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정홍원 위원장이 6차 공직후보자 추천자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
총 선 예비후보자들의 낙천 반발은 선거 때마다 되풀이돼 온 고질병이다. 2008년 MB정권 1년차에 치러진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은 친이계 위주의 공천, 이른바 ‘친박 학살’을 자행했다. 2004년 노무현 탄핵 역풍 때 천막 당사를 진두지휘하며 한나라당을 일으켜 세운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낙천한 친박계 의원들을 향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비난했다.
낙천한 친박계 인사들은 대거 탈당해 무소속 연대, 이른바 ‘친박연대’를 결성해 13%의 정당지지를 얻었고 지역구 6석과 비례대표 8석을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의원들까지 포함하면 한나라당은 의석 20석 이상을 빼앗겼다. 현재 이들 대부분은 새누리당으로 합류해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바람대로 “살아서 돌아왔다.”
4년 후 판세가 역전됐다. 새누리당은 과거와 같은 낙천 반발을 막기 위해 2월 6일 공천신청 접수를 시작하면서 예비후보자들로부터 ‘공천 탈락할 경우 승복하겠다’는 서명을 받았다. 또 ‘낙천 시 행보’에 관해 자필로 쓰는 란까지 추가했지만 모든 예비후보의 승복을 얻지는 못했다.
3월 16일까지 공천 결과에 반발해 새누리당을 탈당한 현역 의원은 총 5명. 국민생각으로 당적을 옮긴 전여옥 의원(영등포갑)을 시작으로 최병국(울산 남구갑), 이윤성(인천 남동갑), 허천(춘천), 정미경(수원을) 의원이다. 전 의원을 제외한 4명 의원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4년 전 ‘친박 학살’을 이끌었던 이방호 전 사무총장 역시 사천·남해·하동 지역 무소속 출마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과거 친박연대와 같은 돌풍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가의 관측이다. 한 재선의원의 보좌관은 “친박연대와 같이 되려면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김무성 의원의 백의종군 선언과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만든 국민생각이 총선에서 힘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합쳐져 새누리당 잔류 쪽으로 가닥을 잡은 의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 새누리당 진수희(왼쪽), 안상수 의원이 당 잔류를 선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
이제 표면적으로 새누리당의 분열은 봉합된 듯 보이지만 속단은 이르다. 현재 새누리당은 공천 경쟁률이 가장 높은 대구 지역 공천을 매듭짓지 못해 여전히 집단 반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공천 막바지에 이뤄진 ‘낙하산 공천’도 지역 예비후보자들의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지난 15일 있었던 새누리당 8차 공천에서 부산 중·동구에서 낙천한 나성린 의원과 서울 용산구 경선에서 패한 배은희 의원을 부산진갑과 수원을에 각각 공천해 해당 지역 예비후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미래희망연대 비례대표 출신 송영선 의원의 경우 대구 달서갑과 파주갑에 연이어 낙천하자 최근 남양주갑으로 지역구를 옮겼다. 새누리당 남양주갑당협위원회 측은 “남양주는 쓰레기 재처리장이 아니다. 버젓이 예비후보가 지역에서 뛰고 있는데 추가 공천 신청을 받으면서까지 낙하산 공천을 할 경우 새누리당 지도부를 향한 압박이 있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잡음은 보수분열에 미치지 않고 몇몇 의원들의 각자도생에서 그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서울시당 관계자는 “친이계 인사들 면면을 살펴보면 무소속 출마로 승산이 없는 사람들이다. 현재 이들 대부분이 잔류를 선언한 것은 박근혜 의원의 대권가도가 주춤해질 때 다른 대권주자들과 규합할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라고 본다”고 평했다. 복수를 접은 새누리당 낙천 의원들은 총선 이후 대선이 다가오면서 자신들의 앞날을 저울질할 심산이다.
민주통합당 낙천자들의 반발도 그다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개인적인 억울함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구 민주계 인사들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 관악갑 공천에서 탈락한 한광옥 의원은 지난 12일 김덕규 전 국회 부의장, 김대중 전 대통령 보좌관 출신인 김기석 전 의원 등 구 민주계 인사들을 주축으로 ‘정통민주당’을 창당했다. 장기표 대표가 있는 녹색통일당, 안철수 원장을 지지하는 2040 청년들이 만든 제3신당과 합당하는 형식으로 당을 꾸린 정통민주당은 강봉균·최인기·조영택 등 낙천한 호남지역 의원들과의 연대를 통해 세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녹색통일당 출신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원내 진출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 세력과 함께 제대로 된 사회보장제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에 맞서 현실 정치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 민주통합당 대표실에서 점거농성 중인 전혜숙 의원. 연합뉴스 |
지난 15일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가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의원(동해·삼척)과 전혜숙 의원(서울 광진갑)의 공천을 취소하자 전 의원은 한명숙 대표실 점거 농성에 들어갔고 이화영 전 의원 역시 공천 취소 조치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뜻을 밝혔다.
마포갑 경선에서 패한 김진애 의원 역시 SNS를 통해 “누구 아들딸, 누구 친구, 아내, 남편, 현장투표 동원력이 무서울 정도였다. 상대후보와 말 맞추는 광경도 있었다”는 한탄을 남겼다. 공천은 끝났지만 낙천 의원들의 ‘소심한 복수’는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정당 맞바꾼 인사 유성서 맞짱 주목
지난 3월 5일 영남 지역 군소정당인 영남신당자유평화당(영남신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변경한다고 등록해 다음날 명칭 변경을 승인받았다. 15년간 써왔던 이름을 빼앗긴 새누리당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설상가상 지난 13일 제주을에 공천을 신청한 새누리당 차주홍 예비후보가 공천 탈락 이후 한나라당으로 당을 바꿔 출마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새누리당 후보가 ‘짝퉁’ 한나라당에 ‘복당’하는 ‘개그’ 같은 일이 벌어진 셈이다.
새누리당 홍보국 관계자는 “도의가 아니다. 공천이 끝난 이후 가처분 신청을 해야 할지 논의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지만 한나라당 측은 “지금부터 우리 이름을 함부로 사용할 경우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
한 지역구에서 예비후보들끼리 서로 당적을 바꿔 경쟁에 나선 곳도 있다. 대전 유성구의 경우 현역인 이상민 의원이 자유선진당에서 민주통합당으로, 이에 맞서 송석찬 후보가 민주통합당에서 자유선진당으로 자리를 옮겨 맞붙었다. 자유선진당 한 보좌관은 “유성은 과거 민주당 강세 지역이라 이 후보의 낙승이 예상되지만 최근 공천 파동으로 지지가 많이 꺾였고, 막판에 지역 기반인 선진당 쪽으로 바람이 불 수 있어 당락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