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딩신, 리쉬안하오 부정 의혹 제기 ‘20번기’ 결투 신청…“질투심에 저격” “진정한 사나이” 반응 엇갈려
그런데 이날 중국 한큐바둑 중계창에 묘한 글이 올라왔다. 중국 톱랭커 양딩신 9단의 글이었다. 양딩신은 “리쉬안하오는 아무도 이길 수 없다. 그는 최근 몇 년간 홀로 수련하면서 엄청난 경지에 오르게 됐다. 우리 같은 쓰레기들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으니 미안할 정도다. 신진서는 정말 행운아다. 이제야 신(神)을 영접하게 됐으니…”라며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렸다.
양딩신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날 밤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다시 도발적인 글을 올린다. “오랫동안 참았다. 리쉬안하오, 나는 당신과 20번기를 제안한다. 화장실에 갈 수 없고 대국장의 모든 신호(전파)를 차단해야 한다. 시간제한 없이 하루에 한 판씩 두어 대국이 끝난 후 기보를 공개해서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또 “만약 내가 패한다면 나는 LG배 결승전을 치른 뒤 은퇴하겠다”며 폭탄 발언을 했다. 신진서를 꺾고 춘란배 결승에 오른 리쉬안하오가 AI를 이용해 부정행위를 했다고 강하게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1995년생인 리쉬안하오는 2년 전만 해도 자국 랭킹 20∼30위권에 불과했지만 최근 무서운 상승세로 랭킹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2021년과 2022년 취저우 난가배와 중국 왕중왕바둑쟁패전 우승, 아시안게임 선발전 1위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리쉬안하오는 인공지능 연구에 밝은 기사로 꼽힌다. 신진서가 ‘신공지능’으로 불리듯 리쉬안하오는 중국에서 ‘헌(軒)공지능’으로 불린다. 하지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가 전성기라 하는 바둑의 특성상 리쉬안하오처럼 20대 중반 이후 성적이 급상승하는 것은 무척 특이한 사례다.
리쉬안하오가 의심을 받는 것은 그의 특이한 행태 때문이기도 하다. 양딩신은 “그는 국가대표 연구회에도 나오지 않고, 우리와 연습대국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인터넷 대국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수인 우리들과 어울리면 성인(聖人)의 실력이 정체될 테니 우리가 부끄럽다”고 비꼬았다.
양딩신은 평소 점잖고 차분한 성품으로 알려진 기사다. 그런 그가 동료를 향해 엄청난 수위로 비난한 것은 최근 춘란배 8강에선 자신이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물러난 데 이어 신진서마저 완패를 당하자 치팅에 대한 확신이 섰던 것으로 보인다.
양딩신이 리쉬안하오를 저격하는 글을 올리자 몇몇 동료 기사들도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커제, 스웨, 롄샤오, 구링이, 왕하오양, 장웨이제 9단 등은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로 동조를 표시했고, 세계대회 3회 우승의 천야오예 9단은 직접 댓글을 달아 “나는 너(양딩신)를 지지한다. 리쉬안하오의 바둑은 나도 확실히 이상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양딩신은 아직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도 둘로 갈린다. 대국장 출입구부터 몸수색을 철저히 하고 중계카메라와 심판진, 그리고 CCTV가 지켜보고 있는 상태에서 치팅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최근 리쉬안하오의 경이적인 인공지능 일치율과 상식적이지 않고 유례가 없는 30대 기사의 대폭발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양딩신이 제안한 20번기 성사 여부도 관심거리다. 이에 대해 양딩신은 지난 12월 22일 밤 또 하나의 글을 올렸다.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는 (윗선의) 지시를 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LG배 결승전도 치를 수 없게 한다고 한다. 만약 대결이 성사가 안 되면 그때 다시 입을 열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누구의 지시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중국 현지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모처럼 리쉬안하오가 신진서를 꺾고 중국의 위세를 만천하에 떨치고 있는데 양딩신이 질투심에 눈이 멀어 증거도 없이 동료의 뒤를 저격하고 있다”는 쪽이 있는가 하면 양딩신이 은퇴를 불사하며 기사 인생을 걸었다는 것에 대해 “진정한 사나이다. 지지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당사자인 리쉬안하오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은 가운데 중국기원이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위빈 중국 국가대표팀 감독은 지난 12월 23일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거나 허위인 정보를 SNS 등을 통해 퍼트리는 것은 규정 위반 행위다. 양딩신은 국가대표팀 규정을 위반했다”며 차후 징계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또 화쉐밍 중국기원 부주석은 최근 인터뷰에서 “중국과 한국, 일본의 협의 하에 치르고 있는 온라인 세계대회는 드러난 문제점이 없다. 나는 평소 중국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절예(중국 텐센트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를 이용해 공부를 하라고 주문하고 있는데 리쉬안하오, 왕싱하오, 자오천위 등이 열심히 연구해 그 효과를 봤다”며 리쉬안하오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연 양딩신이 몰고 온 이번 사태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것인지 앞으로의 추이가 궁금해진다.
유경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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