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기대 않았던 ‘사람 냄새 나는 드라마’의 쾌거…“‘연진아’에서 ‘정숙아’로 바뀌는 순간 인기 실감해”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드라마가 파죽지세로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기 시작했을 땐 만감이 교차했다. 잔잔한 입소문만으로 그칠까 봐 쉽게 신바람이 날 수도 없었던 제작진과 출연진은 극의 딱 절반에 이르러 시청률 15%를 넘나들기 시작하며 감히 20%까지 기대하게 될 때쯤에야 조심스럽게나마 기쁨을 표출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중 앞에 공개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JTBC 토일 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그렇게 6월 4일, 최종 시청률 18.5%(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JTBC 드라마의 또 다른 전설을 더했다. 그 전설을 만들어 낸 김대진 감독과 만나 ‘닥터 차정숙’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이하는 김대진 감독과의 ‘닥터 차정숙’ 종영 인터뷰 일문일답.
-시청률 상승세가 꾸준한 인기작이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초반이 어려웠다. 방송 첫 주엔 SBS 금토 드라마 ‘모범택시 2’가 마지막 회를 방영 중이어서(웃음). 그래도 방송이 계속 되면 희망이 있겠지 했는데 그 다음 주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JMS 특집을 해주는 게 아닌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웃음). ‘닥터 차정숙’에서 중요한 회차가 7~8회였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가 지나갔더니 이번엔 ‘낭만닥터 김사부 3’를 특별 편성으로 90분을 하더라(웃음). 그런 것들을 넘어갔더니 시청률이 잘 나오기 시작해서 그때 처음으로 저도 그렇고 배우들도 많이 놀랐다. 이전까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연진아’였는데 갑자기 ‘정숙아’로 바뀌더라(웃음).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말한다는 건 다들 잘 보고 있다는 게 아닌가 싶었다.”
- 김병철 배우가 연기한 서인호는 자칫 잘못하면 미움만 받을 수 있는 캐릭터다. 그 캐릭터성의 완급 조절이 가장 중요했을 것 같은데 감독으로서 따로 디렉팅한 것이 있는지.
“제겐 김병철 배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사실 대본 리딩 때부터 연출자로서 고민이 많았는데 서인호는 한 번 웃겼다가, 한 번 슬펐다가, 또 한 번은 진지했다가 그렇게 왔다갔다해야 하다 보니 잘못 하면 이 캐릭터가 중구난방이 돼 버린다. 기준선을 어떻게 정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김병철 배우가 대사를 읽는 걸 보니 너무 안심이 되더라. 이 사람은 진지와 코믹을 다 갈 수 있는, 톤이 넓은 인물이다. 이 톤에만 (연출을) 맞추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 감독님이 생각하는 서인호의 매력은 대체 뭐기에 두 여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고 생각하시는지.
“현장에서 저희 고민이 바로 그거였다. 도대체 인호의 매력이 뭐냐(웃음). 그런데 촬영이 진행되면서 민우혁(로이 킴 역) 배우가 누가 봐도 더 멋진데도 스태프들이 로이 파와 인호 파로 나뉜 거다. 현장에서는 김병철 배우의 매력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정말 세심하고 따뜻한 배우다. 본인이 고생한 시절이 있어서 그런지 조단역들을 볼 때도 눈빛부터 다르고, 항상 예의를 갖춰서 대해준다. 배우들이 다 감동 받을 정도다. ‘닥터 차정숙’이 김병철 배우가 주연으로서 맡는 첫 작품인데, 다들 이 배우가 잘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잘하는지는 아마 몰랐을 거다. 그리고 앞으로 더 잘할 배우다. 방영 중반부터는 김병철 배우가 (인기가 많아져서) 마스크를 안 쓰면 밖에 나갈 수 없단 얘길 들어서 전화로 물어봤더니 ‘코로나 때문에 그래요’ 하고 겸손해 하시더라(웃음).”
- 불륜이 주요 소재임에도 시청자들이 원하는 ‘사이다’ 결말, 즉 불륜 커플들이 단죄되는 결말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는데.
“불륜 드라마가 분명히 아닌데도 다들 그렇게 봐주셔서 작가님도 서운해 하셨던 것 같다. 서인호와 최승희의 불륜은 차정숙이 간 이식 후 거쳐가야 할 하나의 설정이자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그걸 다 극복해서 자기 꿈을 이루는 단계의 최종 보스 같은 느낌이 바로 불륜인 것이지 그것 자체에 방점을 둔 게 아니다. 사실 불륜이란 코드가 인류 역사에서 증명된 최고의 재미있는 포인트다 보니 방송사에서도 ‘언제 둘이서(차정숙과 최승희) 머리채를 잡고 싸우냐’고 물어볼 정도였다(웃음). 하지만 ‘닥터 차정숙’은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가족 드라마이기에 이 불쾌한 코드가 결코 불쾌하지 않게 순화시켜서 나가길 바랐고 그걸 모두와 공유했었다.”
- 로이 킴 역의 민우혁 배우는 본인의 ‘새 사랑’에 크게 실망한 것 같았다.
“로맨스가 흥행공식인 건 알지만 처음부터 ‘키다리 아저씨’를 보여주되, 그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걸 정해놓고 있었다. 친부모에게 버림 받고 해외에서 좋은 양부모를 만난 덕에 모든 걸 갖춘 인물이 돼서 한국에 돌아왔지만 진짜 가족을 찾는 일엔 별로 관심이 없던 로이가 차정숙을 만나고 마음을 열게 된다. 그때 로이의 감정이 연애 상대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가족처럼 느껴서 생긴 감정인지는 모르지만 저희는 후자라고 느꼈다. 또 진짜 가족에게 뒤통수를 맞은 그를 정숙이가 친구로서 치유를 해주지 않나. 그렇게 가다 보니 마지막에 로이의 성장은 그런 아픔을 치유하면서 이뤄졌고, 어차피 정숙이와는 연애할 게 아니니까 새로운 선물을 하나 주려고 했던 거다. 사실 민우혁 배우도 그렇지만 저도 대본에 로이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거 보고 팔팔 뛰었다. ‘이거 하려고 내가 여기까지 온 줄 아냐!’ 하면서(웃음). 그런데 작가님은 서른이 넘은 남자가 아줌마만 보고 사는 게 말이 되냐는 입장이셨다. 그래서 합의한 게, 로이를 지켜주기 위해 아주 짧고 살짝 (여자친구를 만나는 신을) 보이게끔 촬영한 거다. 근데 민우혁 배우가 자긴 이 결말이 싫다고 해놓고 엄청 다정하고 스윗하게 연기하더라. ‘뭐야 얘?’ 싶었다(웃음).”
- 차정숙의 딸 서이랑 역의 이서연 배우가 눈물을 흘려야 하는 신에서 울지 못하자 엄정화 배우가 꼭 안아줬다는 촬영 뒷이야기도 본편 못지 않게 화제였다.
“그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저희 모두가 다 (엄)정화 누나에게 감동했기 때문이다. 정화 누나의 모습을 보고 ‘이게 차정숙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서연 배우가 아역 출신인데, 예전에 추운 겨울 날 드라마 촬영을 하다 울어야 하는 신에서 울지 못해서 안 좋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저희 드라마에서도 이랑이가 울어야 해결이 되는 신이었기에 그 연기가 정말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친구도 잘 해내고 싶은데 부담 때문에 세 번째 촬영에서도 결국 울지 못했다. 전력을 다한 걸 알기에 일단 오케이를 했는데 그걸 보고 있던 정화 누나가 서연이를 안고 등을 쓰다듬어주는 거다.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모든 스태프들이 넋을 놓고 쳐다보는데 등을 쓰다듬는 순간 (서연이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 신을 성공했다. 그걸 보며 아마 제가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제일 크게 ‘오케이’를 외쳤던 기억이 난다.”
- 감독님이 현장에서 바라본 엄정화 배우는 어떤 사람인가.
“정화 누나에겐 마력이 있다. 그 힘 때문에 영화, 드라마, 노래로 전국민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 같다. 차정숙의 경우는 극 중에서 모든 사람들과 다 붙어야 하다 보니 신도 많고, 게스트로 오는 배우들과도 계속 촬영을 해야 한다. 고정 캐스트들은 많이 맞춰봐서 바로 할 수 있지만 갑자기 오게 된 조연, 단역은 힘들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저는 걱정 안 했다. 디렉션을 줄 필요 없이 그냥 ‘엄정화 누나 눈만 보세요. 정화 누나 눈을 보면 그냥 눈물이 나옵니다’라고 그랬다. 극 중에 인호랑 승희가 팔을 다친 은서를 데리고 병원에 갈 때 정숙이가 택시를 타고 쫓아가지 않나. 그 택시기사가 클리셰를 벗어난 대사를 했다고 화제가 됐었는데, 연기하신 배우님이 조명을 받았다는 것에 정화 누나가 너무 좋아하는 거다. ‘이 사람은 그것까지 기분이 좋단 말이야?’ 했는데 누나 얘기를 들어보니 그 배우님이 성우 일을 하시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하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누나는 그게 마음에 걸렸던 거다. 대전에 오셔서 두 번에 걸쳐 촬영한 짧은 신인데, 그냥 무난히 흘러만 가도 좋은 게 이슈까지 됐으니 그 배우님이 얼마나 좋았겠냐는 게 정화 누나의 말이었다. 그런 엄정화이기에, 그 힘이 화면 밖으로까지 나왔기에 사람들이 차정숙을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 연출자의 입장에서 ‘닥터 차정숙’의 엔딩에 만족하시는지.
“시청자들이 바라는 파멸 같은 엔딩 보단 ‘닥터 차정숙’의 정숙이라면 그런 엔딩을 맞는 것이 맞다고 봤다. 이 드라마는 정숙이의 성장을 어필하는 드라마이기에 정숙이가 어떤 고난을 겪고 나서 해탈이라기엔 거창하지만 배를 타고 햇살을 받는, 그런 지금의 엔딩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승희가 망하고 인호가 망하는 걸 바라실 수도 있지만 그러면 여타 드라마와 똑같을 수 있고, 또 만일 그럴 경우 마지막 정숙이의 얼굴을 시청자들이 찡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싶다. 승희도 승희의 살 길을 열어주고, 인호도 인호의 살길을 열어주는 게 저희의 단죄다. 출세를 했지만 같이 기쁨을 나눌 사람이 없는 인호, 자신의 죄를 알기에 요양 병원을 인수하는 승희. 치유를 가지고 끝을 맺었기에 드라마의 목표지점을 분명히 가져간 것이라 생각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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