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상수 감독의 영화엔 스타들이 노개런티로 출연하는 일이 잦다. |
가장 몸값이 비싼 이들은 한류스타다. 배용준은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출연하며 회당 2억 5000만 원을 챙겨 역대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병헌은 <아이리스>에 출연하며 매회 1억 원을 받았고, <에덴의 동쪽>에 출연한 송승헌의 회당 출연료는 7000만 원이었다. 이 정도 개런티를 지불하고 나면 국내에서는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해외 판권을 통해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키겠다는 복안으로 제작사들은 앞 다퉈 한류스타들에게 거액을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몸값이 통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스타 못지않은 작가나 감독이 만드는 작품에서는 어떤 스타들도 제값을 받기는 어렵다. 한 연예 관계자는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특정 작가와 감독이 집필하거나 연출을 맡으면 흥행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작품이 흥행하면 CF 출연 등을 통해 부가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스타들도 출연료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요즘 방송가에서 최고의 꼽히는 작가는 단연 김수현과 김은숙이다. 김수현 작가가 연속극의 대가라면, 김은숙 작가는 트렌디 드라마를 가장 잘 만든다. 두 작가가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만 돌아도 각 연예기획사는 시놉시스나 대본을 받기 위해 줄을 선다.
김수현 작가는 스타 마케팅에 줄을 대지 않는다. 그는 지난 2008년 열린 ‘서울드라마페스티벌’에서 주최한 팬 미팅에 참석해 “꽃미남 배우들이 나와 함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매주 잔소리를 들어가며 대본 연습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나도 굳이 꽃미남이 필요하지 않다”며 “대단한 배우는 모셔야 하는데 나는 성질이 나빠 그런 것을 봐가며 할 수 없다. 우선 몸 바쳐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 그리고 어른들하고 작업하는 게 더 기분 좋고 유쾌하다”고 말했다. 조각 같은 외모를 바탕으로 국내외 시장을 호령하는 한류스타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김수현 작가 역시 드라마 <천년의 약속> 당시 남자 주인공 김래원이 회당 5000만 원의 출연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눈길을 끈 바 있다. 김래원이라는 스타급 배우 캐스팅을 위해 김수현 작가 역시 고액 출연료를 인정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았다.
반면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에는 스타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오랜 기간 브라운관을 떠나 있다가 김 작가의 작품을 복귀작으로 삼는 스타가 많다. 박신양은 1998년 작인 <내 마음을 뺏어봐> 이후 6년 만에 <파리의 연인>으로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프라하의 연인>의 전도연과 <시크릿가든>의 하지원 역시 각각 3년, 5년 만에 김은숙 작가와 손을 잡고 브라운관을 노크했다. 5월 방송을 앞두고 있는 <신사의 품격>은 무려 12년 만에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동건을 앞세웠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김은숙 작가는 시대상과 유행을 가장 잘 읽는 작가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 출연한 후에는 CF출연 제의가 물밀듯이 들어온다. 그러니 배우들이 굳이 출연료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영화계에서는 배우들의 ‘노 개런티’ 선언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특히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돈을 받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 <밤과 낮> <옥희의 영화> 등에 출연한 김상경 이선균 유준상 등은 보수 없이 기꺼이 영화에 참여한다. 2009년 개봉된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는 톱스타인 고현정을 비롯해 김태우 엄지원 공형진 등이 모두 출연료 없이 연기했다. 홍 감독은 촬영이 끝난 후 미안함의 표시로 출연료 대신 감사패를 전달했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은 출연배우들에게 실리 대신 명예를 준다. 각종 국제영화제의 단골손님인 홍 감독과 작업했던 배우들은 전 세계 영화 관계자와 팬들 앞에서 당당히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을 누렸다.
▲ 엄지원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극장전>에 출연 후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
그는 천정부지로 솟는 배우의 몸값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병훈 PD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출연료가 기형적인 만큼 개선을 모색할 필요는 있다. 일본 드라마 평균 제작비가 우리의 3~5배에 이르는데, 주연급 출연료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니 산술적으로는 우리가 10배가량 많은 셈이다”라고 꼬집었다.
2004년 이영애가 <대장금>에 출연하며 받은 출연료는 회당 700만 원. 현재 한류스타들이 회당 억대 몸값을 챙기는 것을 감안하면 불과 7~8년 사이 몸값이 10배 넘게 뛴 것이다. 이병훈 PD는 “드라마 한 편 제작비용이 1억 원 정도인 점을 감안했을 때 드라마 제작사가 주인공을 캐스팅하고 나면 남는 제작 예산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드라마 제작비는 책정된 금액을 넘기기 일쑤다. 하지만 이병훈 PD는 방송사가 지급한 제작비를 쓰고 남는 금액을 돌려주는 유일무이한 PD다. 그런데 하반기에 MBC 사극 <마의>를 들고 2년 만에 복귀하는 이병훈 PD가 기존 스타들에게 지금의 몸값을 지불하면서 그의 스타일을 고수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MBC 드라마국 관계자는 “이병훈 PD의 작품이라는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에 주연 배우들도 지금껏 받던 몸값보다 적은 금액을 받고도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