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꺾기도’. 사진제공=KBS |
개그맨 김준호는 단연 <개콘>의 살아있는 역사다. <개콘> 1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출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박 사건으로 인해 20여 회를 출연하지 못하면서 ‘개근’의 경지에 이르진 못했을 뿐이다. 그 사이 <개콘>에는 수많은 계파가 존재했으며 각 계파의 수장들 가운데 최대 계파의 수장이 <개콘> 1인자의 자리에 올라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해 왔다. 김준호의 한 기수 선배인 박준형, 세 기수 후배인 김병만 등이 대표적인 <개콘> 1인자 출신이다.
사실 김준호는 SBS 공채 개그맨 출신이다. 그렇지만 <개콘> 등 KBS 개그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며 이후 KBS 희극인실로부터 공채 기수(14기)를 받아 김영철 김미진 김지혜 김상태 등과 동기가 되면서 이런 핸디캡을 극복했다. 현재는 연예기획사 ‘코코엔터테인먼트’ 대표로서 최대 계파 ‘김준호계’를 이끌며 <개콘> 1인자 자리에 올랐다.
김준호가 대표인 ‘코코엔터테인먼트’에는 김대희 김영희 김원효 김준현 박지선 안윤상 양상국 유민상 정경미 등 30여 명이 소속돼 있다. 현재 <개콘>에 주로 출연하는 개그맨의 절반 이상이 코코엔터테인먼트 소속이며 가장 인기 있는 코너를 이끄는 주역들 역시 여기에 속해 있다. <개콘>의 한 관계자는 “코코엔터테인먼트 소속 개그맨 등 ‘김준호 계’로 분류되는 개그맨들이 실질적으로 <개콘>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고 얘기할 정도다.
그렇다면 <개콘>에서 성공하려면 김준호 뒤에 줄을 서야 하는 것일까. 김준호의 코코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야만 좋은 코너에 들어가 뜰 수 있을까. <개콘> 출연 개그맨들은 절대 그렇진 않다고 얘기한다. <개콘> 내부의 계보 구도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 김준호 김원효 김준현 등이 출연하는 인기 코너 ‘비상대책위원회’. 사진제공=KBS |
당시만 해도 <개콘> 최대 계파는 ‘김병만 계’였다. 김병만은 자신의 소속사였던 ‘BM 엔터플랜’ 소속 개그맨을 중심으로 절친 이수근과 함께 <개콘>의 1인자로 군림했다. 그렇지만 서 PD가 담당 PD가 된 뒤 ‘김준호 계’와 ‘박성호 계’가 급부상하며 <개콘>은 세 개의 계파가 자웅을 겨루는 삼국 분할기에 접어든다.
각 계파는 고참 개그맨의 특기에 따라 구분된다. ‘김병만 계’는 김병만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이수근의 예능 MC가 강점이다. 이에 따라 슬랩스틱 코미디와 예능 MC에 관심이 많은 후배 개그맨들이 모였다.
김준호와 김대희의 장점은 콩트 개그다. 김준호가 대표인 ‘코코엔터테인먼트’ 소속 개그맨을 중심으로 콩트 개그에 관심이 많은 후배들이 ‘김준호 계’의 주축이 됐다.
박성호는 <개콘> 내에서 토크 개그의 1인자로 불린다. 따라서 토크 개그에 관심이 많은 최효종 안상태 황현희 김대범 등이 ‘박성호 계’로 분류된다. 다만 박성호의 경우 특정 연예기획사와 연계돼 계파가 형성된 것은 아니라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개콘>에 출연 중인 한 개그맨은 “서 PD는 후배들이 능력 있는 선배들과 호흡을 맞춰 새로운 코너를 만들도록 유도했다”면서 “그러다 보니 고참 개그맨들이 갖고 있는 각각의 장점에 따라 후배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세 개의 계파가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11월 김병만이 ‘달인’ 코너 폐지로 노우진 류담 등과 함께 <개콘>에서 잠정 하차했다. 결국 좌장을 잃은 ‘김병만 계’는 다소 위축됐고 김준호 계는 자연스럽게 최대 계파로 급부상하며 삼국구도는 다시 김준호의 천하통일로 이어졌다. 그렇게 김준호는 <개콘> 1인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요즘 <개콘>은 파업에서 돌아온 서 PD와 함께 대대적인 변신에 돌입했다. 기존 인기 코너가 연이어 폐지되고 새로운 코너가 신설되고 있는 것. 그렇다고 ‘김준호 계’가 새 코너를 장악하고 다른 계파 개그맨이나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은 개그맨들이 철저히 소외되진 않을 전망이다. 요즘 <개콘> 내부의 계파 경쟁이 정치권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병만 계’로 분류되는 한 개그맨은 “<개콘> 내부에서 계파의 차이는 소속사가 달라 매니저가 다르다는 점 정도와 연말 등 공연 성수기 때 각 계파나 소속사별로 따로 공연 무대에 오르는 정도”라며 “물론 ‘김준호 계’가 다수라 대부분의 코너에서도 중심이 되고 있지만 이를 위해 다른 계파나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은 개그맨들에게 피해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서 PD는 “무슨 파벌 같은 개념은 아니고 영역별로 개그맨들이 나뉘어 있는 것일 뿐”이라며 “콩트 코너를 짤 때는 김준호와 김대희, 토크 코너는 박성호, 슬랩스틱은 김병만 등의 도움을 받는 게 자연스러워지면서 그들에게 배우려는 후배 개그맨들이 모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유랑 장수 김병만, 언제 돌아오나
관건은 과연 김병만이 <개콘>으로 언제 돌아오느냐의 여부다. 김병만은 ‘달인’ 코너가 폐지되며 <개콘>을 떠났다. 그렇지만 김병만은 하차가 아닌 잠정 하차임을 강조했다. 소재 고갈 등으로 인한 슬럼프 때문에 잠시 <개콘>을 떠나는 것일 뿐, 언제든 다시 <개콘>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개콘> 하차 이후 김병만은 SBS <정글의 법칙>과 JTBC <이수근 김병만의 상류사회> 등에 출연하고 있지만 타사 개그 프로그램에는 출연하지 않고 있다. 종편행 등 <개콘> 하차를 두고 온갖 소문이 많았으면서도 <개콘>을 하차했다고 출연 프로그램을 급격히 늘리거나 타사 경쟁 프로그램으로 이적하진 않은 셈. 휴식기를 갖고 <개콘>에 복귀할 것이라던 그의 약속이 아직까진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마치 잠시 전장을 떠나 ‘유랑’ 생활을 하고 있는 장수처럼 말이다.
김병만 역시 올곧게 <개콘> 외길을 걸어왔다. 인기 코너 ‘달인’을 4년여 동안 이어오면서 ‘슬랩스틱의 1인자’로 자리 잡기도 했다. <개콘> 1인자의 자리에 오른 뒤에는 후배들을 잘 챙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개콘>의 인기 코너 ‘생활의 발견’은 김병만이 만들어서 송준근과 신보라 등 후배들에게 준 코너로 유명하다.
한 후배 개그맨은 “자기 쪽만 챙기는 모습이 전혀 없었고 그런 노력이 지금까지 이어져 김준호 선배님이나 김대희 선배님도 같은 소속사가 아닌 다른 소속사 후배들까지 다 아우르고 있다”면서 “특히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쳐 어렵게 KBS 공채가 된 경험을 갖고 있어 아직 공채가 못 된 인턴 개그맨들을 특히 신경 써서 챙겼다”고 말한다.
김병만이 <개콘>으로 돌아오면 ‘김병만 계’는 다시 계파의 위용을 갖추게 된다. 이럴 경우 현재의 최대 계파인 ‘김준호 계’와 과거 최대 계파였던 ‘김병만 계’가 <개콘>의 양대 계파로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전망이다. 이는 또 콩트와 슬랩스틱의 대결이기도 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
▲ 지난해 폐지된 ‘달인’. 사진제공=KBS |
항간에선 서수민 PD와의 호흡이 맞지 않아 김병만이 <개콘>을 떠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서 PD가 김준호를 적극 밀어 김병만이 <개콘>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
▲ 서수민 PD. |
서 PD는 “(김)병만이가 하차한 게 언제인데 이제 와 왜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면서 “불화나 갈등 등의 얘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