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의 연인’이었던 진 세버그. 정치적 공작이 어떻게 사람을 망쳤는지 그녀의 삶을 보면 알게 된다. |
프랑스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네 멋대로 해라>라는 영화 제목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이른바 ‘누벨 바그’의 흐름을 만들어낸 장 뤽 고다르의 1959년작 <네 멋대로 해라>는 미국에서 온 유학생 패트리샤와 파리의 건달이자 좀도둑인 미셸의 이야기다. 특히 거리에서 “뉴욕 헤럴드 트리뷴!”을 외치며 신문을 파는 패트리샤의 모습은 이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의 주인공인 진 세버그는 미국 출신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 프랑스에서 더욱 인기 있는 배우가 됐다. 이런 그녀의 삶은 정치적 미스터리의 희생물이었다.
열아홉 살의 나이에 오토 프레밍거 감독에게 발탁되어 <성 잔다르크>(1957)에서 잔다르크 역을 맡으며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그녀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은 대서양 건너편의 젊은 감독 장 뤽 고다르였다. 데뷔작을 준비하던 그는 미국인 유학생 패트리샤 역을 위해 당시 갓 스무 살이 된 진 세버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세버그는 이 영화로 미국과 유럽에서 모두 각광받는 여배우가 되었다. 5년 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스물네 살 연상의 로맹 가리와 결혼하게 된다.
1960년대의 많은 배우들이 그랬듯 진 세버그는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관점에 따라선 급진파로 볼 수도 있었다. 그녀는 당시 정치적 과격파였던 ‘블랙 팬더’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대서양 양쪽에서 강한 영향력을 지닌 여배우의 이런 태도는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국의 정보기관에겐 매우 거슬리는 대상이었고, FBI의 집요한 감시와 비밀공작이 시작되었다. 유럽 여행 중인 그녀의 뒤엔 미행이 붙었고, 그녀의 아파트 전화는 도청의 대상이 되었다.
FBI는 진 세버그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끊임없이 루머를 만들어냈다. 그 중 가장 악질적인 것은 진 세버그의 두 번째 임신을 둘러싼 것이었다. 1970년 그녀가 로맹 가리의 아이를 가졌을 때, FBI는 가십 칼럼니스트인 조이스 하버를 통해 <LA스타임스> 한 구석에 “진 세버그가 블랙 팬더의 리더인 레이먼드 휴이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근거 없는 기사를 흘린다. 이 기사는 <뉴스위크>에 인용되었고 큰 상처를 받은 진 세버그는 수면제를 삼키며 자살을 시도했다. 그 영향으로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는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버그와 로맹 가리는 소송을 걸었지만, 피고 측 매체들이 가벼운 벌금형을 받는 걸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은 세버그를 폐인으로 만들었다. 아이의 기일마다 자살을 기도했고 로맹 가리와도 헤어졌다. 지속적인 우울증에 빠졌으며 그것을 이기기 위해 알코올에 손을 댔고 곧 중독 상태에 빠졌다. 1972년엔 영화감독 데니스 베리와 결혼했지만 그다지 오래 가지 못했고, 이후 알제리 출신의 젊은 연인 아메드 하스니에게 의지하게 됐지만 진 세버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위험한 상태였다.
하스니가 세버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79년 8월 30일이었다. 거의 나체 차림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한 손엔 신경안정제를 들고 파리의 아파트를 나섰다고 한다. 그리고 9월 8일 진 세버그의 흰색 르노 자동차가 그녀의 아파트 근처에서 발견됐다. 그녀는 나체 상태로 뒷좌석에 죽어 있었고, 아들 디에고에게 남긴 유서가 발견되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디에고, 엄마를 용서해라. 난 더 이상 살 수가 없구나. 약한 자들을 괴롭히고, 흑인과 여성들을 억누르며, 아이들을 학살하는 이 세상을 엄마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엄마를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엄마가 널 사랑한다는 것도 넌 알 거야. 강하게 살아가길…. 널 사랑하는 엄마로부터.”
유서 내용을 바탕으로 경찰은 약물과 알코올 과용에 의한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세버그의 전남편이었던 로맹 가리는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핵심은 자동차였다. 세버그는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 없인 운전할 수 없는데, 경찰의 발표에 의하면 아파트에서 발견된 세버그의 가방엔 운전면허증과 돈과 안경이 있었던 것. 로맹 가리는 그녀가 운전을 해 어디론가 갔다가 집 근처 아파트로 온 건 절대 아니라며, 누군가가 대신 운전했으며 그러면서 자살로 위장한 거라고 주장했다. 그녀의 혈액에서 측정된 알코올 농도도 의혹의 대상이었다. 매우 높은 혈중 알코올 수치였는데, 세버그 정도의 체중을 가진 사람이라면 거의 코마 상태에 달하게 하는 수준이라는 것. 차 안에서 술병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인데, 코마 상태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타임>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마흔한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 여배우의 죽음을 과연 자살로 봐야 할지 문제를 제기했다. 설사 그녀가 자살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상태에 이르기까지 FBI가 개입했다면 정치적 타살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공개 가능하게 된 문서엔, 당시 FBI가 진 세버그를 어떤 식으로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사찰’했는지 드러났다. 하지만 더욱 슬픈 일은 이미 일어난 상태였다. 진 세버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뒤, 그녀를 진정 사랑했던 전남편 로맹 가리는 슬픔에 젖어 권총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