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세계 쿨캣여자농구단.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접는다’ 일방적 통보
여자프로농구 신세계가 지난 13일 일방적인 통보 방식으로 농구단 전격 해체를 선언했다. 지난 1997년 명문 태평양을 인수해 1998년 창단한 신세계는 15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신세계 해체를 두고 비난 여론이 거세다. 농구계는 물론 사회 각계에서 ‘기업 윤리를 저버린 무책임한 처사’라며 지적하고 나섰다.
신세계는 “금융팀들이 주축이 된 현 상황에서 리그 운영에 한계가 있다”며 “신세계를 대신해 금융권의 프로팀이 추가되는 것이 여자프로농구 활성화를 위한 길”이라고 해체 이유를 설명했다.
일종의 ‘왕따론’이다. 신세계는 지난 몇 년간 입버릇처럼 구단 해체설을 흘렸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정체된 투자로 인한 선수 수급 문제와 스타급 선수들의 뒷돈까지 성행하면서 신세계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투자가 끊긴 모기업과 소외된 인프라에 결국 최악의 길을 택한 것이다.
WKBL이 중재자로서 행정적 한계를 드러낸 것도 사실이지만, 신세계의 무책임한 해체 결정은 납득시킬 수 있는 명분이 부족하다. 신세계는 프로구단을 운영을 기업의 경영적 잣대에만 들이댔다.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 가운데 경영논리로 웃을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괘씸죄에 대표팀 사령탑 팽?
여자프로농구는 팀이 해체된 마당에 여자농구대표팀마저 감독 선임 문제로 시끄럽다. 대한농구협회는 지난 18일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6월 25일~7월1일, 터키 앙카라)을 이끌 대표팀 사령탑에 용인 삼성생명 이호근 감독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유례없는 1~4차 난상토론 끝에 결정됐다.
이 감독의 선임을 두고 말이 많다. 이 감독의 지도력에 문제를 삼는 것은 아니다. 이 감독은 대표팀 코치 경력이 풍부한데다 삼성생명을 수년째 이끌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은 감독이다. 어찌 보면 이 감독도 피해자가 됐다.
문제는 안산 신한은행의 6년 연속 통합우승을 이끌면서 여자대표팀의 숙원이던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마친 임달식 감독의 탈락이다. 임 감독은 “대표팀 감독은 맡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협회 측은 임 감독에 대한 그 어떤 결격 사유도 들지 못한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5회 연속 올림픽 진출이 달린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악감정이 작용했다는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마땅한 이유를 들지 못하는 협회의 입장을 고려할 때 충분히 무게가 실린다. 여자농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번 감독 선임에 결정적인 입김을 낼 수 있는 인사 몇몇이 과거 개인적인 감정으로 임 감독의 사령탑을 강력히 반대했다는 얘기가 지배적이다”라고 귀띔했다. 현재 협회의 기술이사를 맡고 있는 A 씨가 지난 2009년 인도 첸나이 아시아선수권대회 당시 임 감독에게 코치 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것. 이에 대한 악감정이 남아 있어 결정권이 있는 몇몇 부회장들과 단합해 임 감독의 선임에 반대 목소리를 크게 냈다는 전언이다. 또 A 씨는 감독 발표 이후 대표팀 선수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신한은행의 단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선수 차출을 부탁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진 상황이다.
#총체적 행정력 부재
여자농구는 총체적 난국이다. 선수들은 집도 잃고 선장도 잃었다. 여자프로농구 흥행과 여자농구대표팀의 5회 연속 올림픽 진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에 아버지를 잃고 거리로 내앉은 신세다.
신세계의 해체와 감독 선임 문제는 갑작스럽게 닥친 위기가 아니다. WKBL은 이미 행정력에 한계를 보인지 오래다. 중재자로서 역할을 못하고 위기를 자초했다. WKBL은 김원길 총재와 이명호 사무국장이 4월을 끝으로 연맹을 떠날 예정이다. 김동욱 전무이사는 이미 사퇴해 공석이다. 정계와 농구계에 영향력 있는 총재와 실무진이 두 팔을 걷고 달려들어도 새로운 구단을 찾기 힘든 판국에 닥친 현실이다. WKBL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내부부터 흔들리고 있는데 대응책을 모색할 여력이 있을 수 있겠나? 김 총재의 유임설과 김 전무이사의 복직설이 나오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한농구협회도 마찬가지다. 협회는 올림픽이라는 큰 과제를 앞두고 탁상공론에 개인 감정을 개입시키는 한심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협회의 밥그릇 싸움은 해묵은 논쟁이기도 하다. 농구계에 영향력 있는 어르신(?)들이 모여 이권 다툼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대승적 차원의 한국 농구 발전이라는 큰 그림은 그리기 힘든 형국이다. 이번에 불거진 여자대표팀 감독 선임 문제는 단편적인 협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해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한국 여자농구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열악한 환경을 넘어 감동 드라마를 써냈다. 그러나 동시에 닥친 기업과 개인의 이기적 논리에 여자농구의 뿌리가 썩고 있다.
서민교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