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화이트:저주의 멜로디>의 한 장면. |
아이돌그룹이 통상 4~6명의 멤버로 구성되는 것을 감안하면 2012년에만 신인 가수 100여 명이 새로 등장하는 셈이다. 여기서 의심이 생긴다. SM엔터테인먼트(SM), JYP엔터테인먼트(JYP), YG엔터테인먼트(YG)와 같은 대형 기획사의 경우 새로운 그룹에 통상 3년 이상 연습생 시절을 거친 이들을 배치한다. 그만큼 완벽을 기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체계적인 준비를 해오지 않던 연예기획사들도 줄줄이 아이돌그룹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어디서 멤버를 구하는 것일까.
답은 ‘연습생 빼오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른 데뷔를 바라는 연습생들에게 ‘곧바로 데뷔시켜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이 이어진다. 그런 와중에 연예기획사끼리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이미 아이돌그룹을 보유하고 있는 A 사는 최근 또 다른 연예기획사 B 사로부터 연습생을 빼왔다. B 사는 상대적으로 A 사보다 안정된 시스템을 갖춘 곳이었다. 하지만 올해 안에 데뷔시켜준다는 말에 끌린 B 사의 연습생이 A 사를 택했다. 이 과정에서 A 사가 B 사에 위약금을 물기로 했지만 막상 연습생을 받은 후에는 A 사의 말이 달라졌다. B 사의 관계자는 “당초 이야기했던 것보다 금액을 깎아달라고 하더라. 황당했지만 정식 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A 사의 요구에 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습생의 경우 정식 데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의 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부분 연습생은 각 연예기획사에 매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연습 과정에서 그들에게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보컬, 댄스, 연기 수업료를 비롯해 식비와 소소한 용돈이 주어지곤 한다. 이보다 더 큰 지출 부분은 성형이다. 데뷔 전 소속사가 성형 비용을 대주기 때문에 이들이 다른 소속사로 옮길 경우 전 소속사는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스타덤에 오른 여가수 C의 경우 한 유명 연예기획사에 오래 몸담으며 치아 성형부터 여러 곳을 손본 후 다른 기획사로 자리를 옮겨 데뷔한 것은 업계 관계자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한 연습생의 경우 다른 연예기획사에서 영입하기 위해서는 1000만~2000만 원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 데뷔 직전 해체된 비운의 걸그룹 오소녀의 멤버들. 맨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나, 유이, 유빈, 전효성, 양지원. |
신인 아이돌그룹 중에는 유독 JYP 연습생 출신 멤버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012년을 가장 먼저 연 신인 그룹 FIX의 리더인 성우와 그룹 마이네임의 세용은 JYP에서 수련했다. 그룹 엔소닉의 은호 역시 JYP 공채 8기 출신으로 오디션에서 3등을 차지하고 인기상까지 거머쥔 실력파다.
반면 가요 연예기획사 중 대장주라 할 수 있는 SM 출신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또 다른 가요 관계자는 “SM은 연습생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져 있다. 게다가 업계 1위 기획사인 만큼 오랫동안 연습 기간을 거치며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연습생이 많다”고 설명했다.
연습생을 빼오기가 여의치 않아 기존 그룹에서 활동했던 멤버들을 재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일명 ‘이효리 걸그룹’이라 불리는 스피카의 멤버 양지원은 애프터스쿨 유이와 원더걸스 유빈, 시크릿 전효성, 지나 등이 속했던 걸그룹 오소녀 멤버였다.
이 관계자는 “기존 그룹에서 활동했었다는 사실은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더걸스의 멤버였던 현아가 속했던 그룹 포미닛이 데뷔 초기 ‘현아 걸그룹’으로 알려졌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고 덧붙였다.
▲ 걸그룹 데뷔 중비중인 ‘위탄’ 출신 권리세(왼쪽)와 슈스케 출신 김은비. |
스피카의 멤버 박나래 역시 케이블 채널 Mnet <슈퍼스타K> 시즌1에서 톱10에 들었던 실력파다. 이외에도 2009년 2NE1을 데뷔시킨 후 3년간 신인을 선보이지 않았던 YG가 준비하는 걸그룹에는 <슈퍼스타K> 시즌2에 참가했던 김은비가 포함된다.
각 소속사들은 이들을 영입한 후 오랜 시간 연습생으로 훈련시키며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려 노력하고 있다. 특정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멤버의 경우 타사 음악 프로그램 출연에 제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돌그룹을 준비 중인 한 가요 기획사 대표는 “한류가 각광을 받고 있는 올해는 아이돌그룹을 선보일 수 있는 적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소 기획사의 경우 체계적으로 연습생을 육성하지 못했다. 결국 데뷔에 목말라 하는 타 기획사의 연습생이나 이미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멤버들을 합류시킬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시간에 쫓겨 손발도 제대로 맞지 않는 그룹을 잇달아 데뷔시키면 K-POP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고 꼬집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