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9년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에디 피셔가 그들이 결혼하기 전 찍은 사진. 피셔는 당시 데비 레이놀즈의 남편이었다. 연합뉴스 |
할리우드 역사에서 리즈 테일러만큼 롤러코스터 같은 여론에 휩싸인 스타는 흔치 않다. 한때 연민의 대상이었던 그녀는 순식간에 천하의 몹쓸 여자가 되었고, 이후 사랑과 이별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동네에서 자자했던 미모를 토대로 영화에 데뷔했을 때 그녀의 나이 열 살. 아역 배우로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신부의 아버지>(1950)로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하고, 이즈음 첫 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사실 테일러의 연애 전선은 틴에이저 시절부터 끊임없이 이어졌다. 배우인 리처드 롱과 마셜 톰슨, 풋볼 선수인 글렌 데이비스 등은 그녀가 16세 때 사귀었던 남자들. 하지만 테일러를 ‘제대로’ 사로잡은 남자는 콘래드 힐튼 주니어. 힐튼 호텔 체인을 만든 콘래드 힐튼의 아들이자 패리스 힐튼의 종조부인 그는 열여덟 살의 테일러와 1950년 5월 6일에 결혼했고, 3개월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6개월 뒤인 1951년 2월 1일에 이혼했다.
이후 리즈 테일러에게 결혼과 이혼은 중독된 그 무엇과도 같았다. 영화감독 스탠리 도넨과 잠시 사귀었던 그녀는 두 번째 남편인 배우 마이클 와일딩을 만나 1952년 2월 21일에 결혼한다. 테일러는 스무 살, 와일딩은 마흔 살이었다. 그들은 두 명의 아이를 낳은 후 1957년 1월 30일에 이혼한다. 이혼 수속이 끝난 지 3일 만인 1957년 2월 2일 리즈 테일러는 영화제작자인 마이클 토드의 아내가 되었고 6개월 뒤 딸이 태어났다. 23세 연상의 토드는 당시 48세. 스트립쇼 사업을 시작으로 브로드웨이를 거쳐 할리우드에 진출한 그는 <80일간의 세계일주>(1956) 같은 대작을 제작했던 인물로 첫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1947년에 배우 조앤 브로델과 결혼했으나 1950년에 이혼한 상태였다. 이후 테일러를 끈질기게 따라다닌 그는 25캐럿 다이아몬드로 프러포즈에 성공했다.
아마도 토드는 테일러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남자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58년 3월 22일 아내의 이름을 딴 ‘럭키 리즈’(Lucky Liz)라는 전용기를 타고 뉴욕으로 가던 그는 추락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그러면서 1950년 잉그리드 버그먼과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결혼 이후 최고의 스캔들인, 에디 피셔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러브 어페어가 펼쳐진다.
가수였던 에디 피셔는 배우 데비 레이놀즈의 남편이었다. 레이놀즈와 피셔는 1955년에 결혼했는데 신혼 때부터 삐걱거렸다. 서로 바쁜 스케줄 탓에 가끔씩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히려 그들의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피셔가 멘토처럼 따르는 사람이 바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남편이었던 마이클 토드였다. 피셔-레이놀즈 부부와 토드-테일러 부부는 종종 함께 어울렸고, 레이놀즈와 테일러는 동갑내기에 MGM 소속의 동료이기도 했다. 토드와 테일러는 거친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매우 노골적인 스킨십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데비는 “그들은 마치 파티를 벌이고 포옹하고 사랑하고 서로 만지작거리는 아이들 같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피셔는 부러워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아내인 레이놀즈와 테일러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1956년에 딸 캐리 피셔(이후 배우로 데뷔해 <스타워즈>(1977)에서 레이아 공주 역을 맡는다)가 태어났지만 피셔와 레이놀즈의 결혼 생활은 종국을 향해 치달았다. 그런데 1958년 3월 22일 마이클 토드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피셔는 멘토의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테일러 곁에 있었다. 레이놀즈도 테일러의 두 아이를 대신 돌봐주며 위로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로로 시작한 관계는 욕정으로 변했다. 피셔에 의하면 “천사의 얼굴에 트럭 운전사의 성 도덕”을 지녔던 테일러는 거대한 성적 판타지였던 것이다. 어느 날 피셔는 옅은 핑크색 목욕 가운을 입고 욕조에 발을 담근 테일러와 눈이 마주쳤다. 피셔는 말했다. “난 당신과 결혼할 거예요.” 테일러는 간단히 대답했다. “언제요?” 그들은 그렇게 시작했다. 남편이 사고로 죽은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소문은 금방 퍼졌고 데비 레이놀즈는 “내 남편은 테일러의 타입이 아니다”라며 애써 부정했지만 테일러는 단호했다. 당대의 유명한 가십 칼럼니스트 헤다 호퍼가 “하늘에 있는 당신 남편이 무섭지도 않느냐”고 으름장을 놓았을 때 테일러는 “피셔와 레이놀즈는 단 한 번도 서로 사랑한 적이 없다”고 못 박았다. “남편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나에게 뭘 원하나? 나이 스물여섯에 매일 밤 혼자 자라는 건가?” 테일러는 가련한 미망인에서 순식간에 악녀가 되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