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려오는 금리 파고에 수요자들은 어떻게 대응을 할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적극 대처하기가 어렵다. 시장이 경색되어 집을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 급하면 가격을 많이 낮춰야 한다. 최근 고점에서 ‘영끌 빚투’를 한 사람은 더 괴롭다. 부동산 시장에서 ‘손실 회피’가 강하게 작용한다. 손해를 보고 팔지 않으려는 심리다. 과감한 손절매를 결심하지 않는 한, 시장 여건이 나아질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아주 긴 시계열을 보면 부동산 가격(명목 가격)은 물가만큼 오른다. 최근 물가 급등은 시차를 두고 실물자산인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에 따른 보상 행위로 볼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침체기에는 집값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시장이 안정되고 점차 상승 사이클로 접어들 때 인플레이션은 부동산 시세에 한꺼번에 반영된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물가 상승은 단기적으로는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시장이 휘청거릴 수 있다. 기존 부동산 보유자들은 이 시기를 잘 이겨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작가 박완서는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이라고 했다. 금리 상승으로 대출 이자가 부담된다면 대출을 슬림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정리해 대출을 갚는 것이다. ‘빚 줄이기’가 불황기를 대처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얘기다.
반대로 매수자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한마디로 집을 사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매수자는 ‘헐값 사냥꾼’ 마인드로 가격 메리트가 생길 때까지 관망하는 것이 좋다. 올해는 넘기고 내년 이후 내 집 마련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다만 집살 돈이 없는데 타이밍을 재는 것은 무의미하다. 타이밍은 자금을 확보해 놓고 나서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묻지마 청약이 기승을 부릴 때 '선당후곰'이라는 유행어가 나돌았다. 먼저 당첨되고 나서 고민해본다는 뜻이다. 지금은 이보다 '선돈후곰'이다. 돈을 먼저 마련해놓고 나서 타이밍을 고민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건대, 큰 파도가 일어날 때는 신중함이 미덕이다. 이런 안갯속 장세에선 집은 필수보다 선택이다. 굳이 가격이 싸지도 않은데 모험적 투자를 할 필요는 없다. 시장이 불확실한데 집을 사놓고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심리적으로 힘겨운 일이다. 폭풍우가 그치고 나서 그때 사도 늦지 않다.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일단 한 박자 쉬어간다는 생각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매수를 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싸게 사는 방법을 찾아라. 시장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덜 후회하는 내 집 마련 방법은 저렴하게 사는 것이다. 주변 시세보다 싸게 사면 시장 흐름에 여유가 생긴다. 설사 집값이 하락하더라도 정상 가격에 산 사람들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사실 대단한 예지력을 가지 사람이 아니라면 싸게 사는 방법 이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싸게 사면 모든 게 용서된다” 혹은 “싸게 사면 신도 용서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사든 매입가를 낮춰라. 다리품을 팔아 급매물을 사든 경·공매를 노리든 싸게 사는 것이 최상의 길이다. 진리의 길은 의외로 평범함 속에 있다. 집을 싸게 장만하려는 사람은 무엇보다 부지런해야 한다.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