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펀드 투자 잇따라 실패, 2년 연속 역대급 손실…과거 닷컴버블 붕괴 땐 ‘야후BB’로 활로, 과연 이번엔?
#첨단기술주 하락 직격탄 맞은 손정의
지난해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보유 중이던 소프트뱅크그룹의 주식을 거의 모두 매각한 사실이 알려졌다. 매각의 주요 원인으로는 “소프트뱅크를 이끄는 손정의 회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신뢰 상실”을 꼽는 외신이 적지 않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2022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에 9701억 엔(약 9조 2300억 원)의 순손실이 발생했다”고 한다. 2021년 역대 최악인 1조 7080억 엔의 순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2년 연속 거액의 적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비전펀드에서 투자한 기업들의 주가 폭락으로 소프트뱅크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소프트뱅크는 2017년부터 비전펀드를 통해 전 세계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오고 있다. 한때 큰 수익을 올리기도 했으나, 잇따른 투자 실패로 이제는 ‘마이너스의 손’으로 전락할 위기다. 올 5월 개최된 소프트뱅크 결산설명회에서 손 회장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대신 등단한 고토 요시미츠 소프트뱅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분쟁 등 지정학적 위험, 금리 상승으로 인해 2022회계연도는 불안정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당분간 방어모드로 전환하고 투자에는 더욱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20년 전과 상황 흡사한 손정의의 전략
“과거에도 손정의 회장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적이 있다. 다름 아니라, 새로운 물결을 타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일 때였다.” 오랜 기간 소프트뱅크 사장실에 근무하며, 손 회장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미키 다케노부는 “지금 상황이 20년 전과 매우 흡사하다”며 “손 회장의 재기를 확신한다”는 글을 주간다이아몬드에 실었다.
사실 소프트뱅크는 그동안 여러 차례 경영 위기에 직면한 바 있다. 가장 큰 위기가 2000년 닷컴 버블 붕괴다. 당시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20조 엔을 돌파, 도요타자동차에 이어 일본 기업 중 시가총액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주가가 무려 90% 넘게 폭락했다. 시가총액은 2800억 엔까지 쪼그라들었고, “손정의 회장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렇다면 손정의 회장은 어떻게 위기를 타개했을까. 다케노부에 의하면 “실패한 것은 버리고 남아있는 패 중 압도적인 강점을 찾아 돌파하는 작전을 짰다”고 한다. 예컨대 야후재팬과 2001년 9월 시작한 브로드밴드(초고속인터넷)사업 ‘야후BB’다. 야후BB 서비스는 대형포털 야후재팬의 브랜드 인지도와 페이지뷰를 철저히 활용한 덕분에 불과 2년이 채 안 돼 가입자가 300만 명을 넘어섰다.
다케노부는 “닷컴 버블 시절 손 회장이 ‘미국 IT벤처 중 시가총액 3000억 엔 이상의 회사를 리스트화해라’ ‘전부 소프트뱅크와 조인트 벤처로 일본 법인을 만들 것’이라며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때도 소프트뱅크는 이미 세계은행과 손잡고 수많은 IT벤처에 투자 중이었다”고 한다. 닷컴 버블은 꺼졌으나 소프트뱅크 투자처 가운데 ‘야후재팬’이라는 반전 카드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야후BB 서비스는 회사의 운명을 다시 돌려놓은 돌파구가 되어줬다.
2017년 손정의 회장은 비전펀드를 설립하며 “전 세계 가능성 있는 ‘유니콘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투자한 기업들은 현재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곳도 상당수다. 이에 대해 다케노부는 “영국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암(ARM)이 상황을 역전시킬 카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ARM의 최대주주는 소프트뱅크로, 얼마 전 손 회장이 “ARM의 상장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끌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케노부는 “소프트뱅크가 ARM을 상장시켜 고액의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전략은 야후BB 서비스로 돌파구를 찾았던 때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실패의 축적으로 배우는 확실한 성공
IT 업계에는 일정한 사이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이 일정 기간마다 찾아와 기대감이 높아지고, 주가도 상승한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열기가 과잉된다. 이후 거품이 꺼지면서 관련 기술이 사회에 정착한다는 흐름이다. 예를 들어 지금이라면 ‘메타버스’를 들 수 있다. 페이스북은 회사명을 ‘메타’로 바꿀 정도로 사운을 걸었지만, 현재 메타버스 사업에서 인력을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즉 과잉 열풍이 걷히는 단계다.
다케노부에 의하면 “손 회장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밀려올 때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게 모두 베팅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라고 한다. 어떤 기업이 미래 시장을 석권하고 살아남을지 처음부터 완전히 꿰뚫어 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펀드를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더했다.
이러한 전략은 신사나 절에 비치된 점괘에 비유된다. 보통의 경영자는 100엔으로 한 번 제비뽑기를 한다. 반면, 손 회장은 10엔으로 제비뽑기를 10번 하는 식이다. 그러면 대길(大吉)을 뽑을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바꿔 말하면 ‘실패’도 많이 거치게 된다. 흔히 실패를 피하려고 조심스럽게 경영하기 쉽다. 그러나 손 회장은 여러 번 실패하고 배움으로써 성공을 확실하게 달성하고자 한다. 성공신화로 불리는 손정의 회장이지만, 성공보다 수십 배의 실패를 경험했다. 야후재팬이나 ARM이 손 회장의 수중에 남은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이러한 전략이 뒷받침된 ‘필연’인 셈이다.
다케노부는 “손 회장이 사업체를 성공시킨 핵심이 트렌드를 읽고 새로운 사업에 적극 뛰어들어 고속으로 목표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봤다. 이른바 ‘고속 PDCA(계획-실행-검증-개선)’로, 다양한 방안을 모두 동시에 실행해 보면서 실패한 것은 버리고 가장 우수한 방법을 갈고 닦아 더욱 발전시키는 경영법이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소프트뱅크가 ARM의 나스닥 상장 절차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ARM 상장은 올해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상장)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손정의 회장이 다시 한 번 승부수를 던질 것 같다. 과연 이번에도 그의 ‘반전 카드’는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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