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송 단지 민원은 받고, 소송 단지 민원은 떠넘겨…취재 진행 중 ‘민원 신속 처리’ 입장 바꿔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는 SH가 시행을 맡아 공급한 마곡 엠밸리 아파트가 1단지부터 15단지까지 있다. 이곳은 주택 소유자인 분양 세대와 SH와 임대계약을 맺은 임대 세대가 함께 살고 있는데, SH는 임대 세대 내 시설물을 보수하는 일도 한다. 2022년 예산안에 따르면 SH는 1048억 원의 예산을 임대주택 시설물 보수 등에 사용하고 있다.
임대료를 내고 거주하는 임대 세대는 주택 시설물의 노후, 고장이 발생하면 SH에 시설물 보수를 요청한다. 집주인인 SH 역시 각 권역 주거안심센터에 시설관리부를 두고 시설 보수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SH 콜센터에서 이례적인 안내가 나왔다. 입주자대표회의(분양 세대)와 SH가 소송 중인 단지는 임대 세대의 시설물 보수를 접수받지 않는다는 것.
서울주택도시공사 콜센터는 6월 13일 “마곡 엠밸리 1, 4, 6, 7, 15단지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서울주택도시공사와 하자 소송 중이기 때문에 콜센터에서 임대 세대 시설 보수 접수를 받지 않는다. 소송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우리 쪽에서 접수하지 않고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에 접수해야 한다”고 했다.
하자 소송의 주체는 분양 세대 입주자대표회의로 임대 세대와는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SH 콜센터는 하자 소송 중인 단지의 임대 세대 시설 보수 접수는 받지 않고 소송 중이 아닌 다른 단지의 임대 세대 시설 보수 접수는 받아주고 있었다. 같은 단지 분양 세대가 소송을 걸었으니 임대 세대도 불편함을 겪어보라는 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소송이 진행 중인 단지의 임대 세대가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에 시설 보수 요청을 접수해도 어차피 보수는 SH 지역주거안심센터의 몫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공사에서 처리할 보수 요청을, 그것도 공사 콜센터에 유입된 민원을 굳이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를 거치게 만든 셈이다.
이 소식을 들은 입주민들은 공사가 소송 중인 입주자대표회의에 불필요한 업무를 떠넘기는 방식으로 괴롭히기에 나선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소송단지 비 소송단지의 차이를 두냐는 것.
SH에 해당 상담 매뉴얼이 제정된 건 어떤 경로(부서)를 통해서냐고 묻자 지역 주거안심센터의 요청이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SH 콜센터를 담당하는 품질관리부 담당자는 처음엔 “접수가 불가하다고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가 나중엔 “개선에 나설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품질관리부는 콜센터가 소송 단지 입주자대표회의에 접수 업무를 돌린 것을 “원활한 보수 처리를 위해”라고 주장했다. 콜센터로 온 접수 요청을 입주자대표회의를 거쳐서 다시 공사로 접수하는 것이 어떻게 ‘원활한’ 보수처리인지 물었지만 담당자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런 안내가 얼마나 나갔는지 묻자 공사는 “전체 시설 민원 건수 7만 6368건 중 310건으로 0.4%”라고 했다. 품질관리부 담당자는 그런 안내가 있었어도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로 접수를 안내했으니 피해사례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만약 콜센터가 받아주지 않은 310건의 보수 요청들이 모두 입주자대표회의에 접수된 후 다시 공사에 전달돼 보수를 끝마쳤다면 품질관리부의 말대로 피해사례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공사는 이런 경우가 몇 건인지 파악하지 않은 채 피해는 아니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입주자대표회의로 접수하라는 안내를 받고 보수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지 않았겠냐고 묻자 담당자는 “선택을 하셨겠죠. 접수를 하셨을 수도 있고 다음에 해야겠다라고 해서 안 하셨을 수도 있고요. 피해사례라고 명백히 보기는 어렵지 않나요?”라고 했다. 그동안 나온 콜센터의 안내가 적절했다고 보는지 묻자 "(적절한지, 부적절한지) 흑백논리에 의해서 말씀 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본사 품질관리부의 대응과 달리 콜센터의 변화는 빨랐다. 21일 공사 콜센터에 소송 중인 단지는 시설 보수 접수를 받지 않느냐고 묻자 13일과는 다른 답변이 나왔다. 상담사는 “예전에는 받지 않았지만 지금은 접수를 도와드리고 있다”고 했다. 소송 단지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개선된 것이다. 입주민들은 "애초에 말도 안되는 차별이었다"라고 입을 모았다.
취재가 진행되던 중 서울주택도시공사는 6월 19일 ‘시설 민원 처리 신속 대응 시스템 구축’ 보도자료를 냈다. 해당 자료에는 시설물관리 정보시스템을 개선하고 보수 등 민원 처리를 신속화할 계획이라고 쓰여 있다. 불편 신고 시 시설 민원 전문 콜센터 및 카카오톡 채널 등을 운영해 24시간 접수가 가능하게 하고 접수한 내용 중 긴급을 요하는 사항은 센터별 시설물 유지보수 업체에 선 조치토록 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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