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26-36’의 초현실적인 사이즈를 무기로 수많은 스타들과 잠자리를 했던 리즈 리네이. 그녀의 스타 공략법은 ‘팬레터’였다고 한다. |
1974년 LA의 할리우드 대로. 어느 풍만한 중년 여성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출렁거리는 글래머 몸매를 목격한 사람은 경찰 추산 5000여 명. 하지만 스트리킹의 주인공은 적어도 1만 명은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보았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체포되었고 법정에 넘겨졌지만 배심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의 누드 사진을 내밀며 사인을 요구했다. 리즈 리네이(Liz Renay)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왜 스트리킹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는 건 리네이에게 그렇게 낯선 일은 아니었다. 1926년 애리조나 촌구석에서 태어난 그녀는 광신도였던 부모를 피해 무작정 뉴욕으로 왔다. 이때 그녀의 첫 직업이 바로 스트리퍼. 이후 잠깐 모델 생활을 거쳤지만 2차대전 시기 위문 공연에서 그녀의 위력은 빛을 발한다. ‘40-26-36’이라는 초현실적인 사이즈를 지닌 그녀의 누드는 장병들의 사기를 하늘 끝까지 끌어올려 놓았고 그녀에겐 ‘V 걸’, 즉 ‘승리의 여인’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그렇게 스트리퍼로만 살았다면 굳이 ‘리즈 리네이’라는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갑자기 더 이상 환호 받지 못하게 된 리네이는 1950년대 무작정 LA에 발을 디뎠다. 당시 미국 사회의 섹스 심벌은 바로 마릴린 먼로. 그녀는 ‘먼로 닮은꼴 콘테스트’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고 <라이프> 같은 저명한 잡지에 화보를 찍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서 단역이라도 얻을 수 있는 포트폴리오는 확보한 셈. 하지만 리네이의 야망은 컸다. 그녀는 좀 더 화려한 삶을 원했다. 그것이 후세 악명을 떨칠 정도로 난잡할지라도 말이다.
그녀는 할리우드 대신 밤거리로 갔고 1950년대 LA를 장악하던 갱스터 미키 코헨의 정부가 된다. 코헨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 한두 편의 영화에 리네이를 단역으로 꽂아주었고 그것을 발판으로 리네이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야망을 펼친다. 되도록 많은 스타들과 관계를 맺는 것.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고, 적어도 수십 명, 많으면 수백 명의 스타들이 그녀의 침대를 거쳤다.
두 권의 자서전을 내긴 했지만 그녀가 남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기록은 이른바 ‘블랙 북’으로 불리던 섹스 다이어리였다. 그녀는 그곳에 자신을 거쳐 간 스타들을 1점부터 10점까지 평가했고, 맨 뒤엔 자신을 거부하고 ‘도망간 남자들’ 명단을 적었다. 최근에 공개된 그 내용은, 어디까지 믿어야 할진 모르지만, 지나칠 정도로 디테일하게 1940~50년대 할리우드 남성 스타들의 성 생활을 담고 있다.
먼저 10점을 획득한 ‘최고의 남자’는 남성미의 대명사였던 버트 랭커스터. 표범 무늬 양탄자 위에서 환상적인 섹스를 나누었다는데 리네이는 버트 랭커스터를 ‘감각적이며 부드럽고 열정적인 완벽한 남자’로 그를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리네이가 마음에 품었던 사람은 전쟁 영화나 서부극에 주로 출연했던 온화한 느낌의 글렌 포드였다. 그녀는 포드와 인생 최고의 섹스를 나누었다고 기록한다. 그렇다면 최고의 대물은? 범죄 영화에 주로 출연했던 스티브 코크런이라는 배우인데, ‘미스터 킹사이즈’로 불리던 그의 페니스는 당시 할리우드의 색녀들에겐 ‘은총에 가까웠다’는 후문이다.
속옷을 안 입었던 프레드릭 마치, 입 냄새가 심했던 로버트 미첨, 영화 이미지만큼이나 거칠었던 리 마빈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있지만 조 디마지오에 대한 사연은 조금 아련하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강타자였으며 마릴린 먼로의 두 번째 남편이었지만 9개월 만에 이혼했던 디마지오. 그는 먼로를 잊지 못했고 ‘먼로 짝퉁’인 리네이와 만나곤 했는데 하룻밤에 열두 번 사정을 할 정도의 놀라운 스태미나를 지녔다고 한다.
리네이의 기억 속에 최악의 남자는 제리 루이스. 리네이에게 음란한 행동을 시킨 후 마스터베이션을 하곤 했던 그는 강한 페티시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스타들이 ‘재수 없는 인간’(shit)으로 묘사돼 있는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남편이었던 리처드 버튼은 리네이에게 먼로 흉내를 내면서 저속한 말을 하라고 강요했다.
율 브리너는 아편 중독이었고, 39세에 심장마비로 요절한 존 가필드는 리네이의 증언에 의하면 두 여자와 동시에 즐기다 복상사했다. 에롤 플린은 페니스 끝에 코카인을 묻히고 오럴 섹스를 요구해 여성을 ‘뿅 가게’ 만들었으며 양성애자였다. 플린은 로렌스 올리비에부터 에바 페론까지 1만 명이 넘는 남성 혹은 여성과 섹스를 나누었다고 자랑하곤 했다. 할리우드의 제왕이었던 클라크 게이블은 물건이 작았으며 발기 시 포경이 완전히 젖혀지지 않아 악취가 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리네이가 그토록 수많은 남성 스타들과 잠자리를 함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나중엔 그 명성으로 자연스레 가능했지만 처음엔 팬레터를 이용했다. 노리는 스타에게 자신의 누드 사진을 보내면 80퍼센트는 연락이 왔다는 것. 2007년에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리즈 리네이. 참고로 그녀가 꼽은 자신의 라이벌은 놀랍게도 그레이스 켈리였다. 우아함의 대명사이며 모나코 왕자와 결혼하면서 은막을 떠났지만 1982년에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녀는 리네이 못지않게 수많은 남성 스타들과 성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