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강심장>. |
4년째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MBC 간판 예능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퀴즈(세바퀴)>. 이 프로그램은 20여 명의 연예인이 출연하는 스튜디오물이다. MC와 고정 패널을 제외하면 매주 10여 명의 게스트가 자리를 채운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예능이라는 모토에 발맞춰 오랫동안 얼굴을 보기 힘든 원로 코미디언부터 신인 가수까지 다양한 이들이 출연한다. 특히 예능 출연 기회가 적은 신인들에게는 자신의 역량을 뽐낼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오버’하다간 ‘정 맞기’ 십상이다. 최근 <세바퀴>에 출연한 한 신인 그룹 멤버들은 녹화 시작 전 고정 패널인 한 선배 방송인으로부터 “시키는 것만 하라”는 충고를 받았다. “어설픈 애드리브나 개인기를 보이려다 녹화 시간을 길게 하지 말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 MBC <세바퀴>. |
SBS 간판 예능프로그램 <강심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방송에서는 각 출연진의 이야기가 편집돼 나오지만 실제 녹화 때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사족이 많다. 10여 명의 사연을 듣다 보면 녹화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진다. 예정에 없던 애드리브 때문에 녹화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면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난감한 상황에 놓인다.
드라마와 달리 예능은 별다른 대본이 없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애드리브라고 생각하는 멘트조차 이미 대본에 반영돼 있는 경우가 많다. 철저한 계산에 의해 한 출연자가 멘트를 던지고 또 다른 출연자가 재기발랄한 답변을 내놓는 것이다. 이런 방송 시스템을 잘 모르는 신인들이 어설프게 돌출 발언을 건넸다가 적절한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통째로 편집해야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SBS 예능국 관계자는 “방송 경험이 많은 연예인들은 자신이 던지는 멘트가 어떤 반응을 가져올지 잘 안다. 하지만 출연 분량에 욕심을 부린 신인들은 멘트부터 던지고 본다. MC나 고정 패널들이 경험이 부족한 게스트들에게 예능에 적응하는 법을 알려주곤 한다”고 말했다.
신인들이 자신의 출연 분량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제지를 당하는 반면, 톱 배우 등 특급 게스트들은 예능에서 무슨 말과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맘을 졸인다. 농담처럼 건넨 말이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개인기가 부족한 배우들은 멍석을 깔아줘도 보여줄 것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외치는 이름이 바로 ‘유재석’이다.
유재석은 전형적으로 ‘들어주는 MC’다. 게스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기운을 북돋아준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MBC <놀러와> KBS <해피투게더>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에 톱스타들이 몰리는 이유다.
통상 영화 개봉이나 앨범 발표를 앞두고 스타들은 홍보 활동에 돌입한다. 가수들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잦지만 배우들은 작품 홍보 목적 외에 예능에 출연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만큼 말주변이나 순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영화 홍보사 관계자는 “배우들은 통상 예능 출연을 꺼린다. 하지만 불가피할 경우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잡아 달라’고 주문하는 이들이 적잖다. 대부분 시청률이 잘 나오는 프로그램인데다 유재석이 조그만 특징을 잘 잡아내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유재석과 달리 유명 방송인 A는 악명 높은 MC로 유명했다. A가 진행하던 한 예능 프로그램은 한때 최고의 주가를 올리며 톱스타들이 연이어 게스트로 출연했다. 하지만 A는 게스트를 배려하기보다는 말꼬리를 잡거나 항간에 떠도는 루머들을 연이어 물어보며 궁지에 몰아넣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배우들은 “A가 너무 무서웠다. 꼬투리를 잡힐까 입을 떼기 힘들었다”고 토로하곤 했다.
A는 동료 MC에게도 경계 대상이었다. A는 뒤늦게 투입된 후배 MC의 군기반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때문에 유망주로 분류되던 몇몇 방송인이 MC로 투입됐지만 버티지 못하고 MC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그로 인해 A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섭외를 받은 경우 평소 A와 친분이 있거나 입담이 뛰어나지 않으면 출연을 고사하는 게스트가 많았다.
한 방송 관계자는 게스트가 예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MC와 고정패널을 잘 선택해야 한다”라고 충고한다. 게스트의 입담이 뛰어나도 MC가 맞춰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 아나운서들이 봇물처럼 예능 프로그램에 투입됐지만 결국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도 기득권을 가진 MC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탓이다. 이 관계자는 “아나운서들이 MC로 발탁되면 전문 방송인들의 설 자리가 줄어든다. 위기의식을 느낀 몇몇 MC들이 아나운서들의 이야기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거나 묵살하는 경우가 있었다. 리액션이 없으니 편집될 수밖에 없고 출연 분량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결국 ‘병풍’ 노릇만 하다 하차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만큼 MC와 출연진의 궁합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