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서 떠도는 루머의 대부분은 출처가 불분명한 것들이다. 출처와 신빙성, 정황과 증거 등 정보로서의 조건보다는 어떤 연예인이 등장하고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기인지가 더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증권가 정보지가 연예계 루머의 출처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영어 참고서에 실린 수학 공식’처럼 뜬금없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최근 정부의 민간인 사찰이 화제가 되면서 사정기관의 문건이 연예계 루머의 새로운 출처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정기관에서 확인해 문서화한 내용이라면 상당한 신빙성까지 갖췄다고 볼 수도 있는 터라 파급 효과는 더욱 크다.
정부 고위관계자가 2009년 6월부터 8월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룸살롱에서 대기업 회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향응을 제공받았으며 그 자리에 신인 여성 연예인들까지 동석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됐다. <서울신문>은 단독입수한 문건을 통해 ‘연기자 A 등은 기획사 대표의 강요로 2009년 6월부터 8월 사이 약 2개월 동안 C 룸살롱에 접대부로 종사하면서 대기업 회장의 술자리에 6~7회 동석했다. 동석한 여자 연예인들은 술자리에서 미디어법 등 정부정책과 관련한 대화가 오갔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민정 수석실도 이를 인지하고 확인을 해봤는데 사실과 달랐다”고 밝혔다. 고위 관계자 역시 해명자료를 통해 “그 사람은 30년 지기로 사적인 술자리를 가졌을 뿐 여성 연예인들을 불러 접대받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기자는 과거 C 룸살롱에서 근무했던 전 직원을 만나 소문의 실체에 대해 물었다. 그는 분명 해당 업소에 정재계 고위층 인사들과 신인 연예인들도 자주 온다고 답했다.
“업계에서 유명한 H 마담이 하는 가게라 손님도 모두 그분 인맥이다. 당연히 정재계 인사들이 많다. 신인 여자 연예인도 많이 오는데 접대보단 인사 차원이다. 연예기획사 대표나 제작사 대표들이 투자 유치를 위해 인사 시키러 데려오는 애들이다. 룸에 들어가 인사만 하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인사 차원에서 술 한두 잔 따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를 접대로 볼 순 없다. 가끔 마음에 드는 연예인이 있으면 노래 한 곡 부르게 하고 수백만 원의 팁을 주기도 한다.”
문건에 따르면 A 등 두 신인 연예인이 두 달가량 소속사 대표의 강요로 C 룸살롱에서 접대부로 일했다고 한다. 전 직원의 얘기처럼 단순한 인사 차원이 아닌 접대부로 해당 업소에서 일한 연예인들도 있을까.
“상식적으론 말이 안 된다. 여기 인사라도 오려면 H 마담과 친분이 있어야 하는데 소속 여자 연예인을 접대부로 일하게 해서 돈 벌려는 ‘찌질한’ 연예기획사 대표랑 H 마담이 친하게 지낼 리 없다. 대신 H 마담 밑에서 접대 여성으로 일하다 나중에 연예인이 된 경우는 있었다. 나름 유명해진 배우 C가 대표적이다. 가끔 손님들이 연예인을 불러달라고 하면 불러주기도 한다는데 C 룸살롱에선 그런 일이 많지 않다. 다른 ‘1%’ 업소인 N은 연예기획사 대표가 직접 운영한다는데 오히려 거기가 연예인 접대로 더 유명하다.”
문제의 문건 내용에 대해 C 룸살롱 전 직원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할까. 그는 의아한 부분이 너무 많다며 신뢰성이 다소 낮다고 얘기한다.
“높은 분들이 자주 와서 술을 마시니 그분들도 오셨을 수 있다. 여자 연예인이 인사를 다녀간 경우도 많을 테지만 아마 그 분들은 누가 누군지 기억도 못할 것이다. 뭔가 중요한 얘길 접대 들어온 여자 신인 연예인들 앞에서 했다는데, 정말 중요한 얘기라면 과연 애들 있는 데서 대놓고 얘기했을까 싶다.”
한편 최근에는 경찰 정보라인에서 40대 가수 B가 운영하는 룸살롱 정보가 흘러나왔다는 얘기가 연예관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B가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여자 연예인들의 술 접대를 주선하고 있다는 것. 이 업소의 단골 고객으로 여자 연예인들과 자주 술자리를 가진 인물로는 어느 대기업 회장과 한 저축은행 회장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유흥업계 관계자들에게 탐문한 결과 가수 B는 청담동 소재의 유명 가라오케의 영업사장으로 활동 중이었다. 룸살롱을 직접 운영한다는 얘기와 달리 가라오케 영업사장이었던 것. 또한 그가 연예계 인맥으로 여자 연예인의 술 접대를 주선한다는 얘기와 달리 그는 4~5년 전부터 동료 연예인들과 연락을 끊고 지내다시피 하고 있었다. 다만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그가 바지사장으로 있다는 가라오케다. 그곳은 지난해 여자 연예인이 사회 저명인사에게 술 접대를 했다고 알려져 화제가 됐던 곳이다.
어렵게 가수 B와 전화통화가 됐다. 한 번 만나고 싶다는 기자의 부탁에 무슨 일인지를 거듭 묻던 B는 먼저 문제의 소문을 언급했다.
“기자님 전화라 그 얘기를 물어보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우선 나는 룸살롱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문제의 회장님들과도 모르는 사이다. 그 대기업 회장님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고, 저축은행 회장이라는 분은 수년 전에 잠깐 골프장에서 우연히 만나 지인 소개로 스쳐가듯 인사를 나눈 게 전부인데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B는 문제의 루머에 대해 평소 알고 지내는 방송국 직원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 역시 경찰 정보라인에서 흘러나온 얘기라고 들어 아는 경찰을 통해 정보 관련 업무를 보는 경찰에게 직접 문의까지 했었단다. 그러자 경찰 역시 왜 그런 얘기가 나도는지 모르겠다며 미안해했다고 한다.
사정기관의 문건, 경찰 정보라인 등이 거론되며 신뢰성이 높아 보인 얘기들이지만 명확히 입증되지 못한 채 유야무야 사라지는 행태는 그동안의 연예계 루머와 비슷하다. 물론 밀폐된 룸의 술자리에서 벌어진 사안이라 아무리 경찰이나 사정기관일지라도 이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데 한계가 따를 수 있다. 또한 실체가 확인됐을지라도 관련 인사들에게 미칠 파급 효과를 고려해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는 사이 연예계 루머들은 ‘증권가 정보지’ 대신 ‘사정기관 문건’이라는 더 신뢰도 높고 으리으리한 간판을 달고 확산되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