장 구체적인 답변이었다.
YG 소속 가수들의 영국 현지 공연을 요구하는 플래시몹 시위가 열린 트라팔가 광장은 한국의 시청 앞 광장과 유사한 곳으로 런던에선 예술 문화 행사가 자주 열리는 장소다. 주변에 국립미술관 등 관광지가 많아 현지인보단 관광객들이 더 많았지만 다행히 당시의 플래시몹 시위를 기억하는 주변 상인들을 몇몇 만날 수 있었다.
▲ 영국 석간신문 <런던이브닝스탠다드> 10월 3일자 1면을 장식한 소녀시대와 2NE1. |
현지 거주 한인들은 케이팝 열풍이 런던에 강하게 몰려오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진 못했다고 지적했다. 여행업에 종사 중인 현지 교민 염태호 씨는 “케이팝이 SNS의 위력을 통해 영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아직 한류 열풍이라 부르기엔 부족하다”면서 “한국 가수들이 영국 방송에 직접 출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해 보이고 영국 현지 공연도 절실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현지의 한인은 “런던에서 고가의 명품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은 중동과 러시아계”라며 “교포 2~3세와 유학생 등 한국인보다 중동과 러시아계가 더욱 케이팝에 열광하고 있는데 시장성을 놓고 볼 땐 긍정적인 신호”라는 얘길 들려줬다.
주영 한국문화원 관계자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영국이 팝의 본고장인 만큼 케이팝 역시 영국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다른 유럽 국가들은 물론 미국 시장에 진출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 가요계에선 프랑스 시장은 SM, 영국 시장은 YG가 선점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그렇지만 영국 현지 분위기는 달랐다. 지금껏 케이팝 열풍이 가장 뜨거웠던 현장은 트라팔가 광장에서의 플래시몹 시위가 아닌 지난 6월에 있었던 영국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샤이니의 쇼케이스 현장이었다고 한다. 사실 그 자리는 샤이니의 영국 진출이 아닌 일본 진출을 기념해서 이뤄진 쇼케이스로 공연 역시 일반 팬이 아닌 일본 기자와 음악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자리였다. 그럼에도 800여 명의 유럽 현지 케이팝 팬들이 애비로드 스튜디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샤이니는 오는 11월 다시 영국을 찾는다. 제6회 런던한국영화제에 초청돼 영국을 방문하는 샤이니는 런던을 비롯해 케임브리지, 셰필드, 뉴캐슬 등 4개 도시에서 오프닝 갈라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 현지 한인은 “SM 이수만 회장이 몇 년 전부터 종종 프랑스를 거쳐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을 찾은 뒤 한국으로 돌아가곤 해 현지 한인들 사이에 화제가 되곤 했었다”면서 “당시만 해도 유럽 전역에 이런 케이팝 열풍이 다가올 것이라곤 예상도 못했는데 SM이 그만큼 오랜 기간 유럽 진출 준비를 해온 것 같다”는 얘길 들려줬다. 또한 “영국 현지에선 2NE1과 빅뱅의 인기가 높아 플래시몹 시위가 열리는 등 YG가 더 유리해 보이지만 현지 공연 등의 적극적인 행보가 아쉽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영국 런던=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