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한국-베트남 친선바둑대회 전경. ②이의범 SG그룹 회장(왼쪽). ③양재호 9단이 지도대국을 두는 모습. ④조훈현 9단이 베트남 현지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모습. |
한국기원 사무총장 양재호 9단의 얼굴이 눈에 띈다. 양 총장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바둑 간판스타 조훈현 9단과 유창혁 9단이 보이고, 접바둑의 달인, 10초 바둑의 명수로 알려진 영환도사 김영환 9단도 있고, 지금 베트남에서 바둑을 보급하고 있는 이강욱 8단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베트남 바둑은 낯설지 않다. 2005년경부터 우리도 세계 아마추어 바둑대회를 주최하기 시작했는데, 베트남은 거의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다. 이강욱 8단이 베트남에 건너가 바둑 보급을 시작한 것도, 해가 바뀌었으니 2년째로 접어들었다. 전에도 말했듯이 한국기원은 해외 보급에 나선 프로기사에게는 일괄적으로 8단을 인허하고 있다. 얼마나 큰 대회기에 한국의 프로기사, 호화멤버가 대거 출동한 것일까.
행사는 제1부 친선대회, 제2부 프로기사 지도다면기였는데, 비중은 2부 프로그램에 있었고, 1부는 말하자면 2부를 위한 식전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친선대회는 ‘호치민 한인 기우회’ 회원들과 이강욱 8단의 베트남 바둑 제자들의 대결이었다. 10 대 10으로 붙어 베트남 제자들이 9 대 1, 압승했다.
일반인 둘, 대학생 일곱, 중학생 소년 하나로 구성된 이 8단의 제자 팀은 프로에게 3~4점으로 버티는 실력이라고 한다. 그 정도면 아마 5단은 충분하니 대단하다. 그리고 대학생이나 중학생 제자들은 계속 늘고 있으며 느는 속도도 빠르다고 한다. 프로기사 지도다면기에는 베트남 아마추어 50여 명이 신청했고, 우리 프로기사들은 한 번에 다섯 판씩 두 번을 돌았다. 새로운 땅을 일구느라 고군분투하며 땀을 쏟고 있는 이 8단에 대한 고국의 지원사격이었다.
이번 행사를 후원한 사람이 있었다. 국내에서도 바둑대회를 열고 있는 SG그룹의 이의범 회장(48)이었다. 인기 있는 기전 ‘SG페어대회’의 SG가 바로 이 회장의 SG다. SG그룹의 모체는 충남방적. 지금은 SG충남방적이고, 베트남에도 지사가 있는데, 이 회장은 얼마 전 베트남 출장 왔다가 이 8단을 만났고, 바둑을 두었고, 약속을 했던 것. 이 8단의 열정과 성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니까. 이 회장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해외 바둑보급을 기업이 돕는 것은 정말 바람직한 일이다. SG가 앞으로도 계속 이 8단을 도와주기를 바란다.
독일 남편과 결혼도 하고, 현재 살고 있는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바둑을 들고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을 동분서주하는 윤영선 8단은 기도산업의 박장희 회장(66)이 밀어주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유럽 최고-최대의 바둑대회로 자리 잡은 ‘기도배’는 박 회장이 윤 8단을 위해, 윤 8단의 한국 바둑 유럽 보급을 위해 만든 대회다. 박 회장의 회사가 기도산업. 스포츠 의류 수출업체다. 박 회장의 스포츠 의류가 바둑과 함께 유럽에서 날개를 달았듯이 SG도 박 회장-윤 8단의 기도배를 참고해 베트남에서 바둑과 함께 뻗어나갔으면 좋겠다.
베트남의 경우는 이미 2007년에 역시 호치민에서 제1회 서봉수배 바둑대회가 열렸었다. 2007년 2월 그 무렵 서 9단이 베트남 처가에 갈 일이 있었다. 처가는 호치민에서 동쪽으로 200㎞쯤 떨어진, 베트남 동해안의 작은 어촌이었다. 서 9단은 처가에 배를 한 척 마련해 줄 작정이었다. 서 9단과 바둑계의 지인 몇 사람이 동행하기로 했고, 지인들은 기왕 가는 김에 베트남 바둑 보급의 단초를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냈다. 후원자가 나타났다.
현지의 한인기우회와 협조가 이루어져 바둑대회는 성사되었다. 그때만 해도 베트남에는 아직 바둑용품이 귀하다면 귀하던 때라 우리는 바둑판과 바둑돌-통도 가져갔다. 대회는 성황이었다. 가져간 바둑용품은 기증했다. 대회에 참석해 시종 자리를 지켰던, 문화부 차관쯤 된다는 여성 관료가 고맙다면서 몇 번씩이나 인사를 했다.
대회 후 우리는 밴을 빌려 타고 서 9단의 처가로 달렸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남녀노소들이 거리에 나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나온 것 같았다. 처가 식구들 모두 인물이 좋았다. 삶은 게와 망고가 나왔다. 서 9단이 게 좋아하고 과일 좋아하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게는 컸고 살이 많았다. 맛이 우리나라 게 못지않았다. 망고는 더 이를 나위가 없었다. 밤에 반소매 남방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해변을 걸었다, 2월이었는데도 바람은 따뜻했고, 한국에서 보던 것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반달이 바다 가운데 가로로 누워 돛단배처럼 떠 있었다. 그 추억이 새롭다.
서봉수배 대회를 통 크게 후원한 사람은 태광실업의 박연차 회장(67)이었다. 태광은 신발을 만드는 회사다. 베트남에 공장이 있다. 신발은 베트남 내수용이 아니라 전량 수출용이다. 박 회장은 주한베트남 명예총영사를 했고 베트남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을 정도로 베트남통이었다.
서봉수배는 1회로 끝나고 말았는데, 노 대통령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처음이어서 홍보도 부족했고, 여러 가지 사정상 대회를 2월에 했는데, 2월은 설날도 끼고 해서 일정이 좀 그렇다, 2회부터는 여름 휴가철에 맞추어 하자, 더 크게 잘할 수 있을 것이다, 1회 대회를 끝내고 한인기우회 쪽과 그런 얘기들을 주고받았으니까 말이다. 태광은 그때도 베트남에서 유명했거니와 이 8단의 말에 의하면 지금도 여전히 유명하다고 한다.
박 회장은 바둑팬은 아니었다. 바둑은 둘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도 서봉수 9단과 우리 바둑의 해외보급, 그 가치를 알아주었으니 어쨌든 바둑계로선 고마운 사람이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한국기원 관철동 회관을 짓게 해 주어 조남철 선생이 평생소원을 풀었고, 김우중 회장이 프로기사들의 기업체 지도사범 취업을 주도하고 지금의 홍익동 회관을 기증해 한국 바둑의 도약대를 만들어 준 것처럼.
사람은 가도 바둑은 남는 것인지. 바둑은 정수와 악수로 점철되고, 묘수와 실수로 얼룩지며 흘러간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