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들의 해외 인신매매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호주, 일본 등지에서 성매매 목적으로 인신매매를 당하는 한국 여성들의 수가 상당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해외에서 성매매를 하는 한국 여성들을 일컬어 ‘원정 성매매단’으로 비꼬아 불러왔다. 일각에서는 ‘한류열풍을 타고 이제는 한류 성매매인가’라는 식으로 비난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을 뒤엎는 조사 결과가 나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현재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 성매매 여성들 중 일부는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미국, 호주, 일본 등지에서 그동안 발생되어 온 한국여성 인신매매 피해 실태를 알아봤다.
“한두 명의 태국 애들 빼고는 전부 다 섹시한 한국 여자들이다.”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한 성매매 업소 ‘텐더 터치’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비단 호주뿐만이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성매매 업소 관련 홈페이지에서는 이처럼 한국 성매매 여성들과 관련된 후기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성매매 업소들의 온라인 게시판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 성매매업소 게시판에 올라온 후기들 중에는 “한국말로 꽥꽥거린 그 X는 오럴섹스에 열성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비아냥거림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호주, 미국 등에서 한국여성들에 대한 관심은 상당하다. 그만큼 성매매에 종사하는 한국여성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호주 여성단체 ‘프로젝트 리스펙트’는 2012년 보고서를 통해 “연간 최고 1000명에 달하는 한국 여성들이 채무 때문에 인신매매되어 호주로 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호주의 경우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2012년 미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현지 인신매매 피해자 수 중 한국여성은 무려 7위에 랭크됐다. 더군다나 인신매매 피해 여성 수를 집계한 10위 권 내 OECD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1위는 멕시코가 랭크됐고 필리핀, 중국이 그 뒤를 이었다. 한국에 이어 8위에 랭크된 국가는 에티오피아였으며 이어 루마니아, 베트남 순이었다.
2007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실시된 미국 자체조사 결과 해외 여성이 현지에서 인신매매를 당할 경우 약 50%가 성 착취 목적으로 팔려지고 8% 정도는 아시아권 안마시술소로 넘겨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안마시술소 역시 성매매 산업의 일종으로 결국 약 60%에 해당하는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이 성 착취를 당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 국가 인신매매 상담 센터 홍보물(왼쪽)과 일본에서 한국 여성들을 내세운 성매매 알선 사이트. 일본은 성산업 시장이 치밀하게 조직돼 발을 빼기가 어렵다. |
올해 초 은이슬 씨(가명·여·28)는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은 씨는 2006년 브로커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후 6년간 미국 전역으로 팔려 다니며 말도 못할 성 착취를 당했다. 이후 한 여성단체의 도움으로 국내로 돌아왔지만 정신적인 후유증이 심각해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최근 미성년을 갓 넘긴 윤가람 씨(가명·여·21) 역시 올 초 자살을 시도했다. 윤 씨는 브로커의 꼼수에 휘말려 호주 안마시술소에서 성 착취를 당하다 호주 영사관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구출된 케이스다. 그러나 인신매매 및 성 착취 과정에서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윤 씨는 창창한 나이에도 앞날에 대한 희망을 잃은 상태다. 호주의 경우 성매매가 합법이기 때문에 인신매매는 없을 것이고 오히려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윤 씨의 피해사례를 보듯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여성단체 ‘프로젝트 리스펙트’의 자체 조사 결과 2012년 인신매매 당한 한국여성 20명 중 단 1명을 제외하고 모두 허가 성매매업소에서 성 착취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20대 꽃다운 한국 처녀들의 상당수가 ‘원정 성매매’라는 불명예스러운 명찰을 달고 해외로 팔려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엔 수완 좋은 브로커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브로커들은 서류(문서위조), 비자, 비행기 티켓 등을 주선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주로 무용수, 가수, 학생 등의 신분으로 비자를 허위로 조작해 공급하고 신문, 인터넷 광고, 결혼중개업을 빙자해 여성들을 모집한다.
미국의 경우 이들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는 곳은 한국과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인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 여성들 대부분은 ‘마사지사, 호스티스, 웨이트리스 등을 구한다’는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가 인신매매에 휘말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브로커들이 타깃으로 삼는 대상은 주로 채무가 있고 미국에 오고 싶어 하는 여성들과 합법적 지위를 취득하지 못한 채 미국에 체류 중인 한국여성들이다. 브로커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오게 된 여성들은 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나 학생비자를 통해 입국하는데 이들 중 성산업에서 일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는 여성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 피해 여성에 따르면 이들은 입국하자마자 포주로부터 “경찰이나 지원시설을 믿지 마라” “경찰에 발각되면 ‘영어 못해요’라고 말하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미국 성매매 리뷰 사이트 ‘존 보드’는 이렇게 인신매매된 한국여성 대부분이 강간, 음식 및 수면 제한, 격리·감금을 당하고 심지어 수간(짐승을 상대로 하는 변태적인 성행위)을 강요당하는 여성도 있다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여성을 통제하는 방법 역시 악랄한 수준이다. 안전관리 명목으로 돈과 서류를 보관해 감시하는 것은 기본에 불과하다. 포주가 상시로 피해여성과 동일한 주거지에 거주하는 한편 피해여성이 체포될 경우 변호사 비용을 지불하는 등 마지막까지 통제한다. 또한 경찰 단속 시에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사용하는 치밀함까지 갖추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한인 택시기사들과 은밀한 커넥션을 형성하고 있어서 경찰 출동 시 이들 한인 택시가 미국 각 지역으로 한국여성들을 실어 나르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포주에게 돈을 착취당하는 한국여성들은 하룻밤 평균 6명의 남성을 상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간 2184회에 달하는 횟수의 강제 성매매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호주는 일본에 비해 인신매매 피해 상황이 나은 편이다. 이들 국가의 경우 인신매매 피해자임이 인정될 경우 피해여성이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여성이 가장 많은 인신매매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일본의 실태는 참혹한 수준이다.
6월 20일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연례 인신매매 실태(TIP)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선진 8개국 중 유일하게 2등급인 ‘인신매매 대책의 최저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국가’로 분류됐다. 이는 캄보디아, 부르키나 파소와 같은 등급이다. 일본은 인신매매법이 부재하고 인신매매 관련 수사에 대한 통계자료도 갖고 있지 않다. 현재 일본 성 산업 시장규모는 4조~10조 엔(한화 62조~144조 원)으로 총 GDP의 1~2%에 해당한다. 이는 앞으로도 인신매매 피해여성이 더욱 증가할 수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폴라리스 프로젝트’는 한국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가 신문의 허위광고는 물론 일본 내 어학원에서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A 씨는 한국에서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돕는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평범한 20대 여성이었다. 그녀는 몇 년 전 일본 대학 진학을 목표로 일본에 왔다가 성매매 시장에 팔려 들어갔다. 높은 학비와 생활비에 허덕이던 A 씨는 근처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로부터 ‘고수입의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말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 훗날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유명한 ‘인신매매 브로커’였다고 한다.
일본에서 인신매매를 당하게 되면 웬만해선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한다. 일본 성산업 시장은 치밀하기로 유명해 성매매 장소 근처에 옷집, 약국, 병원 등이 인신매매범들과 깊이 연루돼 있거나 심지어는 포주가 직접 병원을 운영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본 정부가 2009년 공식적으로 확인한 한국여성 피해자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비공적인 숫자는 이보다 몇 백 배에 달한다고 ‘폴라리스 프로젝트’는 힘주어 언급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