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19일 박근혜 선대위원장이 인천지역 재래시장 및 청라지구를 방문해 유권자들과 만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가히 ‘닥치고 박근혜’다. 박근혜 선대위원장의 카리스마를 뛰어 넘는 후보들이나 대권주자가 선거판에서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 23일 비오는 대구를 찾은 박 위원장은 대선 승리 분위기에도 젖을 법했다. 대구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에 들른 박 위원장은 곳곳에서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최고”라는 연호가 이어지자 무척 고무된 모습이었다는 전언이다.
연일 날아드는 ‘우호적인’ 여론조사 결과 덕에 당의 분위기도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이에 대해 “돈봉투 사건이 터지면서 솔직히 이번 선거는 끝났구나 싶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있던 터라 공천 후유증이 예상외로 적었다. 이것이 박근혜 공천 성공이라는 일종의 환상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다 민주통합당이 계파공천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지리멸렬하다 보니 우리로서는 최상의 조건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핵심 당직자는 묘한 여운을 남기며 말을 끝맺었다. “이회창 대세론이 두 번 있었다. 지금 이렇게 분위기가 좋다 보니 다시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게 되더라. 아직 아무 것도 결론 난 게 없다. 여의도연구소도 고무적인 여론조사 결과 데이터가 있지만 승리 분위기에 도취될까봐 절대 외부로 유출하지 않고 있다. 선거는 지금부터다. 민주통합당의 패착으로 우리가 앞선다고 착각하고 있다. 막판까지 돌발변수가 너무나 많다. 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제일 걱정이다.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별다른 이슈가 판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인 불법 사찰 건은 그 자체로 폭발력을 갖고 있다. 전계완 MBN정치아카데미 대표는 이에 대해 “검찰이 수사의 수위를 얼마나 높일지가 포인트다. 박 위원장도 이를 경계하는 것 같다. 문제가 있으면 법적으로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보이고 있지만 수사 진척 상황에 따라 새누리당에 큰 악재가 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당 내부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박근혜 위원장과 자주 독대를 하는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요즘 당 분위기가 상대(민주통합당)의 실책을 이용해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는 것 같다. 오버하는 분위기가 많다. 한명숙 대표 측근의 금품수수 사건이나 노건평 씨의 차명 주식계좌 의혹 등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정권 차원에서 기획된 수사를 특정 시점에 쏟아내는 것은 야당결집과 역풍을 부를 수 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관악을 후보직 사퇴도 선거 분위기를 야권 쪽으로 돌리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본다. 박근혜 위원장 주변에서 승리론에 도취돼 흥분하는 분위기가 많은데 박 위원장이 적절하게 컨트롤하지 않으면 선거를 망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선거 외적인 변수와 함께 박근혜 위원장의 공천과 ‘용인술’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소장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이 지금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이름밖에 나오지 않고 가는 곳마다 환영일색이니 기분이 좋을 수는 있다. 여론조사 결과도 여당의 안전한 승리를 예상하고 있다. 박 위원장의 지지율도 다시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낙관적인 요소에 취해 총선뿐 아니라 대선까지 가를 공천을 대충 한 것 같다. 이번 공천은 대선 필패로 가는 실패작이다. 현재의 전력에서 200%를 발휘해도 대선 승리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공천은 능력 위주가 아니라 박근혜 위원장의 마음에 드는 ‘예스맨’들로 전부 채웠다고 본다. 현재의 고공 행진 분위기는 민주통합당이 너무 많이 추락했기 때문에 마치 새누리당이 높은 곳에 올라간 것 같이 보이는 착시현상에 근거해 있다. 박 위원장은 여전히 자신만의 것이 없다. 총선 공천이 그를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는 이마저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만 뽑았다. 언제까지 박 위원장이 웃을 수 있을지…”라고 말했다.
사실 당 주변에서는 박 위원장이 정말로 대선에 이기고 싶었다면 이번 공천에서 그야말로 사심 없이 두루 인재를 선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주변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비대위원장이라는 전권이 주어졌고 마음먹기에 따라 신친박계를 계파 구분 없이 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공천이 모두 끝난 지금 당 안팎에서는 현재의 의원 후보들이 전국에서 대선을 진두지휘해야 하는데 ‘함량미달 인사’가 적지 않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
앞서의 소장파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에 살아난 친박계 중진들은 구시대 냄새가 많이 난다. 여기에다 말 잘 듣는 모범생 후보만 찾다 보니 새로 공천 받은 신 친박계들은 대부분 정치경력이 짧고 정무감각이 떨어진다. 반면 이명박 캠프에서 잔뼈가 굵었고 대선도 뛰어본 경험이 있는 친이계 전략가들이 대거 탈락하면서 심각한 전력 누수가 발생했다. 싸움닭 기질의 대선 선수들이 많이 빠져 나갔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경험이 있는 박 위원장 입장에서는 참모들의 능력보다는 자신의 퀸 이미지를 더 잘 부각시켜 나가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하지만 대선은 모든 화력이 박 위원장에게 집중된다는 점에서 참모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싸워줘야 하는데 새로 들어온 멤버들이 과연 그런 역할들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선대위 구성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박 위원장 옆에는 김용환 서청원 두 고문이 떡 버티고 있다. 이를 두고 당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소영’ 인사 파문을 능가하는 오만한 인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두언 의원은 이를 두고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서청원, 김용환 두 분이 새누리당 선대위 고문이 되셨다. 저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저보고 아무 말 말고 자기 선거만 잘 치르라고 하네요. 그래야겠죠”라고 비꼬았다. 이런 점 때문인지 박 위원장의 공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누가 뭐라든 내 식대로 하고 안 되면 그만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혼란스럽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