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가 투명하지 못한 예산집행과 행정 등으로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홀로 들뜬 축구협회
▲ 조광래 전 감독.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축구협회는 연말부터 연초까지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온통 부정적인 사안이 쏟아지는 데 반해 좋은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분위기를 반전시킬 카드가 절실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전해진 흐뭇한 소식. 홍명보호가 2012 런던올림픽 본선에 안착하며 한국 축구는 7회 연속 올림픽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 것이다. 전전긍긍하던 축구협회에게는 아주 반가운 뉴스였다.
2월 22일 오만 원정에서 홍명보호는 예상보다 훨씬 큰 점수 차(3골)로 대승을 챙기며 지난주(3월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카타르와 런던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본선 행을 확정했다.
이에 한껏 고무된 축구협회는 월드컵 16강에라도 진출한 것처럼 성대한 환영 행사를 열었다. 마치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을 전세 낸 것처럼 근래 보기 드문 행사였다.
어린 태극전사들의 노력은 칭찬받기 마땅했지만 사실 축구협회의 역할은 크지 못했다. 성인 대표팀과 일부 선수들의 중복 차출 논란이 빚어질 때에도 제대로 중재를 하지 못한 데가 바로 축구협회였다.
이를 지켜본 한 축구인은 “홍명보 감독과 코칭스태프, 휘하 선수들의 공로까지 모두 축구협회가 가로채려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씁쓸해했다.
스포츠 언론들과 축구 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아온 축구협회의 코미디는 또 있었다.
3월 5일 같은 날에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을 통과한 최강희 국가대표팀 감독과 홍명보 올림픽팀 감독을 모두 불러놓고 공식 기자회견을 진행한 것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이날 정오 무렵에는 조중연 축구협회장이 두 사령탑을 초대해서 서울 시내 특급 호텔에서 오찬을 가졌다. 축구협회는 인정하지 않지만 다분히 긍정 여론 조성을 의식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행사로 비치기 충분했다. 이 자리에 모인 축구협회 고위층의 모습도 썩 좋게는 보이지 않았다. 좋지 않은 사태가 불거졌을 때에는 거의 은둔(?)에 가까운 행보로 일관했던 이들이었다. 잘못은 분명한데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겠다는 목소리를 낸 적도 없었다. 그랬던 그들이 상황이 조금 좋아진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공식 행보를 시작한 셈이다. 축구협회 수뇌부가 ‘변하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 번 입증한 장면이었다.
▲ 지난 5일 조중연 축구협회 회장이 최강희 감독과 홍명보 감독을 초대해 오찬행사를 가졌다. 연합뉴스 |
축구협회는 현재 법적 분쟁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이 중 한 가지는 비리 직원에게 준 위로금 1억5000만 원을 환수하기 위한 사안이고, 다른 한 가지는 전임 조광래 감독과 함께 일했던 대표팀 전 코칭스태프의 잔여 임금 지급 문제다.
비리 직원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곧바로 특별감사에 나선 대한체육회의 권고대로 축구협회는 해당 직원을 대상으로 고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이와 동시에 서울 시내 한 경찰서에 이 직원을 횡령과 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이 사태의 중심에 섰던 김진국 전 전무이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체육회는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할 것을 지시했지만 “부하 임원을 직접 고소하는 건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조 회장의 뜻에 따랐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과 기조는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대신, 여러 명의 축구협회 직원들이 참고인 조사를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가려지지 않은 상황.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다. 여전히 계류 중인 임금 미지급 사태도 전혀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조 전 감독을 해임시키면서 박태하 수석코치(현 FC서울)와 서정원 코치(현 수원 삼성) 등 기존 코치들에게 축구협회는 올해 7월까지 돼 있는 잔여 임금을 주지 않고 있다. 조 전 감독도 당연히 받지 못했다. 작년 12월 이후 이들의 은행 계좌에는 돈이 입금되지 않고 있다. 물론 브라질로 돌아간 가마 코치에게도 돈을 주지 않았다. 최초 계약서를 파기하고, 달랑 A4용지 한 장짜리 엉성한 새 계약서를 제시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던 축구협회는 그들 뜻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자 이 사안을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법적 중재에 돌입했다. 이미 국제 망신을 피할 수 없다.
국내 코치들의 상황은 가마 코치와는 조금 다르다. 약간이나마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하지만 딱히 기류가 변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긍정적이지도 않다. 국제국장을 맡아오다가 김 전 전무이사를 대신해 축구협회 행정 수장에 오른 김주성 사무총장이 사태 해결의 총대를 메고 있다. 지금까지 김 총장은 코치진의 전체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박 코치와 몇 차례 전화통화를 했다. 이들 코치들이 몸담고 있는 구단들의 동계 전지훈련이 끝난 뒤 대면하기로 했지만 아직은 간접 접촉으로 대신하고 있다. 날짜를 확정하지 않았던 만남 역시 기약 없이 계속 미뤄졌고, 이젠 K리그 2012시즌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축구협회는 가마 코치의 중재 결과를 기준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코치들에게도 이러한 입장을 이미 흘렸다. 이에 이들 코치들은 “받지 못한 돈을 반드시 받았으면 한다”는 뜻을 확실히 전달했다. 최악의 경우, 법적 사태까지 이어질 수 있음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깔끔하지 못한 금전 처리는 매우 한심스럽다. 더욱이 한국 정서상 드러내놓고 받지 못한 돈을 달라고 조르는 모양새도 코치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다수의 축구인들은 “축구협회가 엉뚱한 자존심 경쟁을 하려는 모습이다. 필요 없는 힘겨루기를 한다는 의미다. 비리 직원에게는 위로금조로 1억 5000만 원을 쉽게 주면서 공적이 분명한 이들에게 돈을 쓰지 못하겠다는 건 도무지 좋게 생각할 수 없다. 위로금에 어떤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분명 피해와 손해를 입었음에도 선뜻 외부에 노출시키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다. 또 금전 문제는 사람을 치사하게 만든다. 여기에 엄격한 축구계 선후배라는 위계질서를 악용한다고도 볼 수 있다. 직장을 새롭게 구했으니 계약에 따른 남은 임금을 줄 수 없다고 했는데, 비리 직원이 직장을 새로 구하면 대체 어떤 판단을 내렸을지 정말 궁금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더 이상 축구협회에 상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