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합병원 오무영·김석권·정근, 6.25 아픈 가족사 안은 60대
-한국전 참전국 튀르키예 안타키아, 메르신 등에서 지진 이재민 구호
-눈병·알레르기 피부질환, 무릎통증 호소 외과계 환자 500여 명 진료
[일요신문] 규모 7.0의 강진에 이어 6.4 규모의 여진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2월 17일부터 7박 8일간 의료봉사활동을 펼친 그린닥터스-온병원그룹 사회공헌재단의 ‘튀르키예 대지진 긴급의료봉사단’이 2월 24일 오후 5시 30분 김해공항을 통해 무사히 귀국했다. 그린닥터스 튀르키예 봉사단은 이 기간 동안 지진 피해가 가장 심한 안타키아, 메르신 등에서 튀르키예와 시리아 이재민 500여명을 진료했다.
강진으로 수많은 건물들이 무너지면서 잔해 등에 손상 입은 탓인지 안경이 깨지는 바람에 생활불편을 호소하거나, 눈이 잘 안 보이지 않는다며 안과질환을 호소하는 이재민들이 진료소를 많이 찾아왔다. 알레르기 등 피부 질환 환자,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외과계 환자, 당뇨나 고혈압 등 기저질환자들이 지진 등으로 제때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해 그린닥터스의 임시진료소를 몰려들어 약 처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진 피해가 가장 심했던 안타키아의 경우 6.4 규모의 여진까지 덮치는 바람에 거동 불편한 이재민들을 돌보려고 의료진이 직접 이재민 캠프를 찾아가기도 했다. 이번 튀르키예 지진봉사단에 참여한 의사 4명 가운데 셋은 전쟁 1세대라 불리는 60대여서 튀르키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김석권(성형외과전문의), 오무영(소아청소년과)과장은 한국전쟁 막바지인 1952년 말과 1953년 초에 태어나 전후 가난과 굶주림으로 격심한 전쟁 후유증을 앓았다.
오무영 과장은 월남가족이다. 아버지 고향은 황해도 해주. 6.25 전쟁이 발발하자, 오과장의 부모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북한의 고향을 버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남쪽행을 선택해야 했다. 이런 가족사를 안고 있는 그는 정근안과병원 정근 원장이 설립한 국제의료봉사단체 그린닥터스 재단에 합류했고,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인류애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오 과장은 북한 개성공단 내 그린닥터스 운영 개성병원의 진료봉사에 적극 동참했고, 해마다 그린닥터스 해외의료봉사 활동에 빠지지 않았다. 지난해 5월엔 여전히 전운이 감도는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캠프에서 봉사한 데 이어 이번에 튀르키예 지진 봉사에 뛰어든 것이다. 튀르키예 봉사단에 참여한 데에는 오래전 한국전쟁에서 우리나라의 자유를 지키려고 피 흘린 튀르키예에 보은하려는 마음이 컸다.
오 과장과 같은 또래인 김석권 과장도 전쟁 중에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전후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 만행을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고 살아온 그는 그린닥터스의 튀르키예 지진 봉사단 파견 소식을 듣고 곧바로 동참을 결정했다.
전후 가난과 굶주림을 뼈저리게 겪어온 그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된 밑거름이 이 땅의 자유를 지켜내려고 이름 모를 이국땅에서 숨져간 튀르키예 젊은 영령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선뜻 지진 봉사단에 합류했다.
20년 넘게 그린닥터스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근 단장도 6.25전쟁과 관련해 가슴 쓸어내리는 급박한 사연을 갖고 있다. 지리산에 둘러싸인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그의 선친은 6.25전쟁 발발 후 인민군대에 강제로 끌려가는 신세에 처했다고 한다. 당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이들은 ‘총알받이’ 신세였다.
징집된 지 1년 도 안 돼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아들고 울부짖는 인근 동네 어른들을 수없이 봐왔던 그의 선친은 야밤을 틈타 기적적으로 징집대열에 도망쳐 소중한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라난 정근 단장도 한국전쟁 참전국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고 있다.
그린닥터스는 수년 전부터 세계 유일하게 존재하는 부산 남구 유엔평화공원에 잠들어 있는 한국전 해외 영령들의 비석 닦기 봉사를 청소년 회원들에게 권장하면서 참전국가에 대한 보은의 마음이 오래오래 대를 잇게 하고 있다.
정근 단장은 “그동안 스리랑카, 파키스탄, 미얀마, 네팔 등 지진 등 자연재난 지역현장에서 긴급 의료봉사활동을 펼쳐왔지만, 이번 튀르키예에서는 마음가짐이 달랐다”며 “1950년 6.25전쟁 시 튀르키예 등 참전국가의 젊은 병사들이 이 땅의 자유를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특히 전쟁 1세대인 60대 의사들은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에 대해 보은의 마음으로 1주일간의 일정을 보냈다”고 강조했다.
박정헌 부산/경남 기자 ilyo3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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