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원로 언론인은 “잉글랜드, 프랑스와 대등한 경기를 펼친 우리 대표팀의 기량향상에는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이 큰 역할을 했다”면서 “월드컵을 계기로 정치권에도 새로운 지도자상을 바라는 열망이 강하게 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적 대사인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는 이미 국민적 명제가 됐고 이에 따라 국제경쟁력이 형편없는 한국 정치권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월드컵은 정치권과 어떤 함수관계를 가질까. 우선 월드컵이 한창인 6월13일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는 12월 대선정국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게 된다. 결과에 따라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계개편이 뒤따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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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나라당은 월드컵 전 지방선거 실시를 주장했고, 민주당은 선거법을 이유로 반대했다. 물론 월드컵 성공적 개최라는 열매를 여권이 가져가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최규선 게이트로 DJ 3남 홍걸씨가 구속되자 한나라당은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대선가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월드컵과 지방선거의 함수관계에서 ‘투표율’이 중요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현재 정치권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각 당은 서로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며 상대당 기선제압에 여념이 없다.
일단 낮은 투표율은 젊은 층으로부터 지지도가 높은 민주당에 상대적으로 불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반드시 유리한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 허태열 기획위원장은 “낮은 투표율은 결국 조직선거로 치를 수밖에 없는데 조직과 자금에서 현직 단체장들이 유리하다”면서 “현재 수도권에서 민주당과 자민련 소속의 지자체 단체장이 70%를 차지하고 있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낮은 투표율은 또 민심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의외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는 현재까지 여론조사가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상반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한국팀의 16강 진출 여부도 중요한 변수다. 축제 속에서 월드컵이 진행되고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는 것이 특정 정당이 유리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월드컵 경기가 ‘총성없는 전쟁’으로 표현될 정도로 국민적 단합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집권당에 유리한 측면이 없지 않다. 월드컵이 6·13지방선거는 물론 향후 대선정국에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국의 사례는 월드컵의 승리가 국내정치에서 집권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94년 미국월드컵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 대표팀은 집권당의 정권재창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당인 사회민주당의 카르도소 후보와 노동자당의 룰라가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때마침 브라질팀이 우승을 하자 국민들은 축제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결국 집권당 후보가 상대 후보 46% 대 34%라는 큰 격차로 승리했다.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의 지지도는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 30%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라크 대통령은 자국 대표팀이 결승전에 진출하자 경기장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나와 직접 응원했다.
마침내 프랑스는 우승했고 시라크 대통령의 지지도는 70%대까지 올라갔다. 프랑스의 우승은 총선에도 영향을 줬다. 선거 결과 우익 민족주의 세력이 대거 의회로 진출했고 이는 월드컵을 통한 국민들의 민족주의화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같은 경우가 이번 2002월드컵에 그대로 적용된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국민들 관심이 월드컵에 집중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는 멀어지고 있다. 게이트 정국으로 수세에 몰린 청와대와 민주당이 예상대로 월드컵 열기의 직접적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 금종래 특보는 “월드컵으로 인해 정치현안이 그 열기 속에 묻힐 수밖에 없다”며 민주당이 월드컵 특수의 혜택을 보게 될 것임을 인정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측도 “득실을 따지기에는 문제가 있지만 국면전환에 도움이 되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밝혔다.
게이트 정국으로 호기를 잡은 한나라당이 월드컵 기간 동안 정쟁 중단을 하겠다는 당초 방침을 철회하고 다시 공세수위를 높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는 “정쟁과 대통령 아들 문제는 별개의 것”이라며 홍업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연에 대해 “청와대와 검찰의 야합에서 나온 것”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있다.
물론 민주당은 국운 융성을 위해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만 보이고 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정쟁을 중단해야한다”며 한나라당을 향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축구선수 출신의 장영달 의원도 “월드컵은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계기이자 잔치”라며 정쟁으로 국가적 대사를 망칠 수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 같은 정치권의 월드컵 계산법과는 별개로 축구계에서는 한국팀의 16강 진출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보고 있다. 일단 대표팀의 경기운영 능력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전을 지켜본 국민들도 이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프리미엄도 16강 진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월드컵 개최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해 준다. 개최국의 승패가 월드컵의 흥행과 FIFA 재정문제와도 관련돼 있음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돼 버렸다.
또 정몽준 FIFA 부회장의 의지도 한몫하고 있다. 16강 진출과 월드컵 성공개최여부는 잠재적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정 부회장의 향후 정치행보와 직결돼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후원회장에서 “나도 꿈이 있다”며 대권도전 의사가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그는 올해에도 언론을 통해 12월 대선정국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뜻을 여러 차례 내비치기도 했다.
정치권이 월드컵을 중요변수로 보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른바 정계개편론의 급부상이다. 제3후보론도 그중에 하나다. 제3후보의 등장은 이회창-노무현 양자구도를 바꾸게 된다. 어느 쪽 표를 더 잠식할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 대선고지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한나라당 이 후보가 양자구도를 고집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후보는 지난 24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양당구도로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지방선거 후 정계개편에 대한 경계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치권은 ‘월드컵 효과’를 파악키 위해 자체분석은 물론 치열한 탐색전을 벌이고 있다. 각 당은 지방선거와 월드컵을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에 있다.
한나라당 허태열 기획위원장은 “솔직히 월드컵이 우리 당에 유리할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말했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측은 “(월드컵의 영향력에 대해)감이 오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향후 정치권에서는 ‘월드컵 리더십’이 중요화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3김 정치와는 다른 새로운 정치 시스템과 청사진을 내놓는 지도자가 월드컵 개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논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