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O는 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 장소로 잠실구장 지하를 염두해 두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미국 뉴욕주의 쿠퍼스타운은 작은 시골 마을이다. 대규모 공장이 있는 것도, 풍경이 수려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해마다 35만 명이 쿠퍼스타운을 찾는다. 이유가 있다. ‘야구 명예의 전당’이 있기 때문이다.
명예의 전당이 이곳에 세워진 건 1939년이었다. 처음엔 타이 콥, 베이브 루스 같은 유명 선수들의 기념물이 전시됐다. 지금은 미국 야구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감독 및 선수들의 초상화와 사진, 각종 야구용품 및 기록물 등 300만 점이 소장돼 있다.
일본은 1959년 명예의 전당이 세워졌다. 미국처럼 일본 야구인들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걸 일생일대의 꿈으로 받아들인다. 야구팬들도 해마다 25만 명가량이 명예의 전당을 찾는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장소다.
미국 명예의 전당이 시골에 있다면 일본은 도쿄 중심에 있다. 바로 도쿄돔이다. 현재 각종 기념물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은퇴 선수들의 명패가 도쿄돔 지하에 보존돼 있다.
한국 프로야구가 명예의 전당 건립을 추진한 건 지난해부터다. KBO는 프로야구 출범 30주년 기념사업으로 명예의 전당 건립안을 착안했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 추진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수많은 기념물을 전시하려면 규모가 큰 전시장소가 필요하다. 전시장소를 짓거나 임대하려면 막대한 비용도 발생했다. KBO 살림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러다 올 초 KBO에서 마땅한 장소를 발견했다. 서울 잠실구장 지하였다. KBO 이상일 사무총장은 “잠실구장 내부공사 중 우연히 지하에 대규모 공간이 있다는 걸 알았다”며 “일본 도쿄돔처럼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잠실구장에 명예의 전당을 건립하면 비용과 접근성, 상징성 모두에서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로 이즈음 변수가 생겼다. 인천, 부산에서 “명예의 전당을 유치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사실 명예의 전당 건립에 가장 먼저 뛰어든 지역은 인천이었다. 지난해 3선에 도전한 안상수 인천시장은 “당선되면 야구 명예의 전당을 인천에 짓겠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안 시장이 낙선하며 인천의 건립 계획은 무산됐다. 송영길 신임 시장은 애초 명예의 전당 건립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인천 야구인들의 설득에 전임 시장의 공약을 잇기로 했다.
현재 인천시는 건립을 위해 분주히 뛰고 있다. 인천시 체육진흥과 권순명 과장은 “KBO의 요구를 100% 들어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KBO는 명예의 전당 건립 시 유소년들이 뛰어 놀 야구장 1면 이상을 요구한 상태다. 권 과장은 “2014년 인천에서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다”며 “시는 문학구장 1㎞ 옆에 4면의 야구장을 지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KBO가 요구한 야구장 1면 이상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천시가 밝힌 명예의 전당 건립 기본 계획은 다음과 같다. 일단 명예의 전당은 남동구장 안에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KBO 사무실도 명예의 전당 건물로 이전을 추진하겠다는 자세다. 시에선 이를 위해 100억 원 정도를 내놓을 계획이다. 인천시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기념물도 10만 점가량을 모아둔 상태다.
과감한 투자를 내세우는 인천시지만, 약점은 있다. 현재 인천에서 재정 문제를 들어 아시아경기대회 반납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인천이 아시아경기대회를 반납하면 명예의 전당 건립도 공염불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부산은 후발주자다. 여름까지 명예의 전당 건립 논의가 없었다. 그러다 9월 14일 고 최동원 씨가 작고하며 부산 야구계에 명예의 전당이 화두로 등장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처음엔 지역 야구인들이 ‘최동원 기념관을 세우자’고 했다. 하지만, 이왕 짓는 김에 명예의 전당을 부산에 유치하자고 결의했다”며 “부산이 야구의 도시인 만큼 시에서도 이러한 논의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부산은 기장군과 함께 명예의 전당 건립을 추진 중이다. 부산시 체육관계자는 “부산이 120억 원, 기장군이 130억 원을 출자해 기장군에 7개의 야구장을 짓고, 그 안에 명예의 전당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을 놔두고 기장군에 짓는 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명예의 전당이 부산에 건립되면 자칫 ‘롯데 박물관’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기장군의 살림살이가 항구적으로 명예의 전당 운영을 할 만큼 좋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부산 동명대 전용배 교수는 “부산이 기득권을 버리면서까지 기장군에 명예의 전당을 양보한 건 높이 평가해야 할 일”이라며 “기장군은 해운대와 차로 12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야구장 7면 가운데 4개면은 정규구장 규모, 1개는 리틀야구장, 나머지 2개면은 다목적 야구장으로 지을 계획이라, 프로야구팀들의 마무리 훈련장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며 “부산·경남의 야구열기가 다른 도시를 압도하는 만큼 방문객도 인천, 서울보다 많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문제는 한국야구의 기원지인 인천을 능가할 만한 획기적인 명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KBO는 “접근성으로 따지면 서울만 한 지역이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향후 잠실구장이 증·개축되거나 사라지면 명예의 전당 역시 피해가 예상되기에 고민이 많다. KBO 관계자는 “서울에서 잠실구장을 제외하고 갈 만한 곳도 없다”며 “서울시가 건립 지원에 난색을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최대 문제”라고 귀띔했다.
KBO는 명예의 전당이 한 곳이어야 한다는 방침이다. 그래야 대표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KBO는 별도의 TF팀을 만들어 야구계 각계의 의견을 청취하고서 명예의 전당 유치지를 확정할 계획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