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단양바둑협회는 ‘소백산 철쭉제’에 바둑을 포함시킬 계획이다. 사진은 단양 사인암 아래 너럭 바위에 새겨진 바둑판. 이곳에서 바둑을 두면 정말로 ‘신선놀음’을 하는 기분이다. |
내셔널리그는 한 팀이 시니어 1명, 주니어 2명, 여자 1명 등 총 4명이다. 1~2차전 각 4판씩 8판을 두었는데, 충북 팀은 1차전에서 4전 전승, 그야말로 기염을 토했다. 2차전에서는 2승, 반타작에 머물러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어쨌거나 2승도 쉬운 일은 아니었고, 종합 전적 6승2패는 괄목할 만한 성적이었다. 12개 출전 팀 가운데 대구 덕영치과 팀과 경기 의정부 팀이 7승1패로 선두에 섰고, 다음이 6승2패의 동대문구청 팀과 충북 팀이었다.
제3~4차전은 4월 14일 대구에서 열린다. 12개 팀의 전력이 난형난제여여서 1~2차전으로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신선한 충격과 함께 다크호스로 부상한 충북 팀의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충북 바둑이 꿈틀대고 있다. 지금까지는 충북 바둑 하면 2001년에 시작된 제천의 ‘청풍명월제’가 떠오를 뿐이었다. 도중에 사정이 있어 이후 매년 열리지는 못했지만, 바둑대회 특화-차별화에 성공하면서 지난해 7회를 기록했다. 우승을 다투는 대회가 아니다. 일반 바둑동호회 회원들, 바둑에 입문한 18급부터 전국대회 우승자,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남녀노소가 5명으로 한 팀을 만들어 와서 치수를 적용해 바둑을 두고, 장기자랑도 벌이는 말 그대로 축제다.
시상도 다양하다. 한 판도 못 이긴 사람은 ‘전패상’을 받고, 참가자 중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 가장 멀리서 온 사람도 상을 받는다. 쌀, 감자, 옥수수, 호박 같은 지역 농산물이 상품이다. 지난해에는 350명이 참가해 박달재 수련원에서 1박2일 바둑 한마당을 즐겼다. 이름을 잘 지었다. 제천에는 실제로 청풍면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 제천에 이어 단양과 괴산이 바둑을 준비하고 있다. 단양은 원래 바둑협회가 있었는데, 두어 달 전 바통을 넘겨받은 안길호 신임회장(62)이 남다른 의욕으로 단양 바둑의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일단 협회 사무실을 마련하고 회원 리그전을 개최했다. 준비운동이다. 준비운동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몇 가지를 실행할 참이다. 바둑교실과 방과 후 수업을 통해 어린이 바둑교육을 시작하면서 바둑 붐을 일으키는 것, 제천 못지않은 전국 규모의 바둑행사를 개최하는 것, 단양의 문화와 바둑을 접목하는 것 등이다.
매년 5월 중순경에 막을 올리는 ‘소백산 철쭉제’는 단양의 자랑거리다.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철쭉제에 바둑을 포함시켜 소백산 철쭉의 군락 속에서 바둑을 두겠다는 계획이다. 제천이 청풍명월이라면 단양은 단양8경이다. 단양에는 또 고려의 명유(名儒) 우탁 선생이 자주 들러 음풍농월했다는 남조천변의 병풍 같은 바위 절벽 사인암(舍人巖)이 있고, 사인암 기슭 한쪽 물가 바위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다. 바둑 인연이나 바둑 얘기로 제천에 질 마음이 없다.
안 회장은 “그때 갈 곳이 없어 서울역 지하도에서 잠을 잔 적도 많다. 어쩌면 내가 노숙자 원조일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꽤 오래 방황하다가 의지의 불씨를 되살려 고향으로 내려가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10여 년 고생 끝에 회복했다. 그동안에는 연락을 끊고 지냈던 박성균, 정대상과도 얼마 전에, 느낌으로는 한 20년 만에, 연락해 만났다.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올랐으니 이제는 바둑을 다시 하고 싶습니다. 철쭉제 때 멋지게 한번 할 테니까 꼭 놀러 오세요.”
괴산도 물이 오르고 있다. 협회가 특이하고 재미있다. 회장 부회장 전무이사 등 임원들이 모두 기인풍의 털보들이고, 핵심 회원 중에는 바둑 잘 두는 스님이 두어 분 있다. 괴산 옆 동네 증평에서 바둑교실을 운영하는 배철휘 원장(45)도, ‘배철휘 바둑교실’은 증평 유일의 바둑교실이라는 점에서, 회원들이 희소성을 인정해 준다.
백학송 회장(白鶴松·65) . 회원들 말마따나 이름 자체가 호(號)다. 또 세 글자 중 두 자를 뽑으면 그것들도 다 호다. 백학, 백송, 송학, 송백.
“나요? 건달이었지. 서울 성동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5대 공립이었지요?^^ 서울 놈들은 부산에서 올라온 얘들 보고도 부산 촌놈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괴산은 오죽했겠어요. 아예 태반이 괴산이라는 지명 자체를 모르더군요… 헤라클레스 클럽에 가입했지요. 유명한 주먹서클이었어요. 제가 싸움은 좀 했거든요. 학교에서 한양대가 멀지 않았는데, 한양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면 대학생들이 절 보고 형님이라고 했어요. 하하하… 바둑도 그때 배웠어요. 희한하지요? 만날 쌈질하고 돌아다니는 게 일과였는데 어떻게 바둑을 배우게 되었나 몰라. 아무튼 그게 이제 더구나 나이 먹어가면서 평생 취미요 친구가 되는 거예요. 내가 지금도 축구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지만… 그나저나 괴산에서 바둑대회 크게 한번 할 테니 그때는 정말 크게 한번 내 주슈. 아, 그리고 ‘장수촌’도 좀 선전해 주슈. 서울에도 있어요. 도곡동에…^^”
백 회장의 ‘장수촌’은 한방 닭-오리 백숙(누룽지 백숙) 전문점. 아닌 게 아니라 맛이 정말 좋다. 서울이 본점이고, 본점의 맛과 기술을 그대로 옮겨 얼마 전에 괴산에서 지점을 열었다.
포천에 ‘민들레울’이라고 있었다. 모임 장소로 유명했다. 민들레울을 운영하던 털보 정순오 사장(49)이 2년 전에 돌연 그걸 접고 괴산으로 내려와 지금 괴산군 바둑협회 전무를 맡고 있다. 정 전무는 뛰어난 한글 칼리그래퍼다. 정 전무의 서체는 신영복 교수의 육필이라는 ‘처음처럼’의 글씨체와 비슷한데 획의 각이 더 깊고 남성적이다. 한글의 새 폰트로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정 전무의 아호인 청산(靑山)과 청산의 글씨는 바둑계에는 널리 알려져 있다.
“괴산엔 화양구곡(화양계곡) 쌍곡구곡 선유구곡 갈은구곡 등 계곡이 아주 많습니다. 퇴계, 율곡, 우암 선생 같은 대선비들이 즐겨 소요해 이른바 계곡문화가 생겨난 곳입니다. 그래서 바둑대회도 문화의 전승이라는 뜻에서 계곡대회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괴산의 명소 선국암에서 수행하는 진용(眞庸) 스님, 글자 그대로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 맑은 물가에 손수 법당을 짓고 자급자족하면서 수도하는 정견(正見) 스님은 이채로운 존재다. 서광사 도신 스님이 스님 중 최고수인 줄 알았는데, 붙어봐야 할 것 같다. 모두들 타이젬 6단에서 8단 사이를 오르내리는 실력들이다. 소백산 철쭉제, 화양구곡 계곡제가 기대된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