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개그 콘서트> 화제의 코너 애정남, 생활의 발견, 사마귀 유치원. |
‘달인’에서 노우진의 덕을 톡톡히 본 김병만.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아이디어를 양보해 더 큰 결과물을 만들기도 한다. 송준근과 신보라가 출연하는 ‘생활의 발견’ 코너는 김병만이 맨 처음 머릿속에 떠올린 작품이다. 그는 현재 후배 개그맨 김기리가 맡고 있는 웨이터 역할로 출연하려고 계획했었다.
하지만 김병만이 출연하면 송준근과 신보라에게 가는 시선이 분산될 것을 우려해 후배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결국 ‘생활의 발견’은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고 김병만을 향한 후배들의 존경심도 커졌다.
강용석 국회의원에게 고소당하며 단숨에 ‘국민 개그맨’으로 떠오른 최효종은 요즘 ‘애정남’과 ‘사마귀 유치원’으로 <개그 콘서트>를 쌍끌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디어 뱅크로 유명한 최효종도 반드시 자신의 아이디어를 고집하지 않는다. ‘애정남’과 ‘사마귀 유치원’도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다.
▲ 신종령과 정범균 |
‘사마귀 유치원’의 탄생에는 극중 사마귀 역을 맡고 있는 정범균의 노력이 숨어 있다. 지난 9월 전역한 정범균은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 최효종과 ‘사마귀 유치원’이라는 코너를 짰다. 군 복무하는 동안 신문을 보며 떠올린 세태풍자 개그를 최효종에게 이야기했고 코너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후 최효종이 탄탄대로를 걷는 반면 정범균은 ‘유재석 닮은꼴’로 관심을 받는 데 그치고 있다. 서운한 마음이 들 법도 하다. 이에 대해 <개그 콘서트> 관계자는 “두 사람은 서일대학교 레크리에이션학과 동기인 데다 KBS 22기 공채 개그맨 동기다. 자신이 독식하기보다는 캐릭터에 가장 잘 맞는 개그맨을 기용하는 것이 <개그 콘서트>의 오랜 전통이기 때문에 대부분 불만 없이 제 몫을 해낸다”고 말했다.
정범균은 이외에도 윤형빈의 ‘왕비호’, 허경환의 유행어 ‘있는데’ 등의 아이디어도 냈다. 하지만 이를 알아주는 이는 없다. 윤형빈과 허경환이 유명세를 얻도록 도와주는데 그쳤다. 정범균은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나는 아이디어를 내는 쪽이다. 그런데 인정을 안 해준다. 허경환은 아예 아이디어를 내지를 못한다. 이렇게 실력 없이 오래 가는 개그맨 처음 봤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허경환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사투리를 소재로 한 코너 ‘서울 메이트’에 출연 중인 허경환은 함께 출연하는 양상국, 류정남과 달리 무임승차했다. 이 코너는 양상국과 류정남이 무려 6년 전에 짜놓은 코너다. 그 동안 주로 지방공연을 가면 무대에 올렸던 코너였는데 허경환이 자신의 캐릭터를 짜 넣은 후 <개그 콘서트> PD에게 말해 합격 판정을 받았다.
<개그 콘서트>에 출연하는 한 개그맨은 “제3자들이 보면 얄밉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잘 내는 동료가 있는 반면 주어진 캐릭터를 기막히게 살리는 동료가 있다. 모두가 회의 끝에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것이다. 연기를 잘하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주는 분위기다”고 설명했다.
‘남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개그맨으로 유상무도 빼놓을 수 없다. 준수한 외모 때문에 ‘얼굴만 잘생겼다’는 핀잔을 듣곤 하는 유상무는 동료들 사이에서 아이디어 뱅크로 통한다. ‘옹달샘’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개그 트리오의 멤버 유세윤 장동민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장동민은 “유상무는 기발한 개그 소재를 많이 가진 아이디어 제조기다. 개그맨보다 작가를 해야 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
개그우먼 중에도 아이디어는 좋지만 정작 자신은 빛을 보지 못하는 이가 있다. 윤형빈의 공식 연인 정경미가 그 주인공이다. 정경미는 강유미 안영미를 스타덤에 올린 코너 ‘분장실의 강 선생님’을 만든 이다. 정경미는 직접 출연해 독한 분장을 선보였지만 강유미와 안영미의 끼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윤형빈이 예능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해 “정경미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경미는 “윤형빈이 ‘강유미 안영미에게 분장으로는 밀리면 안 된다’고 더 독한 분장을 권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유미와 안영미 쪽으로 향한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대중의 기호가 이미 정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맞춰서 각 출연 개그맨의 역할을 분명하게 나누는 것이 <개그 콘서트>가 롱런하는 비결 중 하나다.
<개그 콘서트>의 또 다른 관계자는 “개그는 ‘치는 개그’와 ‘받쳐주는 개그’로 보통 나눠서 이야기한다. 물론 치는 사람이 더 각광받지만 잘 받쳐주는 사람이 없다면 코너 전체가 죽는다. 정범균 류담 유상무 등 아이디어를 낸 개그맨들은 그 코너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치는 사람이 더 부각되도록 받쳐주는 것도 잘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안쓰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땀 흘리고 노력한 개그맨들의 의리를 안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