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 2단(오른쪽)과 일본의 요시다 미카 8단. |
우리 아마추어들은 지금도 바둑을 다 두고 공배를 메울 때는 “다 두었지?” “다 공배지?” 하고는 뭐 순서 따지지 않고 주르륵 공배를 메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국 룰로 바둑을 둘 때 그러면 안 된다. 공배도 집이므로 하나씩 교대로 메워야 한다. 그렇다면, 공배도 집이지만 하나씩 차지하니까 결국 차이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집에다가 돌까지 세어야 하니 계산만 복잡해지는 것이고, 공배 때문에 승부가 바뀌거나 하는 경우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은 공배가 승부를 바꾸는 경우가 있는 것.
2월 1일 중국 장쑤성 장옌의 친호리조트에서 열린 제3회 황룡사쌍등배 한-중-일 여자삼국지 제1국에서 우리 무표정의 소녀 승부사 최정 2단(16)이 일본의 41세 중견 강호 요시다 미카 8단과 격돌했는데, 그 바둑에서 공배가 승부를 갈랐다. 반집을 이기고 있던 최 2단이 반집을 진 것.
<1도>를 보자. 최 2단이 흑이다. 좌상변 쪽 흑1로 이은 시점에서, 우리 식으로는 다 둔 상황. 나머지 빈 곳은 전부 공배다. 그런데 백은 공배 메우기를 시작하지 않고 2로 패를 집어넣었다. 꽃놀이패인 데다가 팻감도 많으므로.
백2로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계가를 한다면? 백이 5개. 흑집은 좌상귀 11집, 좌변 6집, 우하 일대 10집, 우상귀와 우변 34집, 따낸 돌 2개, 합계 63집. 백집은 상변에서 중앙 22집, 우변 3집, 좌하귀와 하변 24집, 따낸 돌 5개, 합계 54집. 흑이 반면 9집을 이기고 있다. 중국 룰은 덤이 7집반이므로 흑의 1집반승이다. 여기서 백2의 곳 패는 흑이 이길 수 없으므로 흑이 1집 줄게 되는데, 그래도 흑이 반집은 이긴 바둑이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었다.
<2도> 흑1로 일단 따냈으나 백2 팻감 다음 4로 에 되따내고 흑은 버틸 수 없어 5로 이었다. 1집이 줄었다. 그런데 다음 백은 흑1 자리에 잇지 않고 6으로 공배를 메웠다. 공배도 1집이고, 패는 어차피 이길 수 있으니까. 계속해서….
<3도> 흑은 패를 이길 수 없으므로, 흑1로 공배를 메웠다. 백이 패 자리를 잇고 종국하기를 기다리면서. 그런데 백은 여전히 잇지 않고 또 2로 공배를 메우고 있다. 흑3~백8 다음 흑은 9로 한번 따내본다. 왜 패 자리를 잇지 않고 계속 공배만 메우시는 거야, 조금 의아해 하면서. 반집은 확실히 지신 걸 알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러시는 건가?
<4도> 흑이 패를 따내자 백은 또 즉시 1로 팻감을 쓰고 3으로 되따낸다. 왜 이러시지? 그러면 패싸움이나 좀 해 볼까. 흑6과 백9는 각각 패따냄. 에이 어차피 패는 안 되는 거, 그냥 흑10으로 공배나 메우자.
<5도> 흑이 공배를 메우면 백도 공배를 메운다. 흑4로 또 패따냄. 그러나 패는 흑이 안 된다. 백은 팻감이 좌상귀 A부터 3개, 우상귀 B에서 2개, 우변 C의 곳, 하변 D, 우하귀 E 등 넘친다. 흑은 좌하귀 F에서 3개, 하변 G와 H, 우변 I 정도다. 그래서 결국은….
<6도> 백1로 잇고 바둑은 끝났다. 패 자리에 백이 들어가 흑이 먼저 따내고, 백이 되따내고 이었으니 그건 비겼고 좌변 흑집이 1집 줄었으나 최 2단은 이래도 반집은 이기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백1로 이은 것 자체가 또 1집. 흑집이 1집 줄고, 백이 공배로 1집을 벌었으니 안팎 2집 차이가 나면서 ‘흑 9집 유리’는 ‘흑 7집’로 바뀌고, 최 2단은 반집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중국 룰은 복잡하다. 아니, 복잡할 것까지는 없는데, 무엇보다 종국 후 계산하기가 아주 불편하다. 심판이 옆에서 계산을 해 주어야 한다. 바둑의 장점 가운데 심판이 필요 없다는 것인데, 중국 룰은 그런 장점이 없다.
중국 룰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배를 계산한다는 것은,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놓는 행위에 철두철미 주의를 요구한 것, 바둑판의 모든 눈금에 의미를 부여한 것, 그런 것들은 관점에 따라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하나, 바둑판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바둑판 위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심판의 유권해석 같은 게 필요 없이 실전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은 우리 룰보다 분명히 앞선 부분이다. 예컨대 귀곡사, 장생 같은 것에 대해 우리 식은 “흑(또는 백)의 권리를 인정해 이러이러하게 되는 것으로 규정한다”로 되어 있다. 룰로서는 좀 구차한 면이다.
귀곡사의 경우, 자체로는 패로 해결해야 하는 형태. 우리 식은 “귀곡사를 당한 쪽은 손을 댈 수 없지만, 잡은 쪽은 팻감을 없애고 잡으러 갈 수 있으므로, 그 권리를 인정해 귀곡사로 잡은 쪽이 완생하고 있는 한 귀곡사는 무조건 잡힌 것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이에 비해 중국 룰은 그런 단서가 필요 없는 것. 상대가 쓸 수 있는 팻감을 없애는 행위, 내 집에 가일수하는 행위, 즉 우리 식으로는 내 집을 메우는 손해 행위가,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집도 집이고, 살아 있는 돌도 집이니까.
얼마 전에 여류명인까지 되어 한창 기분이 좋아 있을 우리의 희망 최정인데, 삶이란 늘 호사다마, 이번엔 룰에 서툴러서 분패했다. 그래도 소녀 포커페이스 최정이 분해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흐뭇한 웃음이 난다. 그러나 정관장배는 좀 딱하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