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륜녀 단골 민지영. |
▲ 조폭 전문 김정태. |
어느 날 그가 지인들과 밤늦은 시각 포장마차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던 찰나 짧은 머리의 동네 청년들이 그에게 대뜸 인사를 하더니 “어디 사십니까?”라고 물었단다. 순간 당황했지만 당시 살던 삼선 2동 지명을 대며 친절히 대답했다는 김정태. 청년들은 ‘삼선동에 누가 있더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나중에 포장마차 사장에게 들은즉슨, 청년들은 동대문 일대의 조직 폭력배 무리였다고 한다. ‘어디 사냐’는 말은 그들만의 언어로 ‘어디서 활동하고 있냐’는 뜻이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악역을 맡다보니 부상과 과로로 인한 입원도 셀 수 없었다는 김정태. 그는 요즘도 목욕탕만 가면 사람들이 슬슬 피해 내심 서럽다고 고백한다. 인기만큼이나 설움 또한 많은 악역 배우의 비애라 할 수 있다.
▲ <도가니> 악덕 교장 역 장광.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또 한 번 레드카펫을 걷게 됐다. 영화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던 터라 이번에는 무반응의 굴욕은 피할 수 있었다. 나름 뜨거운 환호를 기대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팬들의 야유였다. 환호하는 팬들 사이에서 일부 팬들이 “너무 못됐어요!” “어우, 진짜 싫어!” “그렇게 살지 마세요!” 등등의 야유를 보낸 것. 당황한 나머지 표정관리를 못해 온통 굳은 표정의 사진만 찍히고 말았다고 한다. 영화를 찍으며 종교 문제와 캐릭터의 정체성 등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냈다는 장광. 야유를 보낸 일부 팬들보다 조용히 박수를 보내준 팬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분명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 저승사자 단골 김학철. |
그가 가장 많이 맡았던 역할은 다름 아닌 저승사자. <전설의 고향> 속 저승사자는 늘 그의 몫이었다. 하루는 그가 시골의 한 국밥집에 들렀을 때다. 3000원짜리 국밥을 시키자 주인 할머니는 1만 원짜리 홍어회를 내오며 그의 앞에서 싹싹 빌었다고 한다. “제발 나 데려가지 말라”며 빌던 할머니는 “착하게 오래 살겠다”며 김학철에게 애원까지 했다고 한다. 자신을 저승사자로 착각했던 할머니를 만난 뒤 김학철은 사석에서 절대 눈을 치켜뜨지 않는 버릇이 생겼으며, 늘 사람 좋은 웃음을 달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악역을 멋들어지게 소화하면 연기력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지만, 배우가 입는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견배우 박정수는 드라마 <허준>을 촬영하며 안 좋은 추억만 잔뜩 생겼다고 전한다. 자신의 아들만 끔찍이 사랑하는 역을 맡는 바람에 시청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혔고, 급기야 드라마 촬영도중 자신의 차량이 파손되는 일을 겪었다고 한다. 촬영을 마치고 차에 돌아오니 타이어가 모두 펑크나 있고 유리창에도 온갖 낙서가 가득했다고. 범인을 고소하진 않았지만, 드라마에 심취한 팬의 소행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편 배우 강성연은 ‘악녀는 스타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공식을 굳게 믿고 늘 악역에 대한 로망을 꿈꿔왔다고 한다. 그는 드라마 <덕이>에서 꿈꾸던 악역 배우의 반열에 올랐고 이후로도 드라마 <싱글파파>, 영화 <왕의 남자> 등에서도 꾸준히 악역 연기를 소화했다. 그렇지만 악역을 주로 맡게 되면서 후회하는 부분도 있다. 다름 아닌 CF 업계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던 그가 <덕이> 이후엔 외면당하기 시작해 CF 섭외가 크게 줄었다는 것.
폭력을 휘두르는 무시무시한 악역은 아니지만 시청자들의 미움을 사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 속 ‘불륜녀’ 역할 배우들도 현실 세계에서의 고충을 토로한다.
극중 불륜을 일삼는 배우 민지영은 목욕탕에서 등짝을 맞는 일은 물론, 소개팅이 성사 직전 취소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심지어 부친와 함께 길을 걸을 땐 애꿎게 불륜 의심을 받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일부러 큰소리로 ‘아빠’라고 부르는 일이 습관이 됐다고 한다. <사랑과 전쟁>의 또 다른 단골 배우인 이시은 역시 수십 번 넘게 ‘이혼녀’ 역할을 소화해 실제로 ‘돌싱’ 아니냐는 의심을 받곤 한다고. 남편과 여행을 가면 숙박업소에서 곤란해 하는 등 이들은 현실과 드라마를 구분 못 하는 시청자들로 인해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전한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