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 헤이시와 엘렌 디제너러스(오른쪽)의 커밍아웃과 연인 선언은 할리우드에서도 매우 희귀하고 용감한 일이었다. 타블로이드의 집중 포화를 맞았으며 보수단체의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
1997년 3월의 어느 날 밤 오스카 시상식이 끝난 후 <베니티 페어>에서 파티를 열었고 그곳에서 앤 헤이시와 엘렌 디제너러스가 만난다. 당시 28세였던 앤은 배우로서 꽃을 피우기 직전이었고 39세였던 엘렌은 시트콤 <엘렌>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파티가 끝나고 그날 밤 앤은 엘렌의 집으로 갔고, 이후 그들은 연인이 된다.
다음 달 엘렌은 커밍아웃을 하면서 “지금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 가능하면 그녀와의 관계가 영원하길 바란다”고 말했고, 얼마 후 워싱턴 D.C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 기자와 특파원들의 파티에서 앤과 엘렌은 공개적으로 키스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그들은 레즈비언 커플임을 공개했고 앤 헤이시는 “나는 내가 커밍아웃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정체성을 감춘 적이 없었다. 사실 나에겐 감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내 인생을 진실하게 살아왔다. 엘렌과의 관계도, 내 인생에서 더 많은 사랑을 경험하려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3년 뒤 2000년 8월에 그들은 헤어졌다.
앤 헤이시와 엘렌 디제너러스의 짧은 만남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유분방한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서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셀러브리티들이 동성 연인임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희귀하면서도 용감한(?) 일이었다. 그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엘렌 디제너러스의 시트콤은 보수단체의 압력으로 스폰서들이 빠지면서 종영되었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1997) <왝 더 독>(1997) <식스 데이 세븐 나잇>(1998) <싸이코>(1998)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헤이시의 필모그래피는 이후 비디오용 영화나 소규모 배급 영화로 한정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굳게 묶어주었던 건 어쩌면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들에겐 모두 성인이 되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성추행과 강간을 당했던 경험이 있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던 엘렌은 18세 때 계부에게 당했다. 앤 헤이시는 틴에이저가 되기도 전에 친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참고로 그녀의 아버지는 게이였고, 50세에 에이즈로 사망했다). 그들은 남성 폭력 앞의 힘없는 피해자들이었던 것이다.
연인이 된 엘렌과 앤은 그 어떤 이성애자 커플보다 뜨거운 관계였다. 하지만 2000년 8월 18일 그들은 결별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다음 날인 8월 19일, 앤 헤이시는 자신의 도요타 SUV를 몰고 LA에서 북쪽인 칸투아 그릭으로 가고 있었다. 길가에 차를 세워놓은 그녀는 2킬로미터 넘게 사막을 걸어 어느 집의 농장에 도착했다. 그 집엔 애러셀리 캠피즈라는 여대생이 혼자 있었고 브라와 반바지 차림인 앤은 차가 고장 났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캠피즈는 느닷없는 스타의 방문에 어리둥절했지만 문을 열어주었고 앤 헤이시는 미친 듯이 물을 마신 후 샤워를 하고 싶다고 했고, 이후 거실 소파에 앉더니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캠피즈는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 앞에서 앤 헤이시는 “나는 신이었으며 이제 모든 사람을 우주선에 데리고 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앰뷸런스를 불렀고 병원에서 잠시 쉰 후 앤 헤이시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 일은 수많은 타블로이드를 장식했고 결별의 충격으로 앤 헤이시가 미친 게 틀림없다는 식의 기사가 쏟아졌다. 이후 헤이시는 유년기의 트라우마 이후 ‘셀레스티아’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다고 고백했다. 일종의 다중 인격 장애였던 셈. 그녀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셀레스티아는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으로 신과 대화할 수 있으며 예수와 배다른 남매라고 했다. 8월 19일의 그 사건으로 자신은 지난 31년의 제 정신이 아니었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고도 했다(그 날 그녀는 엑스터시를 복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01년 앤 헤이시는 또 다른 충격을 던졌다. 엘렌의 다큐를 찍을 때 만난 촬영감독 콜맨 라푼과 결혼한 것이다. “이성애자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결혼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대중은 혼란에 휩싸였다. 2002년엔 라푼과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고 2009년에 이혼한 뒤엔 동료 배우인 제임스 투퍼와 결혼해 두 번째 아이를 낳았다.
한편 엘렌은 앤과의 결별 이후 패닉 상태에 빠졌지만 새로운 사랑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이자 여배우인 알렉산드라 헤디슨과 사귀었던 그녀는 호주 출신의 여배우 포티아 드 로시와 연인이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금지되기 3개월 전인 2008년 8월에 결혼했다. 새로 시작한 토크쇼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2007년엔 오스카 시상식 사회자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젠 10여 년 전의 일이 된 엘렌과 앤의 사랑과 이별. 앤 헤이시는 자서전에서 당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엘렌과의 관계가 무의미한 상황에 도달했기에 그녀와 헤어졌을 뿐이다. 내가 동성애자가 아니기에 떠났다는 식으로 비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마치 내가 엘렌과 진실하지 못한 관계였다는 것처럼 들려서 매우 불쾌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