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
사이즈모어는 일찌감치 부상자 명단에 합류했고요, 기대를 모았던 크리스 페레즈가 복귀하긴 했지만 아직 정상 가동되기에는 2%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중심타선을 이끄는 브랜틀리는 허벅지가 안 좋고, 크로우는 등쪽이, 카브레라는 어깨, 그리고 전 약간의 팔꿈치 통증을 느끼고 있는 상태입니다. 3월 말쯤이면 라인업이 어느 정도 확정되기 마련인데, 오늘(3월 31일 한국시간)까지도 악타 감독은 여전히 ‘구상 중’이시더라고요.
클리블랜드 부임 후 매 시즌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른 경험 탓인지 악타 감독은 웬만한 ‘날벼락’에도 꿈쩍하지 않는 강심장을 보여줍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그 다음을 생각하자는 그분의 마인드가 스프링캠프를 이끄는 내내 마음으로 전해져옵니다.
제가 봐도 시범경기 동안 잘 치는 선수가 없었어요. 저와 브랜틀리를 제외하고 남은 외야 자리에 경합이 벌어져야 하는데,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없다보니 라인업에 집어넣을 선수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시범경기 내내 트레이드설이 난무하고 있네요. 이럴 때 저를 비롯해서 한두 명이 치고 나온다면 침체된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텐데, 제가 아직은 주전 선수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이곳 애리조나를 벗어나 클리블랜드 홈으로 돌아가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날씨도, 환경도, 분위기도 바뀌면 선수들 몸 상태와 마인드가 ‘시범’이 아닌 ‘정식’ 경기에 맞춰 서서히 올라올 것이라 믿습니다.
며칠 전 일찍 퇴근한 후에 두 아들 녀석과 집 뒷마당이 아닌 공원에 있는 야구장으로 놀러가선 아이들과 야구놀이를 하고 뛰어다녔습니다. 무빈이야 리틀야구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베테랑 선수’이지만 건우는 장난감 야구방망이를 갖고 노는 데 더 관심이 많은 아이라 야구 게임이 아닌 그 방망이로 형을 때리고 나한테 장난을 치며 마구 뛰어 놀더라고요. 그러다 두 아들이 저 멀리서 날 향해 뛰어 오는 모습을 보는데, 순간 가슴이 찡 해오는 거예요. “아빠!”하고 달려오는 두 애들 얼굴을 보면서, 내가 우리 애들의 아빠라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요, 올 시즌에는 뭔가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162경기, 600타석 이상을 건강한 모습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세우려 합니다. 그래야 내 아이들에게 작은 행복감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4타수 무안타, 삼진 세 개를 먹는 날은 경기 후 아무 것도 하기 싫었어요. 어떤 날은 아이들이 우는 소리조차 시끄럽다고 화를 냈고, 죄없는 아내에게 싫은 소리하며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던 나쁜 남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 합니다. 누구한테 보여주는 야구가 아닌, 4타수 무안타에도 감사할 줄 아는 진정성을 갖고 싶어요.
지난해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깨달은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세상이 날 향해 비난의 날을 세우고 손가락질해도 내 자신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다면 그게 더 큰 아픔이고 슬픔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2012년의 추신수는 내 자신한테, 그리고 가족들한테 당당한 선수이고 아빠이고 싶습니다. 마음이 행복하지 않는 야구는 내가 수천만 달러를 받는 고액 연봉자라고 해도 의미 없는 인생이라는 걸, 이곳 메이저리그 정글에서 몸과 마음으로 고스란히 절감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 주변에는 클리블랜드로 돌아갈 박스들이 잔뜩 쌓여 있어요. 이제 이곳 애리조나와는 잠시 이별을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