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공연에서 노출 의상이 문제가 된 서인영. |
요즘 K-POP이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 한국 남성들이 영화 <라붐>에 나오는 프랑스 배우 소피 마르소를 보고 열광했듯, 프랑스 남성들이 지난해 파리 공연에 나선 소녀시대를 향해 환호했다. 세계적인 모델의 반열에 오른 패션모델 이현이가 최근 SBS 예능프로그램 <강심장>에 출연해 외국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하며 “소녀시대가 반기문 총장보다 외교를 더 활발히 하고 있다”고 농담처럼 던진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K-POP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우려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외국인들이 K-POP을 즐겨 듣는다 해도 그들과 맞지 않는 한국인의 정서까지 이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K-POP 스타들이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제스처나 분장 등이 특정 인종에 대한 희화화로 비춰지며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미국의 대중매체 제저벨(Jezebel)은 최근 ‘K-POP과 흑인분장,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칼럼을 통해 일부 K-POP 스타들의 행태를 문제 삼았다. 이 매체는 그룹 비스트와 버블 시스터즈가 흑인 분장을 한 사진까지 게재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 비스트 멤버 이기광의 흑인 분장 모습. |
미국 시장에 정통한 한 연예 관계자는 “인종에 관한 문제는 문화적 포용이 가장 넓은 미국 사회에서도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예능 출연자들은 의도치 않았다고 하더라도 K-POP의 인기와 더불어 국내 예능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해외 팬들이 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원점부터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공들인 K-POP의 인기가 한순간에 사그라질 수 있다”고 충고했다.
지난 2010년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걸그룹 모닝구 무스메가 한국 비하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당시 그룹의 멤버 카메이 에리와 미치시게 사유미가 한국인을 흉내 낸다며 양 손으로 눈꼬리를 올리는 자세를 취했다. 이 포즈는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제스처로 쓰인다. 비난이 이어지자 사유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생각이 짧아 상처 줄 수 있는 일을 했다. 상처 받은 분들에게 정말 죄송하다.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모닝구 무스메를 넘어 일본 전체에 대한 한국의 반감을 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관계자는 “K-POP이 인기를 얻으면서 반 한류 감정도 생기고 있다. 유명해질수록 안티 팬이 많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꼬투리 잡힐 일을 줄이는 것이 상책이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요즘은 해외 공연을 앞두고 각 연예기획사들은 가수들에게 주의사항을 일러주곤 한다. 그동안 현지어 인사와 몇 마디 단어를 알려주던 것과는 다른 풍속도다. 이슬람과 중동 지역으로 공연을 갈 때는 복장에 특히 신경을 쓴다. 노출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접촉을 터부시하는 탓에 공연 도중 여성 팬들과 악수하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중동 최대 뮤직 페스티벌 ‘얏살람 2011’에서는 가수 서인영의 무대 의상 때문에 공연 다음날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있었다. 국내와 비교해선 비교적 얌전한(?) 의상을 입었지만 여성의 노출을 금기시하는 중동 지역 공연에서 서인영의 복장이 문제가 된 것이다. 결국 서인영 이후 무대에 오른 걸그룹 나인뮤지스는 현지 경찰들에게 의상을 점검받은 후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인도와 아랍 등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접촉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때문에 해외 공연을 간 남성 아이돌 그룹이 팬이라 칭하는 여성과 섣불리 접촉을 했다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문화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호의가 악의로 뒤바뀔 수도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정부기관 역시 K-POP을 전파할 때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이 지난해부터 발간해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K-POP 포토캘린더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170여 개 재외공관에서 배포되며 한국 알리기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각 국가별로 금기사항이 있기 때문에 캘린더를 제작하고 배포할 때 내용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이슬람권 국가에 배포되는 캘린더의 경우 여성 가수의 노출이 심한 사진이 실릴 경우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며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가수 타이거JK는 지난 1일 해외 K-POP 전문사이트 ‘올케이팝’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지금은 인종차별, 인종편견에 대한 지적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타이거JK는 이어 “지금은 무엇이 바른 권리인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일깨워줘야 할 때”라며 “K-POP이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지원뿐만 아니라 다른 인종, 다른 문화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K-POP을 바라보는 해외의 시각은 분명히 달라졌다. 소녀시대가 미국의 유명 토크쇼 <데이비드 레터맨쇼>에도 출연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해외 팬들은 그들의 시선으로 한국 가수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제는 춤과 노래 외에도 해외의 문화까지 익혀야 하는 이유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