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원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바람이 불기 전까지, 아니 안철수 원장이 새로운 정치권의 인물로 주목을 받기 전까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향후 대선에서 견줄 만한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여론의 관심을 받았던 사람이다. 아직 본인은 정치를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았지만, 야권의 대통합을 주장하고 다니는 현 상황을 보면 그는 이미 충분히 현실 정치에 참여한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그는 대중의 마음 속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아니, 대중이 보는 문재인은 어떤 사람일까?
대중은 이제 현재의 정치권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 정치권 밖의 인사를 통해 우리의 정치가 바뀌기를 바란다. 문 이사장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이런 대중의 바람을 배경으로 한다. 물론 그가 대중의 관심권에 들기 시작했던 뚜렷한 계기가 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다. ‘운명적인 순간’에 초인과 같은 ‘평정심’을 보인, 깊은 무게를 지닌 인물, 그는 그렇게 보였다.
그 이후,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한 자신의 책, <운명>을 출간하였을 때, 대중은 마치 운명처럼 그를 노무현의 후계자처럼 보게 된다. 북 콘서트를 통해 문 이사장이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냈을 때, 그가 어떤 정치인보다 열렬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다.
지난 10·26 재보궐 선거를 통해 문재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어느 순간에 더 새로울 것 같은 인물인 안철수 교수에게 쏠리고 말았다. 어느 순간, 그가 조금 관심 밖의 인물로 바뀐 듯하다. 심지어 ‘야권 통합’을 부르짖는 문재인 이사장이 무엇을 위해, 왜 그렇게 하는지조차 궁금해 하지 않는다. 모두들 ‘박근혜의 대세론’이 흔들리는지, 차기 대선에서 ‘박근혜’와 안철수의 구도가 어떻게 형성될지를 언급하기 바쁘다.
어떻게 새롭게 등장한 문 이사장은 조금씩 잊혀져가고, 안철수 원장이 더 각광을 받는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대중이 바라보는 문재인 이사장의 이미지 때문이다. 대중은 ‘참신한 신인 정치인’의 이미지로 문 이사장을 보려 했지만, 그가 아직 뚜렷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중들이 문재인 이사장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문 이사장의 이미지가 아니다. 대중이 마음 속에 가진 박근혜 전 대표의 이미지를 통해 대비시켜 만들어 내는 어떤 이미지일 뿐이다. 그것은 바로 ‘높은 정치인’과 ‘참신한 신인 정치인’의 이미지 대비다.
높은 정치인은 냉정하고 절제하며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 높은 정치인은 기득권이나 자신의 지지 세력만을 대표할 것 같다. 특권층에 속하고 선민의식을 지닌, 가진 것이 많고 지체 높은 사람이다. 이에 비해 참신한 신인 정치인은 대중과 소통할 뿐 아니라 쉽게 대중이 자신의 아픔을 호소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와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 내일은 좀 나아질 것 같은 기대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다.
문 이사장이 박근혜 전 대표와 대비되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은 그 자체로 운명이자 역설적이다. 왜냐하면 그가 대중의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는 계기는 무엇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이제 고인이 된 그분의 후광을 받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 이사장은 박근혜 의원과 거의 유사하다. 박 의원 경우에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이 그분의 가장 든든한 배경이자 자산이다.
이렇게 보면, 대중의 마음속에 문 이사장은 마치 ‘남자 박근혜’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문 이사장, 박 의원 모두 후광을 받을 수 있는 뚜렷한 배경은 있지만, 나름 자신이 지향하는 뚜렷한 정치적 목표나 입장을 대중이 쉽게 공감하고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정치지도자로 활동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또 할 수 있을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아니, 아직 명확하게 이야기하거나 보여 준 것이 없다.
문 이사장, 박 의원의 공통점은 이들이 활동하는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적 과제나 시대적 소명이 있다면 그것을 운명처럼 잘 따라할 것 같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황량한 광야에서 두 사람이 서 있다면, 이 둘은 조용히 선 채로 미라가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 내부적으로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 어떤 일을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두 사람의 분명한 차이도 있다. 한 사람은 과거와 더 가깝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막연한 미래의 모습을 그리게 한다. 하지만 문과 박 두 사람 모두 비슷하게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대변하는지, 어떤 일을 하려 하는지, 어떤 변화를 일으키려 하는지를 명확하게 대중들에게 알려주지 못하는 점에서는 너무나 유사하다.
향후 누가 대중의 마음을 분명히 잡을 수 있느냐의 문제는 현재 자신이 가진 대중의 이미지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문 이사장의 경우 자신의 정치행태에서나 행보에서 기성 정치인과 어떻게 분명히 다른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는 더 참신하게 보이는 또 다른 인물에게 자신의 행운을 양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 정부가 답답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더 참신한 이미지를 가진 인물을 통해, 자신의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얻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이사장의 향후 행보가 그런 이미지를 더 뚜렷이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세대 심리학 교수 황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