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야기한 영화 <폴터가이스트>시리즈에 얽힌 저주가 6년에 걸친 비극이었다면, 이번 주엔 좀 더 긴 역사를 지닌 할리우드의 저주를 이야기하려 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슈퍼히어로인 ‘슈퍼맨’을 주인공으로 하는 TV 시리즈와 영화에 얽힌 사건과 사고는 50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것. 내년에 나올 새로운 슈퍼맨 무비인 <맨 오브 스틸>도 혹시 저주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된 배우들에게 이어졌던 악몽 같은 일들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저주의 시작은 조지 리브스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에서 조연을 맡으며 각광받았지만 이후 30대 초반까지 단역을 전전하던 그는 서른일곱 살 때 저예산 영화 <슈퍼맨과 몰 맨 Superman and the Mole Men>(1951)에 출연하면서 작은 가능성을 본다. 이후 그는 TV 시리즈 <슈퍼맨의 모험>(1952~58)에 나와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슈퍼맨의 모험> 시리즈가 일단락된 후 재충전의 시기를 가지며 결혼을 준비하던 1959년. 그는 권총 자살로 세상을 떠난다.
MGM의 부사장인 에디 매닉스의 아내였던 토니 매닉스(리브스보다 10년 연상)와 10여 년 동안 내연의 관계였던 리브스는 그녀와 결별을 선언하고 맨해튼의 한 클럽에서 쇼걸로 활동하는 엘레노어 레먼이라는 여성과 1959년에 약혼을 했다. 결혼식을 3일 앞둔 시점인 6월 15일, 리브스-레먼 커플은 시나리오 작가이자 그들과 함께 지냈던 로버트 컨던과 함께 시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고(이때 커플은 다투었다고 한다), 자정이 넘어 12시 30분 쯤에 집으로 돌아왔다. 각자 침실로 들어갔을 때, 이웃 친구 두 명이 찾아와 결혼을 축하한다며 술을 마시자고 했고, 리브스는 화를 내며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 이때 레먼은 “자기 방으로 가서 자살이라도 하려나 보군!”이라며 빈정거렸는데, 몇 분 후 리브스의 방에서 총성이 들렸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유서도 없었고 총엔 지문도 없었다. 몸에 있던 멍 자국에 대한 경찰의 해명도 없었다. 2만 달러 개런티의 호주 투어가 잡혀 있었고, 새로운 TV 시리즈를 기획 중이었으며 무엇보다도 3일 후에 결혼할 사람이 술에 취해 갑자기 목숨을 끊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에이전트였던 아서 와이스먼은 “그를 잘 알고 있던 누군가의 악의적인 행동”이라며, “리브스가 종종 빈 총으로 러시안 룰렛 장난을 친다는 걸 알고 있는 누군가가 총에 몰래 총알을 넣어 놨다”고 주장했다. 그가 죽기 전 몇 달 동안 살해 위협 전화도 있었다. 이에 리브스의 어머니는 사립탐정들을 고용해 진짜 사인을 찾으려 했고, 그들은 자살이 아닌 걸로 결론 내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7년 만인 1996년에 나온 <할리우드 크립토나이트>라는 책은, 토니 매닉스가 청부업자를 고용해 리브스를 죽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슈퍼맨>(1941~43)에서 슈퍼맨 목소리 연기를 맡았으며, 1966년에 <슈퍼맨의 새로운 모험> 시리즈가 나왔을 때도 참여했던 버드 콜리아가 갑자기 심장 질환으로 사망한 것이 1969년. <슈퍼맨>(1948) <아톰 맨 vs 슈퍼맨>(1950) 등으로 유명했으며 1978년에 그 유명한 <슈퍼맨>이 나왔을 땐 로이스 레인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했던 커크 앨린은 이후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 한편 <슈퍼맨>에서 생후 8개월이었을 때 슈퍼맨의 아기 시절 역할을 맡았던 리 퀴글리는 1991년에 지나친 본드 흡입으로 14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가장 큰 비극은 크리스토퍼 리브. <슈퍼맨>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으며, 슈퍼맨 역할을 맡았던 역대 배우 중 미국인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그는 10년 동안 총 네 편의 시리즈에 출연했는데, 1995년 낙마 사고로 마비 증세를 겪게 된다. 이후 불굴의 의지로 배우 활동을 이어가며 ‘진정한 슈퍼맨’의 모습을 보였지만, 2004년 합병증으로 인한 심장 질환으로 52세에 세상을 떠났다.
상황이 이쯤 되자 <슈퍼맨 리턴즈>(2006)를 제작할 때 적지 않은 배우들이 영화를 거절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미신이라고는 하지만 찜찜한 무엇이 있었던 것. 하지만 미신만이 아니었던 건, 프로듀서인 로브 버넷은 강도를 당해 뇌진탕으로 잠시 실명했고, 편집 스태프였던 애덤 로비텔은 창문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로이스 레인 역의 케이트 보스워스가 4년 가까이 사귀었던 올랜도 블룸과 헤어지자 다시 ‘슈퍼맨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에 슈퍼맨 역을 맡았던 브랜든 루스는 당당하게 맞섰다. “한 사람에게 혹은 몇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이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진 않으며, 그러기에 공포를 느끼며 인생을 살 필요는 없다. 나에게 ‘슈퍼맨의 저주’는 무의미하다.”
내년에 <맨 오브 스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우리 곁을 찾을 슈퍼맨. 이번엔 그 어떤 사건도 사고도 비극도 없이, 무사히 지구에 안착하길 바란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