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마 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시집와 꽃상여 타고 나가야 했다는 무섬 여인들의 애달픈 사연을 품은 이곳에 오늘 다시, 한 여인이 무섬마을행 꽃가마에 오른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으로 불리는 경북 영주에 있는 무섬은 내성천이 휘돌아 흐르는 물돌이 마을이다. 360년 유서 깊은 무섬마을은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으로 46명이 옛 모습 그대로 생활하고 있다. 1983년 수도교가 생기기 전까지 바깥세상으로는 유일한 길은 외나무다리였다.
오늘도 아름다운 풍광과 외나무다리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무섬의 여인들에게 외나무다리는 꽃가마 타고 시집와 꽃상여 타고 나갔던 지난했던 일생의 상징이었다.
이 애절한 사연을 알 리 없는 관광객들에게는 한순간의 추억을 쌓고 가는 장소일 뿐이다. 열여섯에 꽃가마 타고 들어와 올해 백 살이 된 유창순 할머니와 스무 살에 시집와 일흔다섯 번의 여름을 맞은 장두진 할머니에게 무섬마을은 어떤 의미일까.
장두진 씨(95)는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 온 여름내 장마가 지면 계속 물이 여기까지 들어왔다 나갔다, 들어왔다가 나갔다 해. (농사) 일꾼 뒤치다꺼리 다 해야 돼 안 죽고 살고 나니 지금 이만큼 살고 있잖아"라고 말했따.
한여름 무더위 속에 이른바 '무섬 동창생'으로 불리는 결혼 4인방이 한자리에 모였다. 53년 전, 네 명의 여인이 한 달에 한 명씩 반남 박씨 집안으로 시집을 온 것이다. 1호는 경북 영덕에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택시 타고 달려와 외나무다리를 꽃가마 타고 건너온 남인희 씨(80).
2호는 예천에서 온 권영자 씨(79), 그리고 3호는 김순화 씨(72)는 무섬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로 순박한 동네 총각과 부부의 연을 맺었고 지금도 남편의 농사 뒷바라지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4호는 이웃 마을에서 시집 온 장숙희씨(76)다.
이들 결혼 4인방 또한 젊은 시절 어른들 모시고 집안 건사하느라 서로 얼굴 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연륜이 쌓인다고 결코 가벼워지는 법이 없는 게 무섬 여인의 삶이었다. 황혼이 된 지금에서야 함께 모여 고단했던 시절을 반추하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
만죽재 12대 종부 장춘옥 씨(63)는 "제가 조금 어려운 삶을 조금 살았다면 우리 며느리는 이 집에 와서 정말 기쁘고 즐겁고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이게 종부의 삶인가 보다 하고 다 따라했죠"라고 말했다.
무섬마을에 처음 뿌리 내린 만죽재를 지키고 있는 박천세 씨(62)와 장춘옥 씨(63) 부부. 서울에 살다가 고향에 내려온 지 한달째다. 요즘 부부는 12대에 걸쳐 집안 대대로 내려온 물건들을 갈무리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하다. 그리고 윗대 종부들의 손길과 정성이 담긴 유기그릇을 꺼내는데 조만간 있을 집안 경사를 위해서다.
바로 큰아들이 결혼하고 무섬으로 꽃가마 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 신행을 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2년 전 어머니가 떠난 후 어른 없이 치르는 큰 행사에 걱정이 크다. 그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만죽재 큰딸 박천희 씨(57)와 아픈 몸을 이끌고 난우고모(78)가 무섬을 찾는다. 무섬마을에서 40년 만에 행해지는 신행에 마을 사람들 또한 덩달아 분주하다.
예부터 신부가 신랑을 따라 시댁으로 들어가는 신행은 동네잔치였다. 7월 중순 드디어 만죽재 큰아들 필승씨(35)가 앞장서고 동갑내기 신부를 태운 꽃가마가 뒤를 따른다. 비를 뚫고 무사히 외나무다리를 건너 만죽재에 입성하자 잔치가 펼쳐진다. 만죽재 가족들에게는 신랑에게 각별했던 엄마가 더욱 그리운 날이기도 하다.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천희 씨가 친구들과 함께 무섬마을에서 소박하지만 정겨운 전시회를 열었다. 무섬의 아름다운 여름 풍경과 녹록지 않은 일생을 슬기롭게 살아낸 무섬 여인들의 오늘을 화폭에 담았다.
95세 장두진 할머니까지 마을 사람들이 속속 찾아와 유쾌한 여느 고향처럼 무섬의 여름에는 여전히 그립고 그리운 이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다. 고단하지만 정겨운 삶이 있고 살가운 마음이 있고 각별한 정이 있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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