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원 국민은행장(왼쪽), 황영기 우리은행장 | ||
지난 2003년 경영난을 겪던 외환은행은 새 대주주로 론스타를 맞이했으며 LG카드 역시 지난 2003년 말 LG그룹에서 분리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경영해 왔다. 현재 두 법인 모두 경영부진의 늪에서 벗어나 성장세를 타고 있어 유례없는 ‘알짜’ 매물이란 평을 듣고 있다. 이들 두 개의 매물을 누가 인수하느냐에 따라 금융권 전체 판도가 뒤바뀔 수 있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금융권 대형 매물 인수전 판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최근 터져 나온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의 ‘외환은행에 대한 관심’ 발언이다. 종전까지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하나은행이 거의 독자후보처럼 받아들여지던 분위기에서 업계 1위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전 참여 의사는 ‘도발’에 가깝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강 행장은 그동안 “기존 2천5백만 고객만 잘 관리해도 앞으로 10년간 ‘리딩빙크’의 위치를 지킬 수 있다”며 인수·합병(M&A) 가능성을 배제해 왔다. 그러나 지난 11월17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강 행장은 돌연 “은행권 경쟁환경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외환은행 인수전)에 대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며 사실상 인수전 참여의사를 밝혔다.
이 같은 강 행장의 발언에 대해 일각에선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꼭 인수하겠다는 의지보다는 가격을 부풀릴 의도도 있지 않느냐는 시각도 나온다. 시장 1위를 지키려는 국민은행이 경쟁사들로 하여금 싼 가격에 몸집 부풀리기를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평이다. 여기서 경쟁자란 그동안 독자후보처럼 여겨졌던 하나은행을 지칭한다.
그러나 ‘국민은행+외환은행’ 조합이 가져올 시너지 효과 때문에 하나은행 견제 차원보다는 인수전에 적극 참여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영국의 금융전문지 <더 뱅크>가 지난 7월 발표한 세계은행 순위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76위에 올라있다. 국내 2위인 신한금융지주는 1백20위며 외환은행은 2백13위다.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자기자본이 1백억달러가 넘어 순식간에 세계은행 60위 안에 들게 된다.
국민은행은 국내 업계 1위지만 수출입 금융시장 점유율 부문에서만 보면 우리 신한 하나 등에 밀린다. 20개국에 28개 영업점을 거느린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단숨에 이 부문에서도 ‘리딩뱅크’로 올라서게 된다. 국내시장에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강자로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전 참여는 강 행장의 외환은행 관심 표명 전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와 맞물려 더욱 관심을 끈다. 강 행장의 인수 의사 발언이 터져 나오기 전인 지난 11월9일 하나은행 김종열 행장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속에만 품어왔던 외환은행 인수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설’로만 무성했던 김 행장의 의지가 공개적으로 확인되자마자 강 행장이 맞불을 놓은 셈이다.
국내 금융업계의 또다른 큰 축인 우리금융지주의 반응도 관심을 끈다. 강 행장의 외환은행 인수 관심 발언 바로 다음날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은 “국민은행이 상대적으로 약한 기업금융과 국제금융을 개척하려면 경쟁 은행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지만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된다”며 ‘국민은행+외환은행’ 조합을 “한마디로 ‘얘기’가 되는 조합”이라 평했다. 노골적으로 국민은행이 하나은행보다 외환은행 인수 ‘적자’임을 ‘훈수’하고 있는 셈이다. 이때를 전후로 우리금융의 외환은행 인수전 참여 소문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우리금융은 LG카드 인수에 올인할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 외환은행 본점 | ||
금융계에 따르면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고객 수나 지점 규모에서 신한지주와 업계 2위를 다투는 우리금융과 거의 동급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은행에 추월당하는 것보다 업계 1위인 국민은행의 규모가 더 커지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강 행장의 발언이 나온 11월17일 맥쿼리증권은 국민은행의 등장으로 하나은행의 외환은행 인수 가능성이 낮아져 하나은행이 신한지주나 우리금융의 인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오히려 같은 날 JP모건도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합병시 은행 업계에서 약해진 입지 탓에 하나은행이 잠재적인 M&A 대상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해 업계 1위로 올라서는 동시 우리금융은 하나은행을 인수대상으로 삼아 금융권 초강자로 올라설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 이름을 둘러싼 법정공방 역시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교감설에 대한 재계 인사들의 입방아를 부추기는 대목이다. 국민은행 등 9개 은행은 지난 4월 특허심판원에 우리은행 상표등록 무효심판을 청구했지만 특허심판원이 10월31일 기각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9개 은행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며 11월21일 특허법원을 상대로 무효 청구소송을 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9개 은행단엔 국민을 비롯해 신한 조흥 하나 외환 대구 부산 전북은행 등이 포함돼 있다. 은행들은 ‘우리’라는 은행명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법정공방 장기화는 우리은행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전이 본격화되고 황영기 행장의 국민은행 측면지원사격 발언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경우 업계 1위 국민은행이 우리은행을 상대로 한 9개 은행단 내 의견 조율 등을 주도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민은행 입장에서도 우리금융이 외환은행과 LG카드를 저울질하다가 LG카드로 방향을 일원화한 점은 호재가 될 수 있다.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우리금융보다 무게감이 떨어지는 하나은행과 2파전을 벌인다는 점은 세계 60위권 은행으로 발돋움하려는 국민은행으로서는 반가운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이 같은 ‘담합설’에 대해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측은 “사실무근” “처음 듣는 얘기”라며 일축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