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 총선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3월 29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부산 사상구 괘법동 사상역 인근에서 출정 플래시몹 행사를 열고 있다. 사진제공=문재인 |
선거운동 지원차 최근 광주에 다녀 온 민주당 당직자도 그곳의 분위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광주 서을 선거구에서 야권 단일후보인 통합진보당 오병윤 후보가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에게도 밀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주당 소속의 시의원과 구의원, 조직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공천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지역 기자들조차 ‘호남이 또 한 번 친노한테 팽당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전한 얘기 모두 민주당 내 호남 정치세력의 친노그룹에 대한 불만이 비등점에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다. 호남 지역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시ㆍ도당 및 지역위원회 당직자 등의 여론을 곧바로 호남 민심과 등치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정치에 관한 한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의 기류가 이렇다는 것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총선 후 곧바로 대통령선거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 2012년의 정치 스케줄에도 불구, 민주당이 총선 후 극심한 세력 갈등으로 빠져들 가능성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야권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부상한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문 고문은 이번 총선 과정에서 호남 정치세력에게 ‘공천을 말아먹은 친노그룹’의 핵심 인물로 통하기 때문이다. 호남 정치세력의 ‘친노 비토’ 기류가 곧 ‘문재인 비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호남 정치세력과 친노그룹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 근원을 찾자면 지난 2002년 대선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호남 정치세력을 대표했던 구동교동계가 당시 노무현 후보의 경쟁자였던 이인제 후보를 지원했던 게 악연의 시작이었다. 권노갑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구동교동계는 노무현 후보 쪽으로 기울어 있던 박지원 의원 등 당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청와대 측근 그룹과 달리 이인제 후보를 밀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노무현 후보가 2002년 지방선거 참패로 흔들리자 이번엔 구동교동계 인사 중 핵심 인물들이 ‘후보 단일화 협의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후보 교체론을 들고 나왔다. 사실상 정몽준 국민승리21 대표로 대선후보를 바꿔야 한다는 흐름이었다. 노무현 후보가 단일화 경선에서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이들과 친노그룹 간의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이는 결국 2003년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으로 이어졌고 2011년 12월 민주통합당 창당을 통해서야 양측이 한 지붕 아래 다시 모였다. 이른바 ‘유시민 그룹’이 통합진보당으로 떨어져 나갔지만 호남 정치세력과 친노그룹이 재결합하는 데 무려 8년이 걸린 셈이다.
‘이명박 정권 심판’ ‘정권 교체’를 내걸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재결합한 이들이 다시 한번 균열의 위기를 맞은 이유는 뭘까. 호남 정치세력이 또 다시 친노그룹에게서 등을 돌리려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도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서 ‘구민주계 학살’이라고까지 표현된 호남홀대론이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된다. 구민주계 출신으로 공천을 받은 현역의원은 박지원, 안규백 의원 등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수준이다. 구민주계가 세대교체에 실패한 탓도 있지만 차세대 여성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있던 김유정 의원마저 ‘여성 지역구 15% 할당’ 규정에도 불구하고 공천에서 탈락했다. 한광옥 전 의원을 비롯해 정치 재개를 노렸던 구민주계 인사들도 줄줄이 공천에서 배제됐다.
호남에만 적용된 ‘현역의원 물갈이’는 이 같은 홀대론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에도 호남지역 현역의원 중 3분의 1인 10명이 공천에서 배제된 데 이어 이번에도 6명의 현역의원이 경선 기회조차 잡아보지 못한 채 탈락했다. 광주시당의 한 관계자는 “공천에서 탈락할 만한 사람들이 탈락했다는 평가와 함께 왜 호남만 선거 때마다 물갈이 대상이 돼야 하느냐는 여론이 있다”며 “수도권에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 현역의원을 탈락시켰다면 호남홀대론이 제기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 같은 홀대론은 ‘친노 무능론’과 연결되면서 공천 불만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민주당 내 호남 정치인의 대표 격으로 부상한 박지원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50석을 서초동에 갖다 바쳤다”며 분통을 터뜨린 바 있다. 국민경선 과정에서 고소ㆍ고발이 난무하고 각종 선거법 위반 사례가 적발되는 바람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줄줄이 재판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는 얘기다. 여기엔 농촌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호남 정치인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친노그룹이 무리하게 국민경선을 밀어붙였다가 ‘사고’를 자초했다는 원망이 깔려 있다. 광주 동구에서 발생한 선거인단 모집책 자살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으로 민주당의 국민경선은 ‘동원 경선’ ‘차떼기 경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무려 19명의 관련자가 검찰에 기소됐고, 민주당은 이 선거구에 후보를 내지도 못했다.
광주 지역의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친노그룹의 더 큰 문제점은 능력도 없다는 것”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이 관계자는 “그 사람들은 모바일경선이 무슨 요술 방망이라도 되는 듯 떠들어댔지만 실제 선거판이 벌어지고 난 뒤 결국 호남향우회에 손을 벌리고 있다”며 “호남 정치세력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선거만 닥치면 꼭 우리를 퇴출대상에 올려놓곤 한다”고 말했다.
총선 선거운동이 시작된 뒤 한명숙 대표와 함께 가장 바쁘게 지원유세를 다니는 민주당 인사가 바로 박지원 의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 관계자의 말이 과장된 빈말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박 의원은 지역구인 전남 목포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전국을 누비며 지원유세를 다니는 시간이 훨씬 길다. 경쟁 후보들이 “지역구는 비워놓고 엉뚱한 일만 하고 다닌다”며 비난의 소재로 활용할 정도다. 최근 박 의원의 트위터 글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곳에 지원을 나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그가 하는 가장 큰 일은 지역 호남향우회의 적극 지원을 요청하는 일이다.
이 같은 호남 정치세력의 ‘친노 비토’ 기류가 문재인 고문에게 부담스러운 이유는 민주당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호남의 지원 없이는 대선은 물론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승리하는 게 만만찮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불과 57만 980표(2.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당시 호남은 광주 95.2%(68만 8313표), 전북 91.6%(90만 719표), 전남 93.4%(101만 7432표)의 몰표를 노무현 후보에게 선사했다. 호남에서만 노 후보가 이 후보를 260만 6464표 차이로 이겼다. 영ㆍ호남의 인구수 차이를 감안하면 이번 대선에서도 이 같은 몰표가 없다면 야권 후보가 승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친노그룹 인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호남 민심과 호남 정치인 민심은 다르다”는 반응을 주로 내놓는다. 하지만 호남 정치세력이 이 지역 여론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총선 후 문재인 고문의 첫 번째 과제가 ‘호남 달래기’가 돼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