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5일 대전에서 성대하게 열린 국민통 합21중앙당 창당대회. 정몽준 의원은 대선이 끝 나고 사실상효용가치를 잃은 이 정당을 과연 접 을 것인가. | ||
정 의원은 지난 8일 5개월여의 미국생활을 끝내고 귀국했다. 정 의원은 귀국 당일 열린 한국과 우루과이의 A매치 축구경기와 9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했고 이후 상임위 회의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그러나 정 의원은 귀국한 지 2주일이 지나도록 당무에는 공식 복귀하지 않고 신낙균 대표 권한대행에게 여전히 당무를 일임하고 있다. 귀국 후 당사에 들른 것도 2~3차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이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중앙당에 잔류하고 있는 주요 당직자들은 당의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해왔고 17대 총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40여 명의 지구당위원장들은 중앙당에 당의 활성화를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통합21이 사실상 정몽준 1인 정당임을 감안하면 당의 활성화는 전적으로 정 의원에게 달려있는 셈이다. 그러나 귀국 후 정 의원이 보인 일련의 행보는 사실상 당을 방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대선 과정에서 통합21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정 의원이 직접 관여하지 않고 신낙균 권한대행 손을 빌려 당을 해체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며 “정 의원은 선친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87년 대선 패배 직후 당을 사실상 해체한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없다면 벌써 당을 해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정 의원이 당을 해체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현재 통합21이 자신의 정치적 토대가 될 잠재력은 거의 없으면서 자금을 포함, 당 운영에 대한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의존하는 등 부담만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중앙당에 남아있는 인사들의 면면이나 17대 총선 출마를 준비중인 지구당위원장 중 독자적인 생존력을 갖춘 인사는 별로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현재 중앙당에서 주 1회 정도 개최되는 고위당직자 회의에 참석하는 인사는 신낙균 대행, 이인원 당무조정실장, 이치호 조남풍 신상돈 임종국씨 정도다. 일부 인사는 전국적 지명도가 있지만 정치 현장에서 오래 떨어져 있거나 연령으로 볼 때 17대 총선에서 경쟁력이 높다고 보긴 어렵다.
지역구 출마를 노리는 위원장들 역시 정치적 합종연횡을 통해 연합공천이 이뤄지지 않으면 당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인사들이다. 따라서 통합21 자체 역량으로서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두번째는 정 의원이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철회 등 대선과정에서 쌓은 부정적 이미지를 조속히 털어내고 정계개편 과정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는 데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선 이후 정 의원은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행보로 대선과정의 부정적 이미지를 국민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지도록 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 의원이 귀국 후 국가대표 축구대회를 제외하고는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당무에서도 손을 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 의원의 측근들은 정 의원 귀국과 정치재개 관련 보도조차 꺼리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출마를 위해 급조한 통합21은 정 의원이 조속히 씻고 싶어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재생시키는 작용을 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정 의원은 ‘리모델링한 정몽준’이 아니라 ‘환골탈태한 정몽준’이고 싶은데 통합21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 의원이 향후 정치권의 대규모 정계개편 과정에서 ‘몸을 가볍게’ 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스타급 운동선수가 대학진학이 어려운 동료 선수 몇 사람을 옵션으로 데려가야 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분석에 대해 통합21의 정 의원 측근 인사들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당내 일각에서 이런 식으로 당을 운영할 바에는 차라리 당을 해체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정 의원이 나서서 당을 해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 의원의 한 측근은 “정 의원이 통합21이란 당의 유지에 대해 느끼는 부담과 선친인 정주영 전 회장에 이어 다시 자신이 만든 당을 해체하는 데 따른 정치적 부담의 무게를 비교해보면 정 의원 스스로 당을 해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정 의원의 통합21 해체설에 대해서는 “당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부 인사들이 발전적 해체를 주장했던 것이 와전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통합21은 지난달 27일 중앙당사 대회의실에서 전국 지구당위원장 회의 겸 제2회 정책포럼을 개최했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주제발표나 토론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당의 혁신적 변화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 지난 14일 조카 정문선씨 결혼식에 참석한 정몽준 의원. 이종현 기자 | ||
조청래 경남 창원갑 지구당위원장은 “군소정당으로서는 존립이 어려운 지금까지의 정치구도를 고려할 때 통합 21은 향후 2~3개월 안에 중대한 결정을 내릴 시점에 다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이 정 의원으로부터의 ‘독립론’이나 발전적 해체를 포함한 혁신 요구 등이 정치권으로 퍼져나가면서 ‘정 의원의 통합21 해체설’로 비화됐다는 것이다.
정 의원이 지난 16일 통합21 홈페이지에 올린 당원과 지지자들에 대한 귀국인사는 정 의원이 통합21에 아직 애정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인사말을 통해 “(미국생활을 통해) 국민을 통합시키고 국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어느 한 사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나가야만 한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며 “지난 4개월 동안 얻은 소중한 소득을 바탕으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지난 대선과정에서 대중의 높은 지지도만으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으며 인터넷 시대에도 조직의 뒷받침이 필요함을 절감했다는 점도 통합21 유지 논거로 제시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월드컵과 같은 대형 호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 의원이 일필단기로 정치적 위상 회복과 차기 대권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인사는 “17대 총선을 앞두고 진행되는 정계개편은 대선 직전의 정계개편과 달리 한 명의 전국적 스타가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괜찮은 이미지를 가진 다수의 세력을 필요로 한다”며 “따라서 정 의원은 이번 정계개편 과정에서 높은 상품가치가 있는 인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비록 통합21 구성원의 면면이나 통합21이 갖고 있는 조직적 역량이 현재 활동중인 정당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나마 ‘세력’으로 움직이는 것이 정계개편 국면에서는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정 의원은 귀국 인사말에서 “전에도 느끼던 것이지만 밖에서 우리나라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나라의 경제력에 비해 국제적 위상이 너무 저평가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고 말해 자신의 국제적 감각을 자산으로 삼아 정치활동을 재개할 의지를 간접적으로 피력했다.
이 같은 정 의원의 향후 프로그램에 통합21이 동반자가 될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정 의원이나 통합21은 현 정국에서 주요 변수가 될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다만 논리적으로만 보면 노무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전국정당 건설에서 정 의원은 출신지역과 재력 면에서 결합 요인은 갖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결합이 이뤄질 경우 통합21의 위상은 오히려 좁아질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지향하는 전국정당의 참여를 희망하는 수많은 지역조직과 정치신인들을 감안하면 이미 공급초과 상태를 빚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