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할리우드를 뒤흔든 ‘하이디게이트’의 주인공 하이디 플라이스. 수많은 거물들이 그녀의 손을 통해 미녀들을 공급받았다. 로이터/뉴시스 |
<LA 컨피덴셜>(1997)을 인상 깊게 본 사람이라면 그곳에 등장하는 고급 클럽을 기억할 것이다. 다소 은밀한 분위기의, 할리우드 스타들과 흡사한 여성들이 남성들을 유혹하는 그곳은 매음굴 같은 느낌을 풍기기도 한다. 원작자 제임스 엘로이는 아마도 배리 벤슨이 운영했던 클럽에서 영감을 얻어 그곳을 묘사했을지도 모른다. 배리 벤슨은 누구일까. 그녀를 알기 위해선 20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계보를 확인해야 한다.
1912년 토머스 인스라는 제작자가 산타 모니카 해안에 자신의 이름을 따 ‘인스빌(Inceville)’이라는 대규모 야외 세트를 지으면서 할리우드의 역사가 시작되자 수많은 영화계 거물들과 스타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면서 할리우드 주변엔 그들의 욕정을 채워주기 위한 곳이 형성되었고 펄 모튼은 최초의 공급책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 리 프랜시스부터 그 악명 높은 역사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영화 산업을 비롯, 업계의 거물급 손님들을 상대했던 그녀는 항상 자신의 클럽에 차가운 샴페인과 신선한 캐비어를 마련해놓고 단속 나온 경찰들에게 휴식을 제공했던 매춘계의 여걸이었다.
프랜시스가 도덕적인 문제로 감옥에 갇히며 쇠락하자 1930년대엔 ‘블랙 위도우’라는 닉네임의 앤 포레스터가 부상한다. 결국 그녀도 불법 행위가 드러나 감옥에 가는데 당시 LA 시장이 경찰에게 선처를 부탁할 정도로 막강한 정치력을 지녔던 인물이다. 1940년대는 포레스터의 후계자인 브렌다 앨런의 시대였다. 그녀의 특기는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콘셉트의 파티였고, 단속반을 이끄는 경찰 간부와 내연의 관계를 맺으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100명이 넘는 콜걸을 거느린 그녀는 매일 1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었고 그 중 3분의 1은 경찰과 검사에 대한 뇌물로 사용한 통 큰 사업가였다. 앨런과 경찰 간부의 통화 내역이 폭로되면서 그녀의 시대는 막을 내리는데 그 여파는 LA의 경찰서장이 사퇴할 정도로 큰 것이었다.
그리고 1950~60년대엔 앨런의 후계자이며 앞에서 언급했던 배리 벤슨이 보스의 자리에 올랐고, 1970~80년대엔 드디어 엘리자베스 애덤스, 즉 ‘마담 알렉스’의 시대가 열린다. 그녀는 엘레강스 스타일의 서비스로 유명했으며 할리우드와 산업계 거물들은 물론 중동의 부호들도 상대했던 국제적인 인물이었다. 고용한 콜걸들을 자신의 ‘크리처’(피조물)라고 불렀던 그녀는 매달 1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콜걸들이 손님과 나눈 대화에서 빼낸 정보를 경찰에 넘기는 방식으로 법의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1988년에 단속반원이 대거 교체되면서 ‘마담 알렉스’는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당시 23세에 불과했던 하이디 플라이스가 잇는다.
유태인으로 1965년에 태어났던 하이디 플라이스의 부모는 히피 정신에 빠져 있었고 플라이스는 심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새로운 걸 추구하며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던 톰보이 스타일의 소녀였고 툭하면 결석을 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곤 했다. 친구들과 베이비시터 서비스 그룹을 결성해 돈을 벌던 플라이스는 16세 때 경마에 빠졌고 급기야 학교를 그만둔다.
18세 때부터 웨이트리스 생활을 했던 그녀가 화류계의 맛을 본 건 베벌리힐스에서 있었던 유명한 금융 투자가 버니 콘필드의 파티였다. 당시 57세였던 콘필드는 40세 가까이 어린 플라이스에게 이끌렸고 플라이스는 콘필드와 4년 동안 전 세계를 떠돌며 부자들의 생활 방식과 겉치레를 익혔다. 이 시기 그녀가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은 나이 든 남자들은 어린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고 콘필드와 헤어진 후 헝가리 출신의 영화감독 이반 나지를 만난다. 당시 그녀는 21세, 나지는 50세였다.
저예산 영화 몇 편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나지는 사설 경마장과 마약 거래와 매춘 알선으로 먹고살던 사람이었다. 그는 마담 알렉스에게 플라이스를 소개해주었고 플라이스는 잠시 콜걸 생활을 했지만 곧 마담 알렉스의 잔심부름을 하는 위치가 되었고, 자신의 멘토가 몰락하자 곧 ‘할리우드 마담’의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1990년대는 그녀의 시대가 되었다.
그녀의 전략은 혁신적이었다. LA의 유명 나이트클럽을 돌며 매력적이며 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쉽게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모은 그녀는 그들에게 철저한 매너 교육을 시킨 후 거물들에게 건당 1500달러를 받고 알선했다. 그녀는 곧 할리우드 사교계의 거물로 떠올랐고 일을 시작한 지 몇 년 만에 수백 만 달러의 돈을 벌어 마이클 더글러스가 소유했던 저택을 구입했으며 <대부>의 제작자였던 로버트 에반스를 비롯 찰리 신 같은 배우나 빌리 아이돌과 믹 재거 같은 록 스타와 친분을 쌓게 되었다.
성공은 그녀를 들뜨게 만들었고 마약에 취한 그녀는 부주의한 상태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여기저기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한 행동은 동료 포주들이나 그녀 밑에서 일했던 이전의 콜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연인이었던 이반 나지와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드디어 일은 터졌다. 1993년에 어떤 남자들이 찾아와 고객과 대화를 나눈 도청 테이프를 가지고 있다고 협박한 것. 일단 돈으로 막은 후 확인한 테이프엔 별 내용이 없었지만 불안함을 느낀 플라이스는 경찰에 찾아갔다. 그것은 그녀가 저지른 가장 어리석은 실수였다. (다음 주에 계속)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