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이 8개 생명보험사에 대해 부문검사를 진행 중이다. 사진은 삼성생명(왼쪽)과 대한생명이 입주해 있는 한화금융프라자. 일요신문 DB |
공정거래위원회의 재벌 소유지분 분석 공개와 금융감독원의 생보사 검사를 놓고 둘 다에 해당되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볼멘소리를 했다. 이처럼 금감원 검사가 보험업계는 물론 재계에까지 정권 말 ‘재벌 때리기’ 논란으로 확산되자 금감원 측은 “의혹이 있어서가 아니고 3월 결산법인들에 대한 부문검사일 뿐, 재벌 길들이기는 절대 아니다”라며 “회사별로 주요 검사 항목도 다르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는 형국이다.
보험업계에서 받아들이는 이번 검사의 핵심 포인트는 크게 일감 몰아주기, 고배당, 공시이율 세 가지다. 이와 관련해 검사 착수 4일 후인 지난 29일 있었던 보험회사 CEO(최고경영자) 간담회 때 권혁세 금감원장의 발언을 곱씹어보면 금감원의 ‘큰그림’을 짐작할 수 있다.
권 원장은 “최근 대기업 계열 보험회사가 자산운용, 퇴직연금, 부동산관리용역 등의 대부분(전체의 90% 이상)을 계열사에 위탁함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와 함께 보험회사가 그룹의 이익에만 앞장선다는 사회적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면서 “대주주와 부당거래 가능성이 높은 보험회사에 대해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부당거래 행위로 의심되는 경우 현장검사를 실시하고 엄중 문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 원장은 또한 “주주배당을 통한 이익은 독점하면서 보험료 인상으로 인한 소비자 부담은 증대시킨다는 비난이 있다”며 과도한 배당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공시이율에 대해서도 “최근 생보사가 외형확대를 위해 설계사 스카우트 및 저축성보험의 공시이율 인상 등을 통한 과당경쟁이 재연되고 있다”는 발언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권 원장의 발언들을 종합하면 이번 검사가 재벌그룹 계열, 고배당, 외형확대 보험사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졌다는 업계의 관측은 무리가 없다.
권혁세 원장이 강조했고 이번 검사 항목 중 제일 앞에 나오는 일감 몰아주기와 그룹 이익 봉사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회사는 주인이 있는 회사라 대주주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보험사를 동원해 지원하기도 한다”면서 “이는 늘 강하게 보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의 증권사 보험담당 애널리스트는 “보험사의 수익률이 부진한데 그 이유 중 중요한 하나는 생명보험사의 투자자산을 대주주인 재벌들의 이익을 위해 동원했기 때문”이라며 “효율보다는 관계에 의한 계열사와의 거래니 이익을 크게 남기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지적했다.실제로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말 삼성생명의 운용자산은 130조 2722억 원에 달하는데, 운용수익은 연 4.37%인 5조 6909억 원에 불과하다. 특히 97조 원이 넘는 유가증권 투자부문 수익률이 3.77%로 가장 저조하다. 주식 채권 등 증권투자를 잘 못한 게 운용자산 수익률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뜻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그룹 계열사 지분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매도가능 금융자산 94조 원 가운데 18조 원이 삼성 관련 주식이다. 이는 삼성생명의 자본총계와 맞먹는 규모다. 이 주식들로부터 매년 들어오는 돈은 은행이자에도 한참 못 미치는 배당뿐이다. 그룹 지배구조를 지키기 위해 갖고 있는 만큼 팔 주식이 아니니 주가가 올라도 이를 돈으로 바꿀 수 없다. 즉 고객 돈으로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미래에셋생명의 경우 금융자산 보유금액이 7조 원이 조금 안 되는데, 2011회계연도 계열사와의 거래금액이 무려 5조 2000억 원을 넘고 있다. 계열사 보유지분만도 1585억 원에 달한다. 미래에셋생명이 투자하는 주요 금융투자상품 가운데 상당수가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계열사가 운용하는 상품이다.
동양그룹에서 보고펀드로 경영권이 넘어간 동양생명의 경우 그룹 지주사 격인 동양레저로부터 골프장 부지를 사줬다. 동양생명은 지난 2004년 동양레저 소유였던 파인크리크CC를 1533억 원에, 파인밸리CC는 600억 원(2005년)에, 총 2133억 원을 들여 인수한 바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시 동양생명의 자기자본은 2000억 원 안팎, 총 자산은 5조 원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단일 투자대상 치고는 적지 않은 규모”라며 “그럼에도 이 두 골프장의 운용권은 애초 주인이었던 동양레저가 보유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배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삼성생명은 2011회계연도에 주당 2000원, 총 3940억 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배당성향(당기순이익 대비 배당금 비율)은 41.5%. 전년 20.8%의 두 배 수준이다.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건희 삼성 회장(지분율 20.8%)으로 830억 원의 배당금을 챙겼다. 삼성생명의 2대주주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최대주주인 삼성에버랜드(19.3%)다.
또 다른 재벌 계열사인 대한생명의 경우 지난 회계연도 주당 230원, 총 1938억 원을 현금배당했다. 배당성향은 37.2%로 전년 42.1%보다는 줄었다. 이에 대해 생보업계 관계자는 “대한생명의 대주주는 한화건설(24.9%), (주)한화(21.7%) 등 한화 계열사들과 예금보험공사(24.8%)로 구성돼 있다”면서 “대한생명의 배당은 총수에게 바로 이어지지 않을뿐더러 예금보험공사에도 들어가며 공적자금 회수에 일조하므로 삼성생명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생명은 주당 710원, 총 200억 원을 현금배당했으며 배당성향은 14.7%였다. 미래에셋생명의 최대주주는 미래에셋캐피탈(47.1%)이고 미래에셋캐피탈의 최대주주는 박현주 회장(48.7%)이다.
‘배당 몰아주기’ 여부도 이번 검사의 화두로 떠올랐다. 보험 상품은 유배당과 무배당이 있는데 유배당은 운용수익의 90%를 보험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반면 무배당의 수익은 모두 주주 몫으로 돌아간다. 보험사가 손실은 유배당 상품에 전가하고 이익은 무배당 상품에 몰아줘 대주주 배당액을 높였을 수 있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금감원 관계자는 “그 부분은 결산회계 검사 세부 항목 중 하나일 뿐”이라며 “유배당 상품 비율이 5%에 불과한데 그걸 가지고 보험사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공시이율에 대해 금감원 측은 “공시이율은 매달 변하는 것이라 보험사들이 처음에만 높은 이율로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측면이 있다”면서 “또한 5% 이상 공시이율을 내놓는 곳이 많은데 요즈음 5% 이상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투자처가 없다. 계약하면서부터 손실이 발생해 보험사가 부실화되고 그 피해는 계약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체력에 맞게 책정했는지 건전성 측면을 따져보겠는 것”이라고 감독 이유를 밝힌다.
금감원의 저축성보험 공시이율 자료에 따르면 ‘생보사 빅3’ 모두 올 초 올렸다가 최근 내렸다. 삼성은 지난 연말 4.9%에서 올 1월 5.1%로 0.2%포인트나 올렸고 4월 5.0%, 5월 4.9%로 인하했다. 대한생명은 1월 5.2%에서 5월 5.1%로 내렸고 교보는 5.0%를 고수하다 2월 5.1%, 4월 5.05%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공시이율과 함께 권혁세 원장이 말한 과당경쟁의 다른 한 축은 바로 설계사 스카우트.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빅3’ 가운데 삼성의 보험설계사 수 증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삼성생명의 보험설계사 수는 2011년 3월 말 2만 9603명에서 2012년 3월 말 4만 2697명으로 1만 3094명이나 급증했다. 이 기간 대한생명은 줄었고 교보생명은 3527명 느는 데 그쳤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재택근무를 하는 사이버 FC(설계사)가 많이 등록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이번 검사의 주요 타깃은 삼성생명”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재계 1위 삼성의 계열사이자 업계 1위의 상징성에다 앞서 살펴봤듯이 고배당과 외형 확대가 두드러지는 까닭에서다.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의 한 관계자가 “삼성생명이 걱정”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에 대해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2010년 말 이건희 회장이 ‘삼성 금융계열사에는 왜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회사가 없느냐’고 질책한 뒤 보험업 경험이 없는 박근희 사장이 부임하며 공격경영을 했다”면서 “금감원의 경고에도 고배당과 공시이율 인상, 설계사 급증 등 박 사장이 드라이브를 걸었고 이 부분이 이번 검사를 자초한 듯싶다”고 분석했다.
삼성생명 측은 박근희 사장의 공격경영에 대해서는 “모든 CEO는 공격적”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이번 검사에 대해서는 “검사를 받고 있는 중에 우리가 잘못했다고도, 잘못이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할 말이 있을 듯하다”고 밝혔다. 5일 현재 주요 대상 생보사 중 삼성, 미래에셋, 동양생명이 검사 중이고 대한생명은 사전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최열희 언론인
상장 전부터 보유 ‘충격 없다’
동양생명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주당 1만 7000원에 공모된 동양생명의 현 주가는 반 토막에 가까운 1만 원대 초반이다. 시가총액도 1조 1510억 원으로 3월 말 자기자본총계 1조 1800억 원보다 낮다. 동양생명은 최근 매각이 추진됐지만 인수자가 나서지 않을 정도로 시장에서는 매력이 없는 투자대상이다.
주가가 이렇게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대주주를 위한 희생’ 탓에 수익률이 시원치 않은 영향이 작지 않다. 이렇게 수익은 시원치 않고, 주가도 부진하면 결국 보험사 대주주들도 손해가 아닐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들 보험사 대주주들은 상장 전부터 지분을 보유했다. 따라서 공모가로 투자한 이들이나, 시장가로 투자한 이들보다 훨씬 취득가격이 낮아 주가부진에 따른 충격은 별로 없다. 배당수익에서도 대주주들의 취득가가 시가보다 훨씬 낮다는 점에서 애초 투자원금대비 배당수익률은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회사를 지배하려는 입장에서는 당장의 주가가 큰 의미가 없고, 회사를 다시 매각하려는 입장에서는 어차피 시장가격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서 팔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주가 부진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개인 투자자인 셈이다. 금감원의 이번 검사가 보험사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주가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