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하반기부터 약 2년여 동안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물류대란.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늘어난 물동량이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벌어진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LA항과 롱비치항에 들어오지 못하고 캘리포니아 앞바다에 하염없이 떠 있는 선박이 한때 100척을 넘기기도 했다.
세계를 하나로 연결해 흐르던 해운물류에 이상이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해운물류의 경색은 단순히 해운업의 불황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원자재, 식량, 원유 등의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원가상승으로 인한 물가압력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공포 역시 물류공급망 불안이 중요한 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해운물류 대란 당시 국내 물류사정 역시 최악으로 치달았다. 중국은 비싼 운송비를 지불하며 전 세계 선박을 싹쓸이했고 중국에서 이미 짐을 가득 실은 선박들은 부산항을 지나쳐 버렸다. 부산항에는 우리 기업들의 수출품을 담은 컨테이너가 쌓여갔고 야적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때 왜 경쟁력 있는 국적선사를 보유해야 하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한국의 국적선사들이 미국을 비롯한 유럽, 아시아 항로에 긴급선박을 투입한 것이다. 지난 2년간 총 140회, 한국 기업의 화물을 실어나르며 수출에 숨통을 틔웠다. 이처럼 국적선사의 해운물류 네트워크 확보는 달리 말하면 운송주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2017년 한진해운의 파산과 함께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던 한국 해운업. 그동안 쌓아온 네트워크가 무너졌고 알짜배기 노선은 글로벌 해운사들이 나눠 가졌다. 글로벌 해운사들은 공격적 M&A와 대형선박을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해 빠르게 재편되었고 동맹을 바탕으로 해운시장 장악에 나섰다.
해운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일찌감치 파악했던 유럽 해운 선진국들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당시 경영난에 휘청였던 자국 해운사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며 국적 해운사를 지켜냈다. 독일의 해운사 하파그로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5년 전 한국 해운재건이 시작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초대형 선박, 2만 4000TEU급 12척을 비롯한 최신 선박 건조를 시작으로 허약해진 해운 경쟁력 키우기에 돌입했다. 이를 통해 한국은 8위의 글로벌 해운사를 보유하게 됐고 세계 해운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현재 세계 해운업은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라는 파도 앞에 서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환경규제'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통한 '디지털 기반 해운산업 혁신'이다. 2000년대 속도경쟁, 2010년대 대형화 경쟁을 거쳐 이제 친환경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발전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화물을 목적지까지 얼마나 경제적으로 신속하게 친환경적으로 운반할 수 있는가, 한국 해운업의 미래 경쟁력이 여기에 달려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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