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증시를 관통하는 핵심 화두로 ‘권력부재’가 뜨고 있다. 선거의 해를 맞이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데다, 경제·증권 쪽에서도 뚜렷한 주도기업이나 주도주가 부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그나마 가장 확실한 권력 후보인 박근혜·안철수 관련주와, 재계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투자자들의 피난처로 각광받는 모습이다. 고비는 1분기 말이다. ‘안철수·박근혜 주’의 향배는 총선을 계기로, ‘이건희 주’의 향배는 다른 주도주의 등장 여부를 점칠 수 있는 1분기 말 3분기 초에 중대한 고비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현재 대한민국을 “불확실성이 확실한 상황”으로 규정했다. 정치의 경우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여론의 무게중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일종의 무정부(Anarchy·아나키)·무규제(Anomie·아노미) 상태라는 설명이다. 국내뿐이 아니다. 이는 정권 교체기를 맞은 미국과 중국, 이른바 ‘G2’나 프랑스 독일 등 유럽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인 아나키·아노미 상태인 셈이다.
경제나 증시도 마찬가지 논리로 설명된다. 유럽 재정위기의 향방, 중국 긴축정책 전환 여부와 경기 연착륙 여부, 미국의 소비회복 정도와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 여부 등이 모두 불확실하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될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냉정한 현실인식이나 정확한 문제인식에 기반하기보다는 신년 초 기대를 담은 희망의 농도가 더 짙다.
이러다 보니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나마 확률이 높은 곳에 일단 베팅하게 되는데, ‘이건희 주’인 삼성전자와 ‘안철수 주’인 안철수연구소, ‘박근혜 주’인
EG(동생 박지만 씨가 최대주주) 등이다.
삼성전자는 새해 들어 지난해 고점인 108만 원을 넘기며 110만 원 고지까지 올랐다. 12월 140% 넘게 올랐던 EG는 새해 들어서도 다시 50% 가까이 오르며 기세를 더하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후부터 시세가 분출된 안철수연구소는 코스닥 대장주 그룹에 오를 정도로 행보에 쉼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3인방 주’의 미래도 낙관하기 어렵다.
가장 먼저 삼성전자의 경우 대외변수에 따라 상승세가 둔화되든지, 꽤 큰 폭의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이미 160조 원 수준. 코스피의 시장가격이 예상이익의 9배(PER 10배)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올해 17조 원가량의 이익을 낼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이익규모가 17조 원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유럽 재정위기, 중국의 긴축, 미국의 소비 위축이 해소되지 않고서는 이익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없다.
게다가 이미 자문형랩과 주식형 펀드 등은 삼성전자 주식을 담을 만큼 담았고, 재미도 꽤 봤다. 자문형랩은 지난해 1~4월에 유입된 자금의 계약만료가, 주식형 펀드는 펀드 내 삼성전자 비중확대에 따른 재조정(Rebalancing·리밸런싱)이 필요해졌다. 글로벌 헤지펀드로서는 삼성전자의 주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주가하락 가능성이 높아질 것에 대비한 공매도 유혹이 높아질 수 있다. 자칫 작년 ‘차·화·정’과 같은 급격한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110만 원 돌파 후 시장 유동성의 방향이 삼성전자에서 현대차, 하이닉스 등 다른 종목으로 선회하고 있는 점도 이를 반증한다. 대한민국만큼이나 탄탄한 주식인 만큼 실적부진이 아니라면 주가 급락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미국 신용등급 하락과 유럽 재정위기로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누려왔던 안전한 위험자산 프리미엄이 줄어들 여지는 작지 않다.
EG와 안철수연구소 주가는 일단 4월 총선이 고비다. 양사 모두 어차피 매출이나 이익 등 실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주가 수준을 벗어났다. 박근혜와 안철수라는 두 거물의 ‘영향력’(Aura·아우라) 대결의 결과가 핵심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총선을 진두지휘할 것이 유력한 가운데 4월 총선의 승패는 박·안 두 사람의 정치적 영향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박 위원장이 4월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당내 대세론이 굳어질 수 있다. 박 위원장의 승리는 한나라당 혁신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정인 만큼 그의 12월 대선가도에도 긍정적이다. 증시로 보면 EG의 기세는 더 살리고, 안철수연구소의 기세는 가라앉힐 만한 재료다.
민주통합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조금 복잡해진다. 언뜻 EG에는 악재, 안철수연구소에는 호재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민주통합당이 안철수라는 외부 인사를 야권후보로 세우기보다는 기존 당내 후보를 내는 쪽으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안철수 효과가 약해지며 안철수연구소 주가가 조정받을 여지가 있다.
야권이 자체 후보를 내고 안 교수가 이를 지원하는 형식이거나, 야권이 안 교수를 후보로 영입 또는 추대하는 형식이라면 EG에는 치명적 악재, 안철수연구소에는 결정적 호재가 될 수 있다.
다만 EG나 안철수연구소 모두 대선을 전후로 극단적인 주가 오르내림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할 대목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정치 테마주들에 투자하는 사람들 상당수 실제 정치적 수혜를 입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강할 때 주식을 사고, 어느 정도 수익이 확보됐다면 차익을 실현하고 나간다”면서 “뒤늦게 뇌동매매를 하다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익명의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는 “안철수 대통령이 나오면 안철수연구소가 정부 관련 수주를 하기가 되레 더 힘들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이 나온다고 동생이 대주주인 회사를 대놓고 밀어줄 수는 없다”며 “어차피 대선후보 관련 테마주는 기대감이 유일한 에너지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2007년 대선 전 급등했던 이명박 관련주나, 지난해 10월 강세를 보였던 박원순 관련주 등은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에는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명박 관련주의 경우 국정 지지도가 하락하면서 주가가 크게 하락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한편 증시 전문가들은 ‘상저하고’의 올 장세에서 상반기 주목해야 할 주요 투자대상으로 바이오, 소프트웨어, 엔터테인먼트 등 이른바 신성장사업 테마군들을 꼽고 있다. 하반기에는 유럽 재정위기의 해결방향이 가닥 잡히고, 미국의 소비회복과 중국의 긴축정책 전환이 나타날 경우 중국 내수부양 관련 수혜주를 가장 주목하라고 권한다. 아울러 정부가 물가와의 전쟁에 나섰지만, 정권 말기 통제력이 약해질 수 없는 만큼 전기료 등 각종 공공요금 등 생필품 가격 상승에 따른 수혜주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조언하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