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책의 질긴 생명력을 몸소 보여주는 보수동의 헌책방. |
보수동 헌책방 골목은 그 역사가 꽤 오래됐다. 한국전쟁 때 이 골목이 형성됐으니 60년이 더 된 셈이다. 전쟁 당시 이북에서 피란 온 손정린 씨 부부가 좌판을 깔고 헌책을 팔기 시작하면서 헌책방 골목의 역사가 씌어졌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책을 비롯해 미군부대에서 나온 잡지, 영어책, 만화책 등이 초창기 판매품목이었는데 차츰 헌책방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책의 종류도 크게 늘었다. 지금은 ‘없는 게 없는’ 책들의 집하장이다. 심지어 헌책뿐만 아니라 새 책도 구할 수 있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가격. 헌책은 정가의 30~40%, 새 책은 80% 수준에서 구입 가능하다.
현재 보수동에는 50여 개의 헌책방이 있다. 한창 때였던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70개가 넘었다. 하지만 요즘 누가 책을 읽나. 디지털이 종이의 자리를 밀어내고 주인노릇 하는 시대에 말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확신에도 불구하고, 종이책이 질긴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태공식으로 표현하자면 책장을 넘길 때의 ‘손맛’을 디지털이 감히 따라올 수 없다. 게다가 그 특유의 책 냄새란….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 가면 세월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책 냄새가 물씬 피어난다. 헌책방들은 고서, 인문과학서적, 문학서적, 학습서, 외국원서, 예술서, 만화책 등 저마다 주 취급품목이 있다. 그런데 하나 똑같은 게 있다면 헌책방마다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는다는 것이다. 마치 “이것이 내 책방만의 경쟁력”이라고 말하는 듯한데, 뒤죽박죽 박아놓은 것 같지만 그곳에는 주인들만의 진열 노하우가 있어서 책의 위치를 단번에 찾아낸다.
헌책방에서 얻는 최고의 즐거움은 역시 예상치도 못 했던 책을 발견하는 것이다. 시중에서 절판됐거나 출판됐는지 알지도 못 했던 책, 혹은 관심에 두었으나 구입 방법을 몰라 입맛만 다셨던 책들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찾아냈을 때의 그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편,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는 벽화계단길이 지난 2009년 11월 생겼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 정기적으로 문을 닫는 첫째, 셋째 일요일 방문객들을 위해 같은 해 5월 셔터문마다 그래피티작품으로 단장을 했는데, 그 반응이 좋아서 벽화계단길을 조성하게 됐다. 계단길은 약 50여m 남짓 이어진다. 길 양 옆으로 삽화가 그려지고, 동화가 씌어졌다. 1에서 8까지 번호가 매겨지고 곰, 사슴, 카멜레온, 거북, 기린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동옥 여행작가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