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인물에게 굉장히 다양한 페르소나가 있고, 또 다양한 다른 캐릭터들도 나오지만 이들이 모두 한 사람으로 엮이는 이야기예요. 아무래도 친절한 드라마가 아니다 보니 보다 보면 헷갈릴 수 있는데, 대본에서는 더 헷갈리더라고요(웃음). 오히려 그런 점이 호기심을 자아냈던 것 같기도 해요. 저 역시 제가 맡은 사라킴이 지금 진심인지, 아닌지 많이 헷갈렸거든요. 저희끼리 의논 끝에 결론을 내린 건 사라킴이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는 거였어요.”
‘레이디 두아’는 가짜일지라도 명품이 되고 싶었던 여자 사라킴과 그녀의 욕망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형사 무경(이준혁 분)의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극 중 신혜선이 연기한 사라킴은 단일한 설명으로 규정되기 어려운 인물이다. 사라킴이란 이름 아래서도 그는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목가희, 두아, 김은재였던 시간들이 겹겹이 드러난다. 이 가운데 서사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목가희마저도 뚜렷한 전사를 보여주지 않아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가 ‘사라킴’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든다.

앞선 인물들은 이름만 다를 뿐 모두 사라킴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나아가는 동일인물이지만, 후반부에 과거 회상으로 등장하는 김미정(이이담 분)은 전혀 다른 인물임에도 사라킴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로 기능한다. 짝퉁 명품 가방을 진짜처럼 만드는 능력을 높이 사 사라킴에게 선택받고 부두아 백의 제작자가 된 공장 직원 김미정은 사라킴을 동경하다가 점차 그의 삶 자체를 욕망하며 위협하게 된다.
단순한 동경이 욕망에 물들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진 김미정처럼, 사라킴 역시 자신의 브랜드 ‘부두아’를 지키려다 파멸한 것을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은 하지 말라는 결말’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신혜선은 그들의 결말을 교훈극으로 읽는 시선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아마 사라킴은 본인이 명품이 되고 싶었을 거예요. 서사적으로 풀어 나가다 보니 명품에 환장한 것처럼 표현되지만(웃음), 사라킴과 목가희에게 명품은 자신의 가치를 대변해주는 하나의 수단이거든요. 그래서 사라킴은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부두아라는 브랜드 자체가 곧 자신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사라킴도 그렇고, 김미정도 그렇고 이들은 선역이 아닌 비뚤어진 아이들로 그려지잖아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허상을 짚기 위한 설정이지, 제 분수에 맞는 삶을 살라는 교훈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취조실 신에서 사라킴과 무경이 직접 만나게 되는데, 그 신은 정말 상대방의 연기를 믿고 가야 했어요. (이)준혁 선배님의 연기 흐름이 아니었으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도 못 잡았을 거예요. 제 맥락을 선배님이 따라와 주시고, 저도 선배님의 맥락을 눈치껏 열심히 따라갔죠. 상투적으로 쓰는 말이긴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호흡이 잘 맞았어요. 무경이란 캐릭터를 선배님이 든든하게 지켜주셔서 사라킴의 매력이 더 빛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배님이 저와 50대 노부부 연기도 해보고 싶다 하셨는데, 그건 기획을 잘 해봐야겠죠(웃음).”
‘레이디 두아’는 신혜선에게 있어 단순히 필모그래피의 한 줄을 더할 뿐인 작품이 아닌, 배우로서 스스로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었다. 한 인물을 여러 겹으로 해석해야 하는 작업은 끝나고 나면 몸이 아플 정도로 부담이 따르지만 신혜선은 그 부담을 피하기보다 정면으로 감당하는 쪽을 택했다. 하나의 작품에서 보여준 여러 얼굴들을 통해 이제까지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의 면면들, 다뤄보지 못했던 욕망의 형태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제 로망이 부지런하게 경험을 쌓아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경험해 보는 거였어요. 그걸 제 몸으로 해내는 건 귀찮았는데(웃음), 이번에 연기로 조금 해소했죠. 아마 어려운 역에 도전하는 게 제 취향인가 봐요. 사실 모든 연기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을, 다른 사람이 써준 대사로 만들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게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고 싶고, 그리고 이왕 할 거라면 더 다양한 것들을 하고 싶다는 게 제 안의 목표 1순위예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