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한 당직자가 정대철 대표 (맨 왼쪽)에게 항의하고 있다. 이날의 폭력사태로 인해 당내에서 신당 논의가 ‘연착륙’할 수 없음이 확인됐다. | ||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 민주당 의원 23인의 ‘당의 발전적 해체’ 서명이 발표된 지 6개월, 4·24재보선 여당 참패 이후 신당 창당이 공론화된 지 2개월여가 지났음에도 신당의 주체와 성격, 비전 등 핵심사항에 대한 합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신당 성공의 핵심변수라 할 수 있는 민주당 사정은 신주류측이 전략·전술적 미숙함을 잇달아 노출하면서 구주류측에 역공을 당해 추진력이 갈수록 떨어져가고 외곽 개혁세력들은 주도권 다툼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사정 때문인지 최근 들어 신당에 대한 여권 내 기대감은 급격히 떨어져가고 있다. 비록 한나라당 일부 개혁파 의원들의 전당대회(6월26일) 이후 ‘탈당설’이 거론되면서 신당 논의가 다시 탄력을 얻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민주당 안팎의 형편을 볼 때 상황이 결정적으로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일종의 ‘신당 무망론’이라 할 수 있는 이 같은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 배경을 짚어봤다.
노무현 대통령의 한 핵심측근은 지금까지 신당 논의의 한계이자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주체세력의 부실’을 들었다.
그는 “신당 논의를 주도해온 민주당 안팎의 세력들은 아직 대선 기간 ‘친노(親盧) 그룹’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노선에 근거한 결사체가 아닌 특정 시기의 ‘선택’의 문제, 까놓고 얘기하면 대선 기간 ‘노무현 사수’에 줄을 섰느냐, 아니면 ‘후보 단일화’에 기울었느냐에 따라 형성된 느슨한 연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과거 상도동계나 동교동계와 비교할 때 상황 돌파력이 턱없이 떨어진다. 사실 지금이라도 아무런 조건 없이 신당을 위해 민주당을 탈당하겠다는 의원들이 10명만 돼도 상황은 백팔십도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얼마 전까지 ‘분당 불사’의 의지를 피력하며 신당 창당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던 신주류 내 강경파 그룹들의 태도는 갈수록 ‘온건’해지고 있다.
신당추진모임(의장 김원기 고문) 핵심 의원들이 총무·기획·조직위원회 등 분과위 체제를 구성하고 1인당 2천만원씩 비용을 갹출하기로 하는 등 독자적인 신당 창당 추진을 공언하고 있지만 정작 ‘분당’ 또는 ‘탈당’에 대해서는 고개를 젓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당무회의 폭력사태(6월16일)를 통해 당내에서 신당 논의가 ‘연착륙’할 수 없음이 확인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신당에 대한 의지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 소속 의원 3분의2가 동참해 기세를 올렸던 지난 5월16일 신당추진 모임 1차 워크숍 때처럼 ‘신당 대세론’이 다시 형성되지 않는 한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란 분석이 신주류 내에서조차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형편이다.
▲ 지난 16일 당무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천용택 의 원이 구주류쪽 당직자들에게 붙잡혀 봉변을 당하 고 있다. 이런 폭력사태는 국민들에게 신당의 이 미지를 부정적으로 각인시켰다. | ||
신당 추진세력들이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이란 양대 좌표를 제시했지만 내용이 모호한 데다 왜 신당을 통해서만 그 같은 목표의 실현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구주류측이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계승 의지와 대북송금 특검법에 대한 태도 등을 강력비판하면서 ‘평화애호 세력’이란 개념을 내걸고 세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반면 신주류측은 ‘정치개혁=구주류 인적 청산’ ‘국민통합=전국정당화=호남 배제’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남북문제와 대미관계 등에서 ‘현실론’을 내세워 계속 김대중 정권의 정책노선을 수정하려 들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햇볕정책 계승과 ‘자주외교’에 대한 기대를 저하시킬 경우 ‘신당 콘텐츠’를 둘러싼 논란이 싫든 좋든 간에 호남권과 진보 성향 유권자 등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세력들로 하여금 신당이 아닌 다른 ‘대안’을 모색하게 만들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
실제 민주당 내에서 추미애 의원 등 일부 신주류 핵심인사들과 재야 출신 중도파 의원들이 신당대열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다 이 같은 원인에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때 신당의 ‘전위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며 전국 각지에서 조직을 결성한 외곽 세력들도 이제는 민주당 신당파들에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개혁국민정당 등 ‘반(反) 민주당’ 색채를 뚜렷히 하고 있는 범추본의 경우 이미 내년 17대 총선 출마예정자 1백20명의 명단까지 공개하며 독자 창당 움직임을 노골화해 민주당 신주류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신주류측은 범추본이 수도권에서만 무려 55명의 총선 예비 후보들을 공개함에 따라 해당 지역 중도 성향 의원들을 신당 대열에 끌어들이는 데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아울러 명단에서 ‘거물급’이 거의 없는 반면 절대 다수가 출마에 뜻을 둔 무명의 신진 소장파여서 자칫 ‘신당=정치 예비군 집결지’라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이들이 지금과 같은 행보를 계속할 경우 민주당 사정과 관계없이 자체 탄력에 의해 독자적인 ‘개혁신당’을 만드는 쪽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 이래 저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와 관련, 호남 출신 신주류 한 핵심 의원은 “범추본이나 정개추의 최근 활동을 보면 신당 추진작업이 얼마나 파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신주류들은 당내에서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들을 규합하려 전력을 쏟고 있는데 그들은 ‘반(反) 민주당’, ‘반(反) 호남’ 행보를 계속해 신당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해악을 끼치고 있다.
특히 호남 민심 대다수가 ‘민주당 사수’라는 구주류측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행동은 ‘경거망동’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신당 무망론’의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신당에 대한 대 국민 지지도가 갈수록 떨어진다는 점이다. 신당 얘기가 흘러나온 지 2개월여 동안 초창기 여론에 어필했던 ‘개혁’ ‘지역구도 타파’ 등의 긍정적 메시지는 어느덧 자취를 감춘 반면 ‘갈등’ ‘폭력사태’ 등 부정적 이미지만 갈수록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신주류 중심 신당’과 ‘구주류 중심 민주당’으로 쪼개져 다당구도가 형성될 경우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란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신당파들의 발길을 멈칫거리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중도파로 분류되는 재야 출신 한 의원은 “신당에 부정적인 여론이 달라지지 않는 한 신주류들이 민주당을 박차고 나가 신당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야 한다.
중도파들이 외면될 경우 자칫 지난 대선기간 후보단일화협의회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의 탈당이라는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신·구주류와 중도파가 서로 딴 소리를 내는 비정상적인 ‘한 지붕 세 가족’ 체제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혁신적 리모델링’ 등의 표현법으로 양측이 절충점을 찾는다 해도 ‘기껏 그럴려고 그토록 난리를 쳤느냐’며 또 다른 여론의 뭇매를 맞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