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연인 사이였던 하이디 플라이스와 영화배우 톰 사이즈모어. 그녀는 “내가 만난 남자들 중 최악”이라고 밝혔다. 작은 사진은 말런 브랜도. 로이터/뉴시스 |
도청 테이프로 거짓 협박을 당한 후 덜컥 겁이 난 하이디 플라이스는 제 발로 경찰서에 걸어 들어갔다. 경찰은 그녀에게 매춘 알선 행위를 했는지 물었고, 평소에도 마약 기운이 가시지 않는 상태에 당황까지 한 플라이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음… 가끔씩 하긴 해요….” 조금씩 단서를 확보하던 경찰은 언더커버를 잠입시켰다. 일본 사업가들과 즐길 여성들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플라이스는 네 명의 콜걸을 LA의 한 호텔로 보냈고, 그들을 끄나풀 삼아 두 시간 뒤 플라이스를 체포했다. 1993년 6월 9일의 일이었다.
그녀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할리우드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른바 ‘하이디 리스트’ 때문이었다. 네 권의 구찌 플래너에 빼곡히 담겨 있다고 알려진 그녀의 고객 명부는 만약 공개될 경우 최소한 할리우드의 절반을 날려 버릴 만한 위력을 지닌 것이었다. 몇몇 의심 가는 사람들에게 추궁이 이어졌지만 그들은 모두 ‘하이디 플라이스’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다며 부인했다. 언론은 그 명부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이미 FBI가 증거자료로 확보한 상태. 만약에 ‘하이디게이트(Heidigate)’로 커졌다면 할리우드 스튜디오 거물들 몇몇이 그 자리에서 은퇴해야 했을 사건은, 결국 그녀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었다. 찰리 신 정도가 고객 중 한 명이었다고 알려졌을 뿐이다.
1997년까지 끌던 재판은 결국 그녀에게 37개월 형을 내리면서 막을 내렸다. 1999년에 가석방된 그녀는 갱생 시설로 옮겨졌으나 그녀는 그곳이 싫다며 스스로 감옥으로 돌아갔다. 1999년 9월에 자유의 몸이 된 그녀는 힘겨운 사회 재적응 과정에 들어갔다. 그녀에게 남은 건 자신의 오명을 파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활동은 왕성했다. 라디오에서 섹스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섹스에 대한 실용 지식을 담은 DVD를 발매했다. 2003년엔 <포주짓(Pandering)>이라는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배우 톰 사이즈모어와의 관계가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블랙 호크 다운>(2001) <진주만>(2001) 등의 영화에서 군인 역할이나 갱스터 혹은 형사 같은 거친 캐릭터의 조연 배우로 유명한 그는 플라이스와의 연애 도중 결별과 재결합을 반복했는데 결국엔 그녀에게 폭력을 가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톰 사이즈모어는 내가 만난 인간 중 가장 재수 없는 놈이었다. 그는 정말 추잡하고 타락한 성적 행동을 요구했다. 그걸 거부하면 무차별적으로 때렸다.” 그녀의 증언이다.
2004년엔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TV 영화 <콜 미>가 제작되기도 했다. 이후 그녀는 네바다의 사막에 여성들을 위한 지골로들의 집창촌을 만들려고 했고 현재는 빨래방을 경영하며 스무 마리의 앵무새와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그 어떤 남자보다 이 새들을 사랑한다”는 그녀는 “앞으로 내가 다시 섹스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며 금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찰리 신이나 잭 니컬슨 같은 몇몇 사람들의 이름이 새나가긴 했지만 아직도 과거 고객에 대한 비밀을 지키고 있는 플라이스. 하지만 최근 한 인터뷰에서 흥미롭게도 말런 브랜도에 대한 디테일한 추억을 이야기했다.
“콜걸 시절에 뚱뚱한 사람들이 더 좋았던 건, 그들은 더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말런 브랜도는 말할 여지없이 가장 섹시했으면서 나의 고객 중 가장 뚱뚱한 사람이었다. 감옥에 가기 1주일 전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겨우면서도 만족스러운 8시간을 보냈다. 나는 브랜도와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체위를 즐겼다. 8시간 동안 나는 그의 집에 있는 모든 방에서, 심지어 샤워실에서도 섹스를 했다. 그는 나이가 들었지만(당시 73세) 여성을 어떻게 즐겁게 해주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엄청난 스태미나를 지니고 있었다. 난 그날 밤 오르가슴을 20번이나 느꼈다.”
플라이스의 이런 고백이 이례적이라고 느껴진다면, “나는 200명의 영화 스타들을 유혹했다”며 그들의 이름 하나 하나를 언급한 리즈 리네이(1924~2007)를 만나 볼 필요가 있다. 컬트 무비 스타였으며 한때 언론으로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과찬을 듣기도 했던 리네이.
“그들은 마릴린 먼로를 잠자리로 섭외하지 못하면 나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나는 그런 ‘땜빵’ 중엔 최고였다. 그리고 그들보다 위생적으로 훨씬 청결한 여자였다”며 당당하게 ‘스타 퍼커(star-fucker)’의 위상을 드러냈던 그녀는 스트리퍼로 시작해 모델을 거쳐 할리우드로 진출한 여성. 엄청나게 큰 가슴을 자랑했던 그녀는 8번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했고, 한때 갱 보스 미키 코헨과도 관련 있었던 시대의 풍운녀였다.
결국 그녀도 감옥에 가게 되었고 레즈비언 재소자들에게 끊임없이 성추행을 당했던 3년 동안 첫 자서전을 통해 ‘섹스의 추억’을 기록한 뒤, 66세에 쓴 두 번째 자서전 <나의 첫 남자 2000명(My First 2000 Men)>(1992)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의 할리우드 스타들을 언급하며 그들과의 성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50세의 나이에 할리우드 대로를 벌거벗은 채 달려 화제가 되기도 했던 리즈 리네이. 그녀가 언급하는 고객 명단을 살펴보면 당대 최고의 할리우드 남성 스타들을 거의 모두 담고 있으며, 그 묘사 또한 매우 디테일하다. 다시 한 번 말런 브랜도를 언급해 보면 이런 식이다.
“그는 자신의 ‘물건’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릴린 먼로와 관계를 맺기 전엔 남자들과 주로 즐겼는데, 특히 제임스 딘과 그런 관계였다. 그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찍을 때 상대역인 비비언 리는 물론, 리의 남편인 로렌스 올리비에와도 관계를 맺었다.”
다음 주엔 그녀의 침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쳐볼까 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