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롯데 이대호, SK 정대현, SK 이승호, LG 이택근. |
11월5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FA 자격 취득선수 28명을 발표했다. 올해 FA 대상 선수에는 프로야구 입문 9년을 채운 이대호(롯데), ‘작은’ 이승호·정대현(이상 SK), 강봉규·신명철(이상 삼성), 조성환·임경완(이상 롯데), 이택근(LG), 정재훈(두산) 등이 포함돼 있으며, FA 선언 후 다시 자격을 신청한 김동주(두산)와 조인성(LG)도 들어 있다.
구단별로는 LG·SK가 6명으로 가장 많고 롯데·넥센이 4명, 삼성·LG가 3명, 한화와 KIA가 1명씩이다.
KBS 이용철 해설위원은 “유독 올해 대어급 선수들이 FA로 많이 풀렸다”며 “이들을 영입하기 위한 9구단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야구계가 꼽는 대어급 FA 가운데 ‘빅4’는 단연 이대호, 이택근 두 타자와 정대현, 이승호 두 투수다. 이들의 향방이 내년 시즌 팀 순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끄는 이는 이대호다.
그러나 이대호가 한국에 잔류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야구계의 중평이다. 벌써 오릭스 버펄로스, 지바롯데 마린스 등 일본 프로야구팀들이 거액을 제시하며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대호는 “롯데가 일본 구단들과 비슷한 조건을 제시하면 굳이 일본에 갈 생각은 없다”는 자세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대표적 ‘짠돌이 구단’ 롯데가 이대호가 바라는 조건을 어느 정도 충족해줄지 의문이다. 일부 일본 언론에선 ‘오릭스가 이대호의 몸값으로 2년간 5억 엔(75억 원)을 준비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롯데가 지난해 이대호와 연봉 인상액 5000만 원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걸 고려하면 75억 원은 언감생심처럼 보인다. 롯데는 “이대호가 팀에 잔류하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라면서도 그의 몸값에 대해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인 금액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프로야구계에서 이대호보다 더 큰 관심을 나타내는 선수가 있다. 바로 정대현이다. 올 시즌 전부터 몇몇 일본 구단은 정대현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했다. 특히나 일본 최고의 인기 구단 한신 타이거스는 수시로 스카우트를 보내 정대현의 상태를 점검했다. 한신의 야마모토 노리푸미 스카우트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야마모토 스카우트는 “정대현을 유심히 관찰한 건 사실”이라며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맹활약한 정대현을 이대호보다 더 주목해왔다”고 털어놨다.
한신이 정대현 스카우트에 뛰어든 건 그가 국제무대에서 검증된 데다 언제부터인가 일본 프로야구계에 언더핸드 투수 품귀현상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일본 야구계는 “정대현이 일본에서 뛰면 필승조 불펜요원으로 각광받을 것”이라며 “왼손 타자에도 강하기 때문에 롱런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만약 정대현이 일본행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SK에 잔류할 가능성이 크다. SK 이만수 감독은 “구단에 정대현을 잡아달라고 요청했다”면서 “정대현은 우리 팀 투수진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SK가 정대현을 잡으려면 두둑한 몸값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LG, KIA, 롯데 등이 군침을 흘리기 때문이다. 특히나 마땅한 마무리 요원이 없는 LG가 적극적이다. LG는 이미 정대현 영입을 위해 물밑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모 구단 단장은 정대현의 계약이 “2004년 두산에서 LG로 이적한 진필중의 4년간 최대 30억 원을 넘어서는 매머드 계약이 될 것”이라며 “과연 SK가 이만한 돈을 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택근 역시 FA 대박을 터트릴 가능성이 크다. 올 시즌 잦은 부상으로 85경기에 출전하며 타율 2할9푼7리, 4홈런, 29타점에 그쳤지만, 이택근은 자타가 공인하는 호타준족이다. 올 시즌을 제외하면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했다. 2009년엔 43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 경쟁까지 벌였다. 무엇보다 이택근은 외야 수비가 좋고, 투쟁심이 강해 팀의 주축선수로 제격이다.
애초 이택근은 LG 잔류가 불확실했다. 시즌 내내 전임 박종훈 감독과의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야구계 일각에선 “올 시즌 중반 LG가 KIA에 ‘이택근과 최희섭을 바꾸자’는 제의를 한 걸 이택근이 들었고, 그 때문에 이택근이 LG에 배신감을 느껴 ‘100억 원을 줘도 LG엔 남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당시 최희섭과 트레이드 대상자로 꼽혔던 LG 선수는 이택근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 김기태 감독 체제가 들어섰기 때문일까. 일단 이택근은 LG 잔류를 희망하고 있다. “김 감독과 함께 내년 시즌 LG를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키고 싶다”는 게 그의 희망이다. 김 감독 역시 “이택근은 내년 시즌 우리 팀 중심타선을 책임질 선수”라며 잔류를 강력하게 희망한다. 하지만, KIA와 두산이 이택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게 LG 잔류에 암초로 작용할 전망이다. KIA와 두산은 외야 한자리를 취약 포지션으로 꼽고 있다.
‘작은’ 이승호는 왼손 불펜투수가 부족한 한국 프로야구에서 의외의 대박을 터트릴 선수로 꼽힌다. 이 감독은 “이승호가 팀을 위해 많은 고생을 했다”며 “구단에 정대현과 함께 꼭 잡아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왼손 불펜요원이 태부족한 LG와 롯데, KIA, 한화가 잠자코 이승호의 SK 잔류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진 않다. 벌써 모 구단 감독은 “이승호 영입을 구단 측에 요청했다”며 “다만, 2009년 이후 3년 연속 50경기 이상에 출전해 몸 상태가 어떨지가 걱정”이라고 귀띔했다.
2011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한 신명철과 강봉규는 삼성 잔류가 예상된다. 두 선수도 “조건이 비슷하다면 친정팀에 남고 싶다”고 속내를 밝힌다. 삼성도 두 선수에 대해선 계약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신명철은 고향 창원을 연고지로 하는 NC에 관심이 많다.
신명철은 “내년이면 나도 35세”라며 “고향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NC의 1군 진입이 2013년 이후부터 가능하기에 신명철이 NC 행을 선택할 시 내년 시즌을 고스란히 2군에서 보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조성환과 임경완도 롯데 잔류가 유력하다. 올 시즌 타율 2할4푼3리에 그쳤지만, 조성환은 롯데 선수단의 정신적 기둥이다. 일부에선 그를 가리켜 ‘미래의 롯데 감독’이라고 칭한다. 그런 그가 다른 팀 유니폼을 입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게 롯데 관계자의 설명이다. 임경완은 올 시즌 72경기에 등판해 최고의 활약을 보인 만큼 적정한 대우만 해준다면 롯데에 잔류할 것으로 예상한다. 야구계는 정재훈도 임경완과 비슷한 길을 걸을 것으로 내다본다.
문제는 김동주와 조인성이다. 두 선수 모두 친정팀 두산과 LG에 잔류할 것으로 보이지만, 구단과의 몸값 협상에서 상당한 견해차가 예상된다. 지금까지 김동주는 연봉 7억 원을 받아왔다. 하지만, 올 시즌 타율 2할8푼6리, 17홈런, 75타점을 기록하며 다소 하향세를 보였다. 두산은 “7억 원의 연봉은 다소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며 4년에 준하는 장기계약에 대해서도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조인성은 견해차가 심할 것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간단하게 협상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LG에 조인성을 대체할 포수가 없는 데다 전체 리그를 살펴봐도 조인성을 능가하는 포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조인성은 “프로선수인 만큼 구단에 무리한 요구는 할 생각이 없다”며 “올 시즌 연봉 수준을 유지해 주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올 시즌 조인성의 연봉은 옵션 포함 7억 원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