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어붙은 수면 위에 눈까지 쌓여 제대로 된 겨울 풍경을 연출하는 예당호. |
겨울호수는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꽁꽁 언 수면이 광활하게 펼쳐진 장면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지만, 눈이라도 내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쌀가루처럼 빙면에 눈이 덮이면 쓸쓸하고 볼품없기 짝이 없던 호수는 낭만이라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금세 치워지거나 더러워지고 마는 땅의 눈과 달리 호수의 눈은 좀처럼 녹지 않고 누가 와서 헤집으며 밟는 사람도 없다.
예당호는 그렇게 낭만적인 겨울호수의 분위기를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예당호는 충남 예산군 대흥면과 응봉면에 걸쳐 있는 커다란 저수지다. 남북으로 8㎞, 동서로 2㎞에 달하며, 그 둘레가 40㎞인 예당호는 가히 바다와 같다. 비록 바다처럼 파도가 일지 않지만 예당호에는 바다만큼 물고기가 많다. 1929년 착공 후 잠점 공사가 중단됐다가, 1946년 재개해 1963년 준공된 이 저수지에는 붕어, 잉어, 쏘가리 등 민물고기가 넘쳐서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많은 낚시꾼들이 찾는다.
예당호 가장자리로는 낚시꾼들을 위한 좌대가 즐비한데, 이것은 예당호의 풍경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특별한 소재가 되어 준다. 좌대는 수면 아래 뿌리를 내리고 사는 버드나무숲 주변에 특히 많이 자리를 잡고 있다. 버드나무와 좌대를 배경으로 한 예당호의 해오름 풍경이 아주 일품이다. 요즘은 예당호가 꽁꽁 얼어 낚시꾼들이 얼음낚시 재미에 푹 빠졌다. 50㎝도 넘게 언 얼음을 땀 뻘뻘 흘리며 깬 후 간이의자 위에 앉아 물고기와 수싸움을 벌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버드나무가 서 있는 곳은 갈대도 무성한데, 이곳은 가창오리나 철새들이 천적을 피해 숨어들 장소를 제공한다. 그런데, 그것을 영악하게 알고 노리는 녀석이 있다. 바로 삵이다. 갈대숲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먹이를 포착하면 녀석은 번개처럼 달려들어 사냥을 한다.
한편, 예당호에는 조각공원이 하나 있다. 예당호를 내려다보는 응봉면 후사리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멋진 조각품들이 야외에 전시돼 있고, 한쪽에는 통창으로 드는 햇살과 감미로운 음악이 좋은 카페 ‘이앙’이 있다. 이앙은 모내기를 뜻하는 한자어다. 이앙은 모를 심듯 마음에 편안함과 휴식을 심는 카페다.
▲ 대흥동헌을 둘러 보고 있는 관광객의 모습(왼쪽). 앞면보다 옆면의 모양이 더욱 인상적인 수덕사 대웅전. 국보 49호로 지정돼 있다(오른쪽). |
슬로시티의 가입조건은 전통이 잘 보존돼 있어야 하고, 공동체적 삶이 지속되고 있어야 한다. 대흥면에는 동헌과 향교 등 옛 건물이 있으며 ‘의 좋은 형제’로 대표되는 정과 우애가 마을에 넘친다.
▲ 대흥면은 ‘의 좋은 형제’ 이야기로 유명한 곳이다. 대흥면사무소 앞에 이야기의 주인공을 조각한 작품이 있다. |
동헌과 향교만이 느리게 가는 시계 속으로 안내하는 것은 아니다. 대흥면에는 KBS드라마 <산너머남촌에는>의 배경이 되는 작은 구멍가게를 비롯해 옛 모습을 간직한 집들이 많다. 뒤편에서 대흥면을 보듬어 안은 봉수산에는 백제시대 축조된 임존성이 있다. 둘레 2.4㎞의 성으로 백제부흥운동군의 거점이었던 성이다. 지난해 말 조성을 완료한 ‘느린 꼬부랑길’ 1코스가 임존성을 지난다. ‘느린 꼬부랑길’은 모두 3코스로 이루어졌는데, 모두 1~2시간의 짧은 구간으로 걷기에 부담이 없다.
추사고택과 수덕사는 예산에 발을 들였다면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이다. 신암면 용궁리에 자리한 추사고택은 독창적인 서체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가 살았던 집이다. 본래 99칸의 대가였으나 지금은 그 규모가 상당히 줄었다. 18세기 중엽 건축된 고택으로 김정희 영정이 모셔져 있다.
추사고택에서 당진 방향으로 약 500m쯤 북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예산 백송’이 있다. 껍질의 색깔이 하얀색인 소나무라서 ‘백송’(白松)이다. 추사 김정희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종자를 가지고 와 고조부 김흥경 묘소 앞에 심었다. 키는 약 7m 정도로 그리 큰 편이 아니다. 바로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적송과 크기가 비교된다. 덩치뿐만 아니라 또 비교되는 것이 색깔이다. 백송의 껍질은 회분칠을 해놓은 듯하다. 약간 탁한 하얀색인데, 햇빛을 받으면 그보다 조금 더 밝게 보인다. 200년도 더 된 이 나무는 건강이 심히 걱정되는 상태다. 한 뿌리에서 나서 세 개의 줄기로 분파했는데, 동쪽 줄기만 남아 있다. 1980년에는 부러지거나 벗겨진 부분에 외과수술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수덕사는 해인사·통도사·송광사·백양사와 함께 대한불교 조계종 5대 총림의 한 곳이다. 백제 말엽인 599년 자명법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는 1308년 건립된 대웅전이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청을 하지 않은 민낯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물이다. 건립 초기만 해도 단청을 했지만, 이후로 벗겨지면 벗겨지는 대로 두었던 것이 지금의 수덕사 대웅전을 만들었다. 더욱 또렷이 드러나는 나무의 결이 당당하다. 수덕사 대웅전은 측면의 짜임이 특히 뛰어나다. 기둥과 대들보로 면분할된 측면은 굉장히 정교하고, 안정감이 있다. 지붕은 사람인자 모양의 맞배형식이다. 한편, 수덕사 바로 앞에는 한국 현대미술계의 거장 이응로가 한때 기거했던 수덕여관이 있다. 이 화백의 본처 박귀희 씨 소유였던 것을 수덕사가 매입해 공개하고 있다.
김동옥 여행작가 tour@ilyo.co.kr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당진분기점→당진상주고속국도→수덕사IC→보령, 홍성 방면 21번국도→응봉사거리에서 619번지방도 타고 좌회전→예당지→대흥면.
▲먹거리: 예당저수지 주위로 산마루가든(041-334-9235), 할머니어죽(041-331-2800) 등 민물매운탕과 어죽을 잘 하는 집들이 많다.
▲잠자리: 온천으로 유명한 덕산면에 ‘리솜스파캐슬’(041-330-8000), 로얄파크(041-338-9100) 등 숙박업소들이 몰려 있다. 대흥면 봉수산자연휴양림(041-339-8936)에 묵어 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문의: 예산군청 문화관광과 041-339-7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