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지만 당선자(가운데)가 직접 밝힌 사진의 제목은 ‘봉원사 독사 삼형제’다. 그는 “연세대학교 재학시절, 대구에서 올라온 세 형제가 정말 ‘독하게’ 살았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봉원사 옆 산동네에 2평 남짓한 월셋방을 얻어 함께 살았고 한 달 생활비는 14만 원이었다. 책상이며 숟가락 등 집기는 학생식당에서 빌려 썼다”고 회상하며 “힘든 시절이었지만 이때의 경험이 앞으로 서민의 아픔을 이해하고 대변할 밑거름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
지난 5월 15일,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열린 일산 킨텍스에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울려 퍼졌다. 대회 막바지에 한산해진 장내는 웃음이 터졌고 행사를 지켜보던 보좌관들은 이날 사회를 맡은 새누리당 홍지만 당선자(44ㆍ대구 달서갑)를 향해 “앵커 출신 맞으세요?”라며 농담을 건넸다. 홍 당선자는 이번 전당대회 사회를 통해 ‘새누리당의 잔바리(연차가 낮은 기자를 뜻하는 은어)’이자 열혈 초선 의원으로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 홍지만 당선자. |
‘이 한 장의 사진’을 위해 홍 당선자는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사진들을 공개했는데 지면에 실리지 못한 사진에는 88년 서울올림픽 취재단 통역 총괄팀장을 맡았을 때의 사진도 있었다. 그는 “미국 NBC의 유명 앵커 톰 브로코 씨가 올림픽 통역팀장인 내가 스물두 살의 대학생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며 “이런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어 SBS에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을 면담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그가 엘리트 코스만 밟아 온 인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가난한 환경 탓에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고 한다. 홍 당선자는 “이미 위로 아들 둘, 딸 둘을 두셨던 어머니는 나를 가지고도 몇 개월 동안 임신 사실을 숨기셨다고 한다. 유년 시절을 경북 성주에서 보냈는데 누나의 슬리퍼를 신고, 형들에게 물려받은 옷을 입어도 마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범상치 않은 출생만큼 그의 정계진출도 처음부터 순조롭지는 않았다. 2008년 SBS를 퇴사하고 정계 진출을 선언한 홍 당선자는 18대 총선에서 대구 지역 ‘당선 티켓’인 한나라당 공천을 받는데 성공했지만 당시 친박연대를 결성한 뒤 출마한 박종근 의원에게 패하고 말았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었던 셈인데 4년 뒤 19대 총선에서는 다윗이 승리했다. 홍 당선자는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지역구를 양보해 주신 박 의원님께 감사드린다”며 “20년 넘게 침체된 대구 경제를 살리기 위해 2년 전부터 아이들 학교를 포함해 모든 거처를 옮겼다. 현재 서울에 따로 기거할 곳도 없는 상태”라며 TK 지역 최연소다운 패기를 자랑했다.
홍 당선자는 18대 총선에서는 친이, 19대 총선에서는 친박으로 분류됐지만 정작 본인은 “당내 계파는 잘 모른다”고 강조했다. 다만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브랜드인 신뢰를 내 것으로 만들고 오는 12월 대선에서 헌신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