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
#인구 7만의 도스 축구 열풍
2010년만 해도 사간도스는 일본 프로축구 2부 리그인 J2 무대에서 중위권에 머물던 무명 클럽이었다. 여기에 일본 사가현에서도 작은 편에 속하는 인구 7만 명의 도스를 연고로 두고 있으니, 이들에게 상위리그 도약은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실이 됐다. 윤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 사간도스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항상 ‘우린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패배 의식에 젖어있던 팀은 윤 감독의 등장 직후 크게 바뀌었다. 인스트럭터(기술자문)와 코치, 수석코치를 거쳐 작년 정식 지휘봉을 잡은 윤 감독은 만년 중하위를 오락가락하던 사간도스를 2위로 이끌었다. 그리고 J리그 승격 티켓도 거머쥐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난리가 났다. 그저 주말이 되면 ‘동네에서 또 축구를 하나보다’라고 여겼던 도스 시민들이 이제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줄을 섰다. 이젠 사간도스 머플러 하나쯤은 적어도 도스 시민이라면 무조건 간직해야 할 상품이 됐다. 대략 1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은 사간도스의 경기 때마다 거의 꽉 들어찼다. 도시 전체 인구 중 7분의 1 가까운 사람들이 흥미로운 90분을 보내기 위해 경기장을 줄지어 찾는 진풍경이 연출된 셈이다.
J리그에 오른 올 시즌 사간도스가 올린 성적은 7라운드 현재 4승1무2패(승점 13)로 5위. 돌풍은 진행형이었다. 또한 그동안 항상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일로만 알았던 컵 대회인 나비스코컵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며 토너먼트 라운드 진출도 희망하고 있다. 이미 영웅이었던 윤 감독의 주가는 더욱 폭등했다.
사간도스는 가난한 시민구단이다. 기본부터 갖춰져 있지 않다. 선수단 전체 연봉 규모가 40억 원에 불과하다. 용병 진용은 모두 한국 선수들(김민우, 여성해, 김근환)로 모두 채웠다.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속한 한 장의 쿼터는 남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채우지 못했다. 놀랍게도 전용훈련장도 클럽하우스도 없다. 선수들은 원룸처럼 지어진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여기에 별도 장비 관리사가 없어 축구화도 손수 정비해야 하고 선수단을 돕는 직원이 없어 빨래도 손수 세탁기에 넣고 돌려야 한다. 모든 부분에서 국내 시민구단의 환경과 비슷하기에 요즘의 행보는 더욱 값지다.
‘훈련장 찾아 삼만리’를 외치는 것까지 똑같은 사간도스. 그래도 희망이 있다. 역시 성적이 뒷받침되다보니 관심도 커졌다. 전용 훈련장과 클럽하우스 시설이 올해 내 완공된다. 이미 도스 시의회를 통과했고, 예산 지원 규모까지 구체적으로 나왔다.
“(지역에서)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많아졌다. 팬들과의 미팅도 많이 한다. 할 수 있다면 가급적 모든 자리에 참석하려 한다. 감독이라는 권위 의식은 없다. 내가 외국인, 그것도 한국인이라 화제가 되는 것 같다. 이렇다할 스타급도 없고, 대표팀에 발탁된 선수들도 없지만 우리만의 팀 스피리트(정신)로 잘 버티고 있다.”
▲ 윤정환 사간도스 감독이 2011년 7월 10일 J2 리그 카탈레 도야마와의 경기에서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사진출처=사간도스 홈페이지 |
사간도스는 훈련량이 많고 혹독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표방한 리그답게 J리그는 대다수 클럽들이 철저한 자율화를 택하고 있다. 일단 하루 한 차례 정도 예정된 공식 풀 트레이닝만 마치면 모든 일상을 알아서 보내고 있다. 올림픽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많은 국내 유망주들이 일본행을 택하는 모습을 보며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으며 뛰는 건 생각보다 힘겹다”고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사간도스는 ‘자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창단 이후 첫 번째 1부 리그에 도전하기 앞서 오키나와에서 진행된 동계 전지훈련 내내 엄청난 훈련을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가벼운 러닝 위주의 새벽 훈련, 아침 식사 후에 진행되는 개별 훈련, 점심 식사와 잠깐의 휴식 후 팀 전술 훈련, 야간 조명을 켜놓은 채 하는 야간 훈련까지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아 선수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일부는 “J리그에 올라왔는데, 똑같이 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반발하고, 태업을 하는 듯한 액션을 취했지만 윤 감독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그의 지론은 뚜렷했다. 사간도스 선수들은 “우리는 약체다. J리그에 있다고 해서 모든 클럽들이 똑같은 전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우리식, 우리만의 플레이를 하자’는 말은 내뱉기는 정말 쉽다. 하지만 쟁쟁한 상대들을 만났을 때 여전히 우리 애(선수)들은 겁을 먹는다. 당연하다. 약팀이 강팀을 두려워하는 건 세상의 빤한 이치다.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 똑같은 양, 똑같은 프로그램의 훈련으로 만족하는 건 있을 수 없다”는 벤치의 거듭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대신 공식 스케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철저히 휴식을 줬다. 일절 터치하지 않았고 스스로가 모든 걸 하게끔 했다. 물론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나마 즐기되, 적정한 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았다. 담배를 피우는 것까지 허용할 정도로 열린 자세를 취했다. 여전히 사간도스 내 몇몇 선수들은 버젓이 담배를 피운다. 단, 경기 전날이나 당일에는 자제하도록 했고 이를 잘 지키고 있다.
여기에 윤 감독은 자신만의 비책도 꺼내들었다. 바로 시범식 교육이었다. 선수들만 뛰도록 하고, 자신은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대신 모든 걸 함께했다. 같이 땀을 흘렸고, 같이 땅을 굴렀다. 필요하다면 제자들에게 과격한 태클도 마다하지 않았다. 훈련 중간 중간 여전히 녹슬지 않은 킥을 보여주며, 전매특허인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주며 주변의 신뢰를 샀다.
선수들의 굳었던 마음도 차츰 풀렸다. J2리그 무대에서 그랬듯이, J리그에서도 사간도스는 꾸준히 상향곡선을 그렸다. 그렇게 윤정환의 사간도스는 올 시즌 목표로 설정한 8위(J리그는 8위권 이내 진입할시 상금을 부여한다)를 향해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