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서 부부가 된 우디 앨런과 한국계 입양아 출신 순이 프레빈. EPA/연합뉴스 |
두번의 결혼 경험이 있으며 다이앤 키튼과 연인이었던 앨런이 미아 패로를 만난 건 1979년이었다. 1945년 생으로 앨런보다 10세 연하였던 패로는 유명한 영화인 집안 출신이었다. 아버지 존 패로는 감독이었고 어머니 모린 오설리번은 <타잔> 시리즈의 제인으로 유명했다.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패로는 수녀가 되려 했으나 배우로 진로를 바꾸었고, 스무 살에 스타덤에 오른다.
1966년 패로는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서른 살 연상이었던 프랭크 시내트라와 결혼하면서 화제를 뿌리지만 2년 후에 이혼했고, 1970년엔 작곡가이자 영화 음악가이면서 저명한 지휘자인 앙드레 프레빈을 이혼시키고 그와 결혼한다. 프레빈은 16세 연상이었다. 패로는 프레빈과 9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세 아이를 낳았고 세 명을 입양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순이 프레빈. 순이는 여덟 살 때 패로와 프레빈의 딸이 된다.
▲ 미아 패로 |
문제는 1992년 1월 12일 오후에 터졌다. 앨런이 사무실에 간 사이 그의 아파트에 들렀던 패로는 수북하게 쌓인 폴라로이드 사진을 발견한다. 그 안엔 스무 살이 갓 넘은 순이의 누드가 찍혀 있었고, 너무 놀란 패로는 사진을 들고 가 순이에게 추궁했다. 순이는 1990년부터 앨런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자백했고, 앨런은 1991년 말부터 진지한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이후 언론은 1990년 1월에 NBA의 뉴욕 닉스 경기에서 다정히 손을 잡고 관람 중인 앨런과 순이의 사진을 공개했다.
패로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앨런은 순이와의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하면 그녀의 화가 수그러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패로는 앨런에게 더 이상 아이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통보했다. 앨런은 화를 풀기 위해 밸런타인데이에 선물을 들고 패로의 집을 방문했는데 이때 패로에게 상자 하나를 받았다. 그 안엔 순이의 누드 사진 카피본으로 감싼 스테이크 칼이 들어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도 패로와 앨런은 종종 만나 식사를 하곤 했다. 아마도 패로는 그때 저울질을 했던 듯하다. 앨런을 용서하고 자신의 개런티를 올리느냐 아니면 이 문제를 끝까지 추궁하느냐. 패로는 후자를 선택했다. 딜런의 일곱 번째 생일이 있었던 7월 앨런은 패로의 집을 방문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의 머리맡엔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거기엔 ‘아동 성추행범’이라는 글이었다. 앨런은 패로와의 관계가 끝났음을 직감했다.
대형 사고는 8월에 터졌다. 패로의 옆집 베이비시터는 과거 패로의 아이들도 돌보았는데, 그녀에 의하면 과거 앨런이 딸 딜런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걸 보았다고 말한 것이다. 어린 딜런을 추궁한 패로는 앨런이 딜런의 ‘그 부분’을 쓰다듬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는데, 소아과에 데려갔지만 성추행의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의 진료 기록은 법적으로 병원이 경찰에 보고해야 했고, 뉴욕의 아동복지국도 알게 되었다. 드디어 전쟁은 터졌다.
미디어들은 때 아닌 대목을 맞이했다. 게다가 9월엔 결국 앨런과 패로의 마지막 영화가 된 <부부 일기>가 개봉됐는데, 이 영화에서 앨런은 젊은 대학원생과 바람을 피우는 교수로 등장했다. TV에선 ‘앨런 vs 패로’를 주제로 상반된 의견을 지닌 패널과 방청객들이 나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1993년 3월 법원은 앨런의 성추행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대신 앨런이 요구했던 모제스, 딜런, 새첼에 대한 양육권은 박탈했다. “아버지로서 자기중심적이며 신뢰할 수 없고 아이들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패로는 맨해튼에서 코네티컷으로 이사했고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해 아이들에게서 앨런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아이로니컬한 건 법정에서의 패배가 오히려 순이와의 관계에 자유를 주었다는 점이다. 35년의 나이차가 나는 앨런과 순이는 1997년에 결혼했고, 이후 두 아이를 입양했다. 그럼으로써 앨런은 패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새첼(이후 ‘로만’으로 개명)과의 관계에선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올해 25세가 된 새첼은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의 아버지이면서 나의 누나와 결혼했다. 그 결과 나는 그의 아들이면서 처남이 된 것이다. 그건 도덕적 범죄다. 난 그를 만날 수 없다. 나는 나의 아버지와의 관계와 도덕적 일관성을 동시에 유지할 수 없다. 나는 수많은 입양된 형제들과 성장했다. 그들은 나의 가족이다. 순이가 내 누나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다른 입양된 형제들에 대한 모욕이다.”
한편 앨런은 두 달 뒤 다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걸 스캔들이었다고 하는 건가? 나는 순이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와 결혼했다. 우린 15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스캔들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그것을 스캔들이라고 부른다.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인생엔 흥미로운 험담거리가 있었을 뿐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